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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근대미술요람으로 키운 풍류객, 서병오

중앙일보 2019.09.05 09: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56)

석재 서병오 선생. [중앙포토]

석재 서병오 선생. [중앙포토]

 
대구 서화계는 최근 수년째 한 인물을 재조명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석재(石齋) 서병오(徐丙五‧1862∼1936) 선생이다. 그는 문인화가이면서 잡기에 능했다. 거기다 운이 좋아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나 사람 사귀기를 좋아한 풍류객이었다.
 
그에게는 ‘팔능거사(八能居士)’란 수식어가 붙는다. 한시 짓기와 글씨‧그림 솜씨가 경지에 이르러 당시 조령 남쪽의 삼절(三節)로 통했다. 여기에 거문고와 바둑‧장기‧의술‧약재까지 모두 여덟 분야에 능했다는 것이다.
 
대구 서도인 리홍재는 “선생의 운필은 자연의 도를 본받아 신필에 가깝다”며 “추사(김정희) 이후 그를 비길 만한 문인화가가 없다”고 평가한다. 대구 석재기념사업회(회장 장하석)는 그의 예술 세계를 알리기 위해 석재문화상을 제정하고 올해 7번째로 고 황창배 작가를 선정했다. 하지만 아직 서울에는 그의 이름이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것 같다.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한 '팔능거사'

석재는 당대의 많은 명사와 교유했다. 그의 첫 스승은 13세 무렵 찾아간 선산의 이름난 유학자 허훈이며 의병 총대장 허위와 동문수학했다. 유학자 곽종석도 스승이다. 즉흥 한시를 쏟아낸 바탕일 것이다.
 
추사의 제자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18세 서병오를 운현궁으로 불러들여 재주를 확인하고 시‧서‧화‧바둑을 즐겼다. 30대엔 중국을 주유하며 망명객 민영익을 비롯해 중국 서화가 포화(蒲華)‧제백석(齊白石) 등과 교유한다. 석재는 혁명가 손문과도 시와 술, 바둑을 주고받았다. 40대엔 일본으로 건너가 사상가 도야마 미쓰루 등과 교유했다.
 
만년에 석재는 자신의 인맥과 능력 등을 토대로 대구를 근대미술의 중심지로 만들어 놓는다. 일제가 1921년 12월 조선미술전람회를 창설하자 그는 1922년 1월 ‘교남시서화연구회’를 만들어 회장을 맡은 뒤 그해 5월 대구에서 제1회 전람회를 연다.
 
서울의 김규진, 평양 김윤보, 광주 허백련 등 전국의 이름난 작가들이 대구 전람회에 참여했다. 일제가 주관한 선전은 한 달 뒤인 그해 6월에야 열렸다. 교남시서화연구회는 이후 전국의 명사와 문화계 인사가 교류하는 장이 됐다. 
 
석재 서병오 선생의 묵란도와 죽석도. [중앙포토]

석재 서병오 선생의 묵란도와 죽석도. [중앙포토]

 
1933년 석재는 대구지역 유지들과 함께 화가 이인성을 위한 전시회를 열어 준다. 이인성은 석재와는 50년 나이 차가 나는 청년인 데다 전통 서화와는 거리가 먼 서양화의 기대주였다. 또 이듬해는 대구 서양화 연구단체가 미술전람회를 열자 석재는 교남시서화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서화를 기꺼이 찬조 출품했다.
 
석재는 이렇게 전통 서화의 맥을 이으면서 유화 등 새로운 미술에도 열린 자세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대구는 이후 이상정‧이여성‧이쾌대 등 기라성 같은 근대 서양화가를 잇달아 배출한다.
 

사업실패로 99칸집 날리고 빈털터리

대구미술관은 2017년 작가 서병오를 본격 조명하는 대규모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전시회의 제목은 ‘대구미술을 열다’였다. 대구를 근대미술 요람으로 키운 대부(代父)로 석재를 자리매김한 것이다.
 
만석꾼 집안 출신 석재는 1914년 재산의 거의 전부를 투자한 개간사업을 벌이다 홍수를 만나 사업에 실패한다. 오래지 않아 99칸 집을 처분하고 빈털터리가 된다. 그가 남긴 서화는 많은 편이다. 그의 재산은 흩어졌지만 작품은 남았고 대구는 미술을 연 것이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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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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