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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관객 넘보는 영화 엑시트, '암벽여제' 김자인 어떻게 봤나

중앙일보 2019.09.04 15:37
3일 응봉산 인공암벽등반공원에서 만난 암벽여제 김자인. 우상조 기자

3일 응봉산 인공암벽등반공원에서 만난 암벽여제 김자인. 우상조 기자

요즘 영화 ‘엑시트’가 화제다. 개봉(7월31일) 6주 만에 누적 관객수가 895만명(9월 2일 기준)에 달한다. 900만 돌파를 앞뒀고, 1000만 관객도 넘보고 있다.  
 

산악부 출신 청년백수 고층건물 탈출기
로프 끊고 간판과 외벽장식 이용
김, "그냥 연기 마시고 죽을래요" 농담
2년 전 홀드없이 123층 롯데월드타워 완등

영화는 어머니 칠순 잔칫날 유독가스로 뒤덮인 고층건물에서 청년 백수 ‘용남(조정석)’과 ‘의주(임윤아)’의 탈출기를 그렸다. 대학 산악부 출신 조정석은 컨벤션 센터 외벽을 간판과 외벽장식을 이용해 오른다. 
영화 '엑시트'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엑시트'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불현듯 궁금해졌다. ‘암벽 여제’ 김자인(31)은 ‘엑시트’를 어떻게 봤을까. 김자인은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 리드(lead) 최다우승(28회) 보유자다. 리드는 15m 인공암벽을 6~8분 내에 누가 더 높이 오르는지 겨루는 종목이다.
 
“저라면 못할 것 같아요. 그냥 그냥 연기 마시고 죽을래요. 헤헤.”
 
3일 서울 응봉산 인공암벽등반공원에서 만난 김자인은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클라이밍 대표선수 오빠(김자비)가 주연배우와 감독에게 암벽타기 과외를 했다. 시사회 날 부모님과 함께 봤다”는 김자인은 “주인공이 로프를 끊고 외벽을 오르는 장면이 있다. 만약 나였다면 줄이 있으면 점프를 뛰고 괜찮았을텐데, 줄이 없다면 진짜 안할래요”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영화 '엑시트' 촬영 비하인드컷.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엑시트' 촬영 비하인드컷.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긴급상황이 닥치자 조정석은 로프를 끊더니 맨손으로 사자머리 장식을 이용해 건물 외벽을 오른다. 김자인은 “그 장면을 보고 ‘왜 미끄럽고 아무 것도 없는 부분을 잡고 낑낑대며 올라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홈 또는 주름이 있거나, 손이 걸리는 부분을 잡는게 낫다”고 클라이밍 선수다운 현실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영화에서 구조헬기의 자리가 모자라자 가족들만 탈출시키고 주인공 남녀가 옥상에 남는다. 김자인은 “남편에게 ‘어떻게 사람을 놔누고 갈 수가 있어?’라고 물으니 ‘안전상 인원이 초과되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은 중앙 119 구조대에서 헬기구조를 하고 있고, 최근 강원도 산불 진화도 다녀왔다”고 말했다. 김자인은 실내암벽장에서 만난 소방공무원 오영환(31)씨와 2015년 결혼했다. 
 
김자인은 실내암벽장에서 만난 소방공무원 오영환(31)씨와 2015년 결혼했다. [사진 김자인 제공]

김자인은 실내암벽장에서 만난 소방공무원 오영환(31)씨와 2015년 결혼했다. [사진 김자인 제공]

김자인은 “영화가 재난안전대비 현장을 잘 표현하고 교육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옥상문이 잠겨 있다거나, 방독면 정화통 교체 시간이 있는 것도 알려준다”며 “‘루트 파인딩’, ‘완등가자’ 같은 영화 속 대사는 실제 클라이밍에서도 쓰는 말”이라고 했다.  
 
김자인은 2017년 5월22일 맨손으로 롯데월드타워 정상에 올랐다. 이 건물의 높이는 123층 555m다. [사진 롯데물산]

김자인은 2017년 5월22일 맨손으로 롯데월드타워 정상에 올랐다. 이 건물의 높이는 123층 555m다. [사진 롯데물산]

사실 김자인은 영화보다 더 위험한걸 현실에서 해낸 적이 있다. 김자인은 2017년 5월22일 맨손으로 롯데월드타워 정상에 올랐다. 이 건물의 높이는 123층, 555m다. 그런데도 외벽에 홀드(인공손잡이)를 설치하지 않고 건물의 자체구조물과 안전장비만 이용해 완등했다. 김자인은 “하도 높아서 현실감이 없었다. 안전장비도 했고, 완등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자인은 롯데월드타워 외벽에 홀드를 설치하지 않고 건물의 자체구조물과 안전장비만 이용해 완등했다.[사진 롯데월드타워 페이스북 라이브 캡쳐]

김자인은 롯데월드타워 외벽에 홀드를 설치하지 않고 건물의 자체구조물과 안전장비만 이용해 완등했다.[사진 롯데월드타워 페이스북 라이브 캡쳐]

인터뷰 당일 김자인은 인공암벽의 높은 곳까지는 오르지 못했다. 김자인은 “병원에서 손에 엄청 아픈 주사를 맞고 오는 길이다. 지난 7월 스위스 리드 월드컵 도중 왼손 인대가 파열됐다”며 “내년 올림픽 출전권을 위해서는 훈련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스포츠 클라이밍 콤바인은 내년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이다. 리드, 볼더링(5m 인공암벽 4~5개를 놓고 완등 횟수를 겨루는 종목), 스피드(15m 암벽을 누가 빨리 올라가는지 겨루는 종목) 세 종목 점수를 합산해 우승자를 가린다.  
 
지난 10년간 리드 최강자였던 김자인은 “스피드 전문선수는 7초대가 나오는데, 지난해 스피드를 뒤늦게 시작한 난 최고기록이 10초12”라며 “육상 단거리 100m와 마라톤처럼, 세 종목 다 완전히 힘을 쓰는 매커니즘이 다르다. 주종목인 리드에서 상위권에 오르고, 스피드에서 최대한 순위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도쿄올림픽 클라이밍 출전권은 총 20장이다. 김자인은 지난달 부상을 안고 출전한 일본 세계선수권(쿼터 7장)에서 40위에 그쳤다. 오는 11월 프랑스 월드컵(쿼터 6장)과 내년 5월 일본 아시아선수권(우승 1장)을 통해 올림픽 출전을 도전한다. 
 
요즘도 하루에 한끼만 먹는 김자인의 체지방률은 8%에 불과하다. [사진 스파이더코리아]

요즘도 하루에 한끼만 먹는 김자인의 체지방률은 8%에 불과하다. [사진 스파이더코리아]

체구(1m53㎝·41㎏)가 작은 김자인은 암벽화를 발 크기보다 20㎜ 작은 205㎜짜리를 신는다. 발가락이 휘어져 고통이 따르지만 작은 신발을 신어야 발에 힘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도 하루에 한끼씩만 먹는 김자인의 체지방률은 8%에 불과하다.  
 
현 IFSC 클라이밍 월드 랭킹 1위 안야 간브렛(슬로베니아)는 20살이다. 세계랭킹 3위 김자인은 “난 내년에 32세다. 나랑 오래 뛰었던 32세 일본선수는 지금 코치다. 요즘 대회에 나가면 나이로 톱3에 든다”며 “그래도 제가 가장 재미있게 할 수 있는게 클라이밍이라 포기할 수 없다. 올림픽까지 도전하고 선수 은퇴를 고민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자인은 2016년12월 중국 양슈오 백산구역 자연암장에서 고난도 암벽을 잇따라 완등했다.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높이 35m 루트의 차이나 클라임을 연습도 하지 않고 단 번에 올랐다. 이어 같은 구역의 35m 루트의 스파이시 누들도 두 차례 시도 끝에 세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완등했다.[사진 올댓스포츠]

김자인은 2016년12월 중국 양슈오 백산구역 자연암장에서 고난도 암벽을 잇따라 완등했다.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높이 35m 루트의 차이나 클라임을 연습도 하지 않고 단 번에 올랐다. 이어 같은 구역의 35m 루트의 스파이시 누들도 두 차례 시도 끝에 세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완등했다.[사진 올댓스포츠]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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