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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 골퍼 이승찬 “연습장 가운데서 치고 싶어요”

중앙일보 2019.09.05 00:02 경제 7면 지면보기
이승찬은 한국 남자 엘리트 골프 선수 중 유일한 왼손 골퍼다. 필 미켈슨 등 세계적인 선수 중에는 왼손 골퍼가 꽤 된다. 사진은 왼손 타석에서 스윙하는 이승찬. [사진 대한골프협회]

이승찬은 한국 남자 엘리트 골프 선수 중 유일한 왼손 골퍼다. 필 미켈슨 등 세계적인 선수 중에는 왼손 골퍼가 꽤 된다. 사진은 왼손 타석에서 스윙하는 이승찬. [사진 대한골프협회]

허정구배 한국 아마추어 골프 선수권대회가 열린 4일 경기도 성남의 남서울 골프장. 마지막 조에서 경기한 이승찬(19·한국체대)은 왼손잡이다.
 

한국 유일 남자 왼손 엘리트 선수
과거엔 장비 한계, 오른손으로 쳐
왼손이라서 유리한 경우도 있어
미켈슨 등 마스터스 우승 37.5%

한국 골프는 왼손의 불모지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회원 6470명 가운데 왼손 골퍼는 한 명도 없다. 프로 지망 엘리트 아마추어 선수 중에도 왼손은 이승찬이 유일하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회원 2535명 중에는 딱 한 명 있다. 2부 투어에서 활동하던 정이연(28)이 유일한 왼손이다.
 
물론 왼손잡이는 있다. 투어 프로였던 조철상(61), 박세수(51)씨와 KLPGA의 하민송(23) 등은 왼손잡이다. 하지만 골프는 오른손으로 친다. KLPGA 투어 신인 박현경(19)의 아버지인 박세수씨는 “1980년대엔 왼손 클럽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왼손으로 치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다. 돌아보면 오른손으로 친 걸 후회한다. 왼손잡이가 오른손으로 치니 자연스럽지 않았고 컨디션에 따라 스윙 변화가 심했다”고 회상했다.
 
이승찬은 축구를 하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골프로 전환했다. 다른 선수들처럼 일찍 시작했다면, 또 그의 아버지가 왼손잡이가 아니었다면 오른손 골퍼로 살았을 것이다. 이승찬은 “불편한 점이 대단히 많다. 신제품이 나와도 한국엔 왼손 클럽이 들어오지 않아 구해서 쓰기가 쉽지 않다. 또 골퍼들이 연습장에서 마주 보고 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구석에서 쳐야 한다”며 “성공하면 연습장 가운데에 왼손 타석을 만드는 게 꿈 중 하나”라고 말했다.
 
스포츠에서 왼손잡이가 유리한 종목이 많다. 희소성 때문이다. 선수들 대부분(약 90%)이 오른손잡이라서 오른손잡이를 상대로 경기하는 건 익숙하다. 대신 왼손잡이에 대해선 혼란을 느낀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테니스·펜싱·복싱 상위 랭커 15% 이상, 특히 펜싱은 세계대회 4강권 선수 중 50%가 왼손잡이”라고 보도한 적이 있다.
 
경기 규칙이 왼손잡이에 유리한 종목도 많다. 예를 들어 야구 좌완투수는 세트 포지션에서 몸이 1루 쪽으로 향해 있어 주자 견제에 용이하다. 왼손 타석은 오른손 타석보다 1루에 가깝다. 다리 샅바를 왼손으로 잡는 씨름에서도 왼손잡이는 더 세게 잡을 수 있어 유리하다.
 
다른 분야에서도 왼손잡이가 천재적 감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파블로 피카소·미켈란젤로·알베르트 아인슈타인·빌 게이츠 등이 왼손잡이다.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오른쪽 뇌가 시각·감성·공간 사고나 창의성을 담당한다. 운동에서도 오른손잡이보다 창의적이며 순발력이 좋다는 주장이다.
 
골프의 경우 왼손잡이에겐 어려움이 많지만, 일단 엘리트 선수가 될 경우 오히려 유리하다. 골프 코스는 일반적으로 오른손잡이에 맞춰 만들어진다. 이는 골프 코스 설계가들이 파놓은 함정에도 해당한다. 소수자인 왼손잡이가 이를 극복하는데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특히 최고 권위의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가 그렇다. 최근 17차례 마스터스에서 왼손잡이가 6차례(37.5%) 우승했다. 왼손 골퍼 비율이 높게 잡아도 5%도 안 되는 걸 고려하면 매우 높은 비율이다. 필 미켈슨(3회), 버바 왓슨(2회), 마이크 위어(1회)가 마스터스에서 그린 재킷을 입었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은 왼쪽으로 구부러지는 홀이 많다. 특히 파 5홀에서 왼쪽으로 돌려치는 선수가 투(2)온에는 절대 유리하다. 오른손잡이는 왼쪽으로 휘어 드로(draw) 구질을 칠 수는 있지만 런이 많아 위험하다.
 
야구에서 희귀했던 왼손 타자가 많이 늘어난 것처럼, 골프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예상된다. 이승찬은 “미국 PGA 투어에도 진출하고 왼손이 유리하다는 마스터스에도 꼭 나가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매경·솔라고배 아마추어 선수권 우승자 이승찬은 이날 2라운드까지 1오버파 공동 24위를 달렸다.
 
성남=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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