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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알 1만1000원…마트 사과 비결은

중앙일보 2019.09.05 00:02 경제 4면 지면보기
서울시 강서구 방화동에 거주하는 A씨(38)는 최근 집 냉장고에서 무심코 사과를 꺼내 한 입 베어 물었다가 아내에게 ‘등짝 스매싱(smashing·점프해서 배구공을 전력으로 때리는 공격 방식)’을 당했다. A씨의 아내는 “추석에 시댁에 가져가려고 샀는데 먹어버리면 어떡하나”고 화를 냈다. A씨는 “고작 사과 하나 때문에 너무한다”고 툴툴거렸지만 ‘개당 1만1000원짜리’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사과했다.
 

“이커머스와 승부처는 신선식품”
롯데에 ‘황금당도’ 납품 충주 농가
절반 솎아내 달고 큰 사과 생산
상위 3% 중 선별장서 최종 선택

A씨가 먹었던 사과는 ‘황금당도 사과’다. 롯데마트가 올해 추석을 맞아 선보인 제품이다. 황금당도 사과라고 이름을 붙인 건 일반 사과보다 당도가 크게 높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추석용 햇사과 선물세트보다 황금당도 사과는 22~37% 비싸다.
 
김택성(왼쪽) 명품프레샤인 공동선별회장과 그의 아내 우영자 씨가 지난달 29일 명산농원에서 사과를 키우고 있다. 여기서 재배한 사과 5개 중 1개 정도는 최상품 사과다. 문희철 기자

김택성(왼쪽) 명품프레샤인 공동선별회장과 그의 아내 우영자 씨가 지난달 29일 명산농원에서 사과를 키우고 있다. 여기서 재배한 사과 5개 중 1개 정도는 최상품 사과다. 문희철 기자

사과의 고향은 충주다. 명산농원에서 막내딸처럼 귀하게 자랐다. 일반적인 사과나무는 가지마다 보통 5~10개 안팎의 사과를 수확하는데, 이 사과는 같은 가지에서 자란 ‘자매’가 고작 3~4명 안팎이다. 영양분을 몰아주기 위해서다. 명산농원을 운영하는 김택성 명품프레샤인 공동선별회장은 “사과 알을 굵게 키우려고 가지마다 서너알만 선별하고 나머지는 잘라버렸다”고 설명했다.
 
충북원예농협 충주거점산지유통센터는 여기서 생산한 사과 중에서 최상급을 골라낸다. 기준은 당도·중량·색깔 3가지다. 무게(210g)가 충분히 무거우면서, 색깔은 빨간색이 전체 색상의 80%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당도의 측정단위인 브릭스(brix·용액 100g당 당의 농도(그람·g)를 나타내는 단위)가 14브릭스 이상이면 고당도로 분류한다(A등급 사과). 명산농원에서 가져온 사과는 5개 중 1개가 16브릭스 이상이었다.
 
충북원예농협 거점APC산지유통센터의 사과 자동 분류 설비. 문희철 기자

충북원예농협 거점APC산지유통센터의 사과 자동 분류 설비. 문희철 기자

심진현 충북원예농협 충주거점산지유통센터 과장은 “15.5브릭스를 초과하는 사과는 전량 롯데마트로 보내고, A등급 사과는 미국·대만·홍콩으로 수출도 한다”고 설명했다. 상위 3%의 사과는 다시 북동쪽으로 70㎞를 달려 롯데신선품질혁신센터에 도착한다. 진짜 황금당도 사과를 골라내는 곳이다. 빛을 사과에 쏘아서 투과한 빛의 양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당도를 계산한다. 당이 빛을 흡수하는 성질을 이용한 검사 방식이다.
 
육군정 롯데신선품질혁신센터 과일파트장은 “중량(9종)·당도(저당·고당·황금당도)를 기준으로 27종으로 분류한다”며 “배는 13브릭스 이상, 사과는 16브릭스 이상이면 황금당도 과일”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은 배를 분류하는 날이었는데, 이날 들어온 배의 8%만 황금당도였다.  
 
롯데신선품질혁신센터에서 배의 당도를 측정했더니 보통 배보다 훨씬 단 13브릭스였다. 문희철 기자

롯데신선품질혁신센터에서 배의 당도를 측정했더니 보통 배보다 훨씬 단 13브릭스였다. 문희철 기자

대형마트가 과일 선별에 이렇게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는 건 쿠팡·티몬으로 대표하는 이커머스(e-commerce)와 차별화하기 위해서다. 이커머스는 제품을 전시할 매장이 필요 없기 때문에, 제품 수로 따지면 대형마트가 따라갈 수 없다. 제품 차별화가 안 된다면 같은 제품이라도 품질을 차별화한다는 것이 대형마트 전략이다.
 
온라인 쇼핑이 확산하더라도 신선식품 품질은 온라인에서 대체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형마트 생각이다. 신선제품은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배송하는 것이 관건이다. 제품이 상온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관·저장·운송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물류창고와 운송차량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커머스가 쉽게 따라 하기 어렵다. 문영표 롯데마트 대표는 사내 신선부문회의에서 “대형마트가 강점을 가질 수 있는 분야가 신선식품”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이커머스와 경쟁에서 대형마트가 결코 소비자를 뺏기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곳이 신선식품 분야”라며 “대형마트 적자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신선제품을 앞세워 소비자를 유치하면 이커머스와 경쟁에서 승산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이커머스가 신선식품을 맞춤화·개인화하는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신선식품 분야에서 대형마트와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충주·증평=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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