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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타워 맨손 등반 김자인 “영화 엑시트는 말이죠…”

중앙일보 2019.09.05 00:02 경제 6면 지면보기
김자인은 내년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스포츠 클라이밍에서 메달에 도전한다. 3일 서울 응봉산에서 인공암벽을 오르는 김자인. 우상조 기자

김자인은 내년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스포츠 클라이밍에서 메달에 도전한다. 3일 서울 응봉산에서 인공암벽을 오르는 김자인. 우상조 기자

요즘 영화 ‘엑시트’가 화제다. 개봉(7월31일) 6주 만에 누적 관객 수 895만명(2일 기준)을 기록했다. 900만 돌파가 초읽기에 들어갔고, 1000만 대열에도 합류할 조짐이다.
 

관객 900만명 동원 화제의 영화
오빠가 주연배우 암벽등반 지도
소방대원 남편도 재난영화 관심
부상에도 올림픽 출전권에 올인

영화는 어머니 칠순 잔칫날 유독가스로 뒤덮인 고층건물에 있던 용남(조정석)과 의주(임윤아)의 탈출기를 그렸다. 대학 산악부 출신 용남은 컨벤션 센터 간판과 외벽장식을 이용해 탈출한다. 
 영화 ‘엑시트’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엑시트’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불현듯 궁금했다.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가는 이 영화를 ‘암벽 여제’ 김자인(31)은 어떻게 봤을까. 김자인은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 리드(lead) 최다우승자(28회)다. 리드는 15m 인공암벽을 6~8분에 누가 더 높이 오르는지 겨루는 종목이다. 또 하나. 그의 오빠인 클라이밍 국가대표 김자비(32)는 이번 영화의 주연배우들과 감독에게 암벽타기를 개인 지도했다.
3일 서울 응봉산에서 인공암벽을 오르는 김자인. 우상조 기자 우상조 기자

3일 서울 응봉산에서 인공암벽을 오르는 김자인. 우상조 기자 우상조 기자

 
“저라면 못할 것 같아요. 그냥 연기 마시고 죽을래요. 헤헤.”
 
3일 서울 응봉산 인공암벽등반공원에서 만난 김자인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는 “영화는 시사회 날 부모님과 함께 봤다”며 “주인공이 로프를 끊고 외벽을 오르는 장면이 있다. 만약 내가 그 상황이라면, 줄이 있을 경우엔 점프를 뛰고 괜찮았을 텐데, 줄이 없다면 진짜 안 할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영화 엑시트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엑시트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용남은 로프를 끊더니 맨손으로 사자 머리 장식을 이용해 건물 외벽을 오른다. 김자인은 “그 장면을 보면서 ‘왜 미끄럽고 아무것도 없는 부분을 잡고 낑낑대며 올라갈까’라고 생각했다. 그런 경우에는 홈 또는 주름이 있거나, 손이 걸리는 부분을 잡는 편이 낫다”고 클라이밍 선수다운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영화에서는 구조헬기에 자리가 모자라자 주인공 남녀는 가족을 탈출시킨 뒤 옥상에 남는다. 김자인은 “그 장면에서 남편에게 ‘어떻게 사람을 놔두고 갈 수가 있지’라고 물었더니, 남편이 ‘안전상 인원이 초과하면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김자인은 실내암벽장에서 만난 소방공무원 오영환(31)씨와 2015년 결혼했다. 오씨는 중앙119구조대에서 헬기 구조를 맡고 있다. 얼마 전에는 강원도로 산불 진화도 다녀왔다.
 
김자인은 실내암벽장에서 만난 소방공무원 동갑내기 오영환씨와 2015년 결혼했다. [사진 김자인 인스타그램]

김자인은 실내암벽장에서 만난 소방공무원 동갑내기 오영환씨와 2015년 결혼했다. [사진 김자인 인스타그램]

김자인은 “영화가 재난 현장을 잘 그리고 있고, 안전 대비 등 교육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옥상 문이 잠겨 있는 점을 지적하거나, 방독면 정화통에는 교체시간이 있는 것도 알려준다”며 “‘루트 파인딩’, ‘완등가자’ 등 영화 속 대사는 실제 클라이밍에서도 쓰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김자인은 롯데월드타워 외벽에 홀드를 설치하지 않고 건물의 자체구조물과 안전장비만 이용해 완등했다.[사진 롯데월드타워 페이스북 라이브 캡처]

김자인은 롯데월드타워 외벽에 홀드를 설치하지 않고 건물의 자체구조물과 안전장비만 이용해 완등했다.[사진 롯데월드타워 페이스북 라이브 캡처]

 
사실 김자인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위험한 도전을 한 일이 있다. 2017년 5월 22일, 그는 맨손으로 지상에서 롯데월드 타워 정상까지 올랐다. 건물은 123층, 높이는 555m다.
 
건물 외벽에 홀드(인공손잡이)를 설치하지 않은 채, 건물의 자체구조물과 안전장비만 이용해 완등했다. 그는 “당시 하도 높아서 현실감이 없었다. 안전장비도 갖췄고, 오직 완등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김자인은 홀드를 수없이 잡았더니 지문이 사라졌다가 다시 생기기를 반복한다. 공항에서 출입국 심사 때 지문인식이 안된 적도 많다. [사진 김자인 인스타그램]

김자인은 홀드를 수없이 잡았더니 지문이 사라졌다가 다시 생기기를 반복한다. 공항에서 출입국 심사 때 지문인식이 안된 적도 많다. [사진 김자인 인스타그램]

 
인터뷰하던 날 김자인은 인공암벽을 정상까지 오르지는 못했다. 그는 “병원에서 엄청 아픈 주사를 손에 맞고 오는 길이다. 7월 스위스 리드 월드컵 도중 왼손 인대가 파열됐다”며 “내년 올림픽 출전권 확보를 위해선 훈련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스포츠 클라이밍 콤바인은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이다. 리드와 볼더링(5m 인공암벽 4~5개를 놓고 완등 횟수를 겨루는 종목), 스피드(15m 암벽을 누가 빨리 올라가는지 겨루는 종목) 세 종목 점수를 합산해 메달 색을 가린다.
 
지난 10년간 리드 여자 세계 최강자였던 김자인은 “스피드 전문선수는 7초대가 나온다. 나는 지난해 뒤늦게 시작해 최고기록이 10초12”라며 “육상에서 100m와 마라톤이 다른 것처럼, 세 종목은 힘을 쓰는 메커니즘이 서로 다르다. 주 종목 리드에서 상위권에 오른 뒤, 스피드에서 최대한 순위를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도쿄올림픽 출전권은 20장이다. 부상 중인 김자인은 지난달 출전권 7장이 걸린 세계선수권에서 40위에 그쳤다. 11월 프랑스 월드컵(6장)과 내년 5월 아시아선수권(1장)을 통해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나선다.
 김자인의 일그러진 발. 실제보다 20㎜ 작은 205㎜짜리 클라이밍화를 신는다. 우상조 기자

김자인의 일그러진 발. 실제보다 20㎜ 작은 205㎜짜리 클라이밍화를 신는다. 우상조 기자

 
체구(1m53㎝·41㎏)가 작은 김자인은 발 실제 크기보다 20㎜ 작은 205㎜짜리 암벽화를 신는다. 발가락이 휘어지는 고통이 따르지만, 작은 신발을 신어야 발에 힘을 모을 수 있다. 요즘도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김자인의 체지방률은 8%에 불과하다.
하루에 한끼만 먹으며 관리하는 김자인의 체지방은 8%에 불과하다. [사진 스파이더 코리아]

하루에 한끼만 먹으며 관리하는 김자인의 체지방은 8%에 불과하다. [사진 스파이더 코리아]

 
현 IFSC 클라이밍 세계 1위 안야 간브렛(슬로베니아)는 20세다. 세계 3위 김자인은 “내년에 32세다. 나랑 오래 뛰었던 동갑내기 일본 선수는 지금 코치다. 요즘 대회에 나가면 나이로 톱3에 든다”며 “그래도 가장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 클라이밍이라 포기할 수 없다. 올림픽까지 도전하고 은퇴를 고민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자인은 2016년12월 중국 양슈오 백산구역 자연암장에서 고난도 암벽을 잇따라 완등했다.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높이 35m 루트의 차이나 클라임을 연습도 하지 않고 단 번에 올랐다. 이어 같은 구역의 35m 루트의 스파이시 누들도 두 차례 시도 끝에 세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완등했다.[사진 올댓스포츠]

김자인은 2016년12월 중국 양슈오 백산구역 자연암장에서 고난도 암벽을 잇따라 완등했다.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높이 35m 루트의 차이나 클라임을 연습도 하지 않고 단 번에 올랐다. 이어 같은 구역의 35m 루트의 스파이시 누들도 두 차례 시도 끝에 세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완등했다.[사진 올댓스포츠]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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