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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비무장 DMZ를 꿈꾸며

중앙일보 2019.09.05 00:20 종합 31면 지면보기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이번 여름은 불안한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후덥지근한 8월의 워싱턴을 벗어나 인터넷이 잘 연결되지 않는 몬태나 산속의 통나무집으로 탈출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조차 외부 소식을 피할 수 없어 괴로웠습니다. 얼마 전 어느 인도 외교관이 내게 말한 것처럼 어쩌면 세계는 지금 전례없는 동시다발적 위기를 겪고 있는지 모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제도와 관계의 회복력과 타당성을 모두 위협하는 위기 말입니다. 지난달 말 한반도 평화경제의 전망을 논의하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도착하자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지난달 학술회의 방한 중 DMZ 방문
JSA 경비 남북 군인 모두 무장 해제
양측 긴장완화 지속, 확장되길 기대
남북·비핵화 협상 재개도 동반돼야

학자와 정치인 및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여느 국제행사와 다르게 이 행사는 토론 전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포함한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습니다. 대부분의 참가자와 달리 나는 JSA에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방문했던 1975년 8월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국에 새로 온 30여 명의 미국 평화봉사단(Peace Corps)의 필수 예비 훈련 코스였습니다. 우리는 단정한 용모와 옷매무새로 올바른 이미지를 심어주도록 지침과 검사를 받았습니다. 청바지나 티셔츠 차림, 샌들 착용, 남성의 장발은 금지였습니다. 서울 외곽으로 달리다 가이드가 가리킨 곳에는 침략을 막기 위한 대전차장애물들이 있었습니다. 판문점에선 키 큰 미군들이 브리핑을 읊었고 그에 만만치 않게 큰 북한군들이 표정 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미군 스낵바에서 한국에 온 후 처음 본 햄버거를 사먹도록 허락 받았을 때야 비로소 긴장이 풀렸습니다.
 
이듬해인 1976년 충청남도에 살 때 미군 장교 두 명이 JSA에서 북한군의 도끼에 살해당한 충격적 영상을 흑백 텔레비전으로 접했습니다. 그 후 몇 년이 흐르고 80년대에 젊은 외교관으로, 또 몇 년 후 대사로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곳을 찾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로 미국 정치인과 함께였고 가장 최근인 지난해에는 스탠퍼드대 학생들과 방문했습니다. 판문점은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그 인상이 한국의 분열과 안보를 해석하는 방식의 틀을 만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방문했음에도 앞서 함께 갔던 이들보다 구성이 다양하고 규모가 큰 그룹과 38선에 초청을 받았을 때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오두산에 도착하자 우리는 꿈 같이 펼쳐지는 논과 강을 가로질러 북한을 바라봤습니다. 임진각에서는 부산을 평양뿐 아니라 파리까지 연결시키는 기차 노선을 상상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여전히 성조기가 태극기·유엔기와 함께 펄럭이고 있는 JSA와 판문점에 갔습니다. 그곳은 10여 년 전부터 미군이 아닌 한국군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19일 채택된 남북군사합의서 덕분에 JSA에 주둔하는 양측은 무기를 소지하지 않으며 주변의 감시초소는 모두 폐쇄됐습니다.
 
우리는 여러 정상회담이 열렸던 장소를 둘러봤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둘만의 회담 장소로 사용한 도보다리를 따라 걸었습니다. 평온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감정과 생각이 소용돌이 치는 하루였습니다. 한국의 격동적인 현대사와 그간 이룬 모든 성과, 아직 이루지 못한 부분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시작할 때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점차 파괴적인 분단이 돼버린 한반도의 깊은 비극과 그로 인한 인적·경제적 비용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지난해부터 판문점과 DMZ는 1953년 남북휴전협정 서명 이래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 외교의 장이 됐습니다. 판문점은 남북 예비회담과 정상회담의 장소이자 한·미 대통령이 평화 프로세스를 이어가기 위해 김정은 위원장을 향한 유례없는 발걸음을 함께 내디딘 화합의 장소입니다. 이곳이 비판의 장이나 최악의 경우 폭력의 장이 아닌 대화의 장이 되길 희망합니다.
 
남북군사합의서에 따른 긴장 완화 조치는 특히 비핵화 대화가 중단된 지금 같은 시기에 신뢰와 추진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조치는 DMZ 비무장화를 위한 초기 단계지만 환영할 일입니다. 이런 움직임은 지속돼야 하며 확장돼야 합니다. 그리고 남북간의 협상 재개와 비핵화 협상 재개를 동반해야 합니다.
 
1975년의 JSA와 2019년의 JSA사이에는 확실히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전체에 상처를 남긴 DMZ의 실상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한국 군인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는 것은 여전히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경제란 말은 아직 너무나 먼 꿈 혹은 환상 같이 들립니다. 그러나 내가 수십년간 그랬듯 DMZ에 서서 고립된 북한을 바라보며 이곳이 한국을 어떻게 가상의 섬으로 만들었는지 생각했습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부상하면서 고립 상태를 보완하기 위한 훌륭한 방법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한국, 나아가 동북아의 성공과 운명의 최대치는 인프라, 경제적 기회, 비핵화 그리고 너무 오랜 세월 분열된 민족과 땅을 이어줄 평화경제의 비전에 달려있습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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