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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손대면 등짝 맞는 ‘황금당도 사과’ 어떻게 자랐기에

중앙일보 2019.09.04 14:57

[르포] ‘황금당도 사과’ 산지 추적해보니

 
 
서울시 강서구 방화동에 거주하는 A씨(38)는 최근 집 냉장고에서 무심코 사과를 꺼내 한 입 베어 물었다가 아내에게 ‘등짝 스매싱(smashing·점프해서 배구공을 전력으로 때리는 공격 방식)’을 당했다. A씨의 아내는 “주말에 시댁에 가져가려고 샀다”며 “아들도 안 준 걸 먹어버리면 어떡하나”고 화를 냈다. A씨는 “고작 사과 하나 때문에 너무한다”고 툴툴거렸지만 ‘개당 1만1000원짜리’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사과했다.
 
A씨가 먹었던 사과는 ‘황금당도 사과’다. 롯데마트가 올해 추석을 맞아 선보인 제품이다. 황금당도 사과라고 이름을 붙인 건 일반 사과보다 당도가 크게 높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충주 명산농원에서 재배 중인 ‘황금당도 사과.’ 충주 = 문희철 기자

충주 명산농원에서 재배 중인 ‘황금당도 사과.’ 충주 = 문희철 기자

 
물론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과일은 이보다 비싼 경우가 있다. 하지만 브랜드·희소성보다 대규모 판매를 중시하는 대형마트에서 1만원이 넘는 사과가 대표상품으로 매대 최전선에 등장한 건 이례적이다. 요즘 대형마트에서 판매 중인 추석용 햇사과 선물세트는 고급 제품의 경우 1개당 가격이 8000~9000원 수준이다. 황금당도 사과는 이보다 22~37% 비싸다.
 
몸값 비싼 사과의 고향은 ‘물의 고장’ 충주다. 명산농원에서 막내딸처럼 귀하게 자랐다. 일반적인 사과나무는 가지마다 보통 5~10개 안팎의 사과를 수확하는데, 이 사과는 같은 가지에서 자란 ‘형제’가 고작 3~4명 안팎이다. 영양분을 몰아주기 위해서다.  
 
충북원예농협 거점APC산지유통센터에서 사과 당도를 측정했더니 17.2브릭스를 기록했다. 충주 = 문희철 기자

충북원예농협 거점APC산지유통센터에서 사과 당도를 측정했더니 17.2브릭스를 기록했다. 충주 = 문희철 기자

 
명산농원을 운영하는 김택성 명품프레샤인 공동선별회장은 “사과 알을 굵게 키우려고 가지마다 서너알만 선별하고 나머지는 잘라버렸다”며 “덕분에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 3% 정도 나오는 무게 210g 이상의 사과가 우리 과수원에선 20% 정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생산한 사과는 혹여 다칠까 하나씩 종이에 담겨 10㎞ 정도 이동한다. 충주시 금가면에 위치한 충북원예농협 충주거점산지유통센터는 이 사과 중에서도 최상급 사과를 골라낸다. 기준은 당도·중량·색깔 3가지다. 무게(210g)가 충분히 무거우면서, 색깔은 빨간색이 전체 색상의 80% 이상을 차지해야 한다. 
 
김택성 회장은 “사과가 골고루 빨갛게 익게 하려고 주기적으로 사과를 돌려주면서 빛을 받는 위치를 바꿔주고, 사과나무 아래 은박지를 깔아 빛 반사를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당도·중량·색깔 기준 충족해야

 
충청북도 충주시 충북원예농협 거점APC산지유통센터. 충주시에서 나온 사과를 자동으로 분류하는 설비를 갖췄다. 충주 = 문희철 기자

충청북도 충주시 충북원예농협 거점APC산지유통센터. 충주시에서 나온 사과를 자동으로 분류하는 설비를 갖췄다. 충주 = 문희철 기자

 
크고 예뻐도 먹을 때 달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이 센터가 보유한 비파괴당도선별기는 실시간으로 당도를 측정하는데, 명산농원에서 가져온 사과는 5개 중 1개가 16브릭스 이상이었다. 통상적으로 당도의 측정단위인 브릭스(brix·용액 100g당 당의 농도(그람·g)를 나타내는 단위)가 14브릭스 이상이면 고당도로 분류한다(A등급 사과). 일반 농장에서 생산하는 사과는 고당도 사과 비율이 2~3% 안팎이다. 실제로 중앙일보가 방문한 이날 자동분류기는 사과의 2.9%만 A등급으로 분류했다.
 
심진현 충북원예농협 충주거점산지유통센터 과장은 “15.5브릭스를 초과하는 사과는 전량 롯데마트로 보내고, A등급 사과는 미국·대만·홍콩으로 수출도 한다”고 설명했다.
 
사과분류기에서 달려가는 사과. 충주 = 문희철 기자

사과분류기에서 달려가는 사과. 충주 = 문희철 기자

 
함부로 먹었다간 등짝을 얻어맞을 정도로 귀한 사과는 이렇게 1차 관문을 통과했다고 끝이 아니다. 상위 3%의 사과는 다시 북동쪽으로 70㎞를 달려 롯데신선품질혁신센터에 도착한다. 진짜 황금당도 사과를 골라내는 곳이다. 빛을 사과에 쏘아서 투과한 빛의 양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당도를 계산한다. 당이 빛을 흡수하는 성질을 이용한 검사 방식이다.
 
육군정 롯데신선품질혁신센터 과일파트장은 “이곳에 도착한 과일은 중량(9종)·당도(저당·고당·황금당도)를 기준으로 27종으로 분류한다”며 “배는 13브릭스 이상, 사과는 16브릭스 이상이면 황금당도 과일라인으로 이동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은 배를 분류하는 날이었는데, 이날 들어온 배의 8%만 황금당도였다. 이 과정을 모두 통과해야 ‘황금당도’라는 브랜드를 부착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롯데신선품질혁신센터에서 임의로 선택한 배를 잘라 당도를 검사했더니 13브릭스를 기록했다. 증평 = 문희철 기자

롯데신선품질혁신센터에서 임의로 선택한 배를 잘라 당도를 검사했더니 13브릭스를 기록했다. 증평 = 문희철 기자

 

생존경쟁하는 대형마트 대표상품

 
대형마트가 과일 선별에 이렇게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는 건 쿠팡·티몬으로 대표하는 이커머스(e-commerce)와 차별화하기 위해서다. 이커머스는 제품을 전시할 매장이 필요 없기 때문에, 제품수로 따지면 대형마트가 따라갈 수 없다. 제품 차별화가 안 된다면 같은 제품이라도 품질을 차별화한다는 것이 대형마트 전략이다.  
 
특히 온라인 쇼핑이 확산하더라도 신선식품 품질은 온라인에서 대체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형마트 생각이다. 신선제품은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배송하는 것이 관건이다. 제품이 상온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관·저장·운송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물류창고와 운송차량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커머스가 쉽게 따라하기 어렵다.
 
롯데신선품질혁신센터에서 선별한 당도가 높고 크기가 큰 사과와 배는 '황금당도'라는 브랜드로 롯데마트에서 판매한다. 증평 = 문희철 기자

롯데신선품질혁신센터에서 선별한 당도가 높고 크기가 큰 사과와 배는 '황금당도'라는 브랜드로 롯데마트에서 판매한다. 증평 = 문희철 기자

 
대형마트 3사는 이마트는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NE.O)를 운영하고 홈플러스는 온도를 관리할 수 있는 신선배송 전용 차량을 운행 중이다. 롯데마트도 연면적 5만6000㎡(1만7000평) 규모의 신선품질혁신센터에서 신선제품을 관리한다.
 
문영표 롯데마트 대표는 사내 신선부문회의에서 “대형마트가 강점을 가질 수 있는 분야가 신선식품”이라며 “명확한 맛·신선도·안전성 기준을 세우고 합리적인 가격에 프리미엄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경남 거창군 거창읍 정장리 포도원에서 농민이 씨 없는 청포도인 샤인머스캣을 수확하고 있다. [사진 거창군]

경남 거창군 거창읍 정장리 포도원에서 농민이 씨 없는 청포도인 샤인머스캣을 수확하고 있다. [사진 거창군]

 
실제로 대형마트는 이커머스에서 구입하기 어려운 희귀한 신품종 고급 과일을 종종 내놓고 있다. 롯데마트는 연말까지 20여종의 황금당도 상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마트가 판매하는 1%수박은 12브릭스 이상의 고당도 제품만 선별한 수박이다. 일반 수박보다 50% 정도 비싸지만 소비자들에게 인기다. 5월~8월 이마트 프리미엄 수박 매출(개당 2만원 이상)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11.2% 증가했다.  
 
씨 없는 고당도 포도(샤인머스캣)도 대형마트의 효자상품으로 꼽힌다. 이마트 샤인머스캣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100배 이상 늘었다(10074.3%·1~7월 기준) 올 추석에도 이마트(프리미엄 샤론세트)와 롯데마트(샤인머스캣 세트)는 샤인머스캣 추석선물세트를 출시했다. 이렇게 프리미엄 제품을 선보여 온라인으로 쇼핑하는 소비자의 발길을 오프라인 매장으로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이커머스와 경쟁에서 대형마트가 결코 소비자를 뺏기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곳이 신선식품 분야”라며 “대형마트 적자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신선제품을 앞세워 소비자를 유치하면 이커머스와 경쟁에서 승산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이커머스가 신선식품을 맞춤화·개인화하는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신선식품 분야에서 대형마트와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충주·증평 =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황금당도 사과가 태어난 명산농원
 
김택성(오른쪽), 우영자 부부가 재배하는 사과나무에서는 5개 중 1개꼴로 210g 이상 큰 사과가 나온다. 충주 = 문희철 기자

김택성(오른쪽), 우영자 부부가 재배하는 사과나무에서는 5개 중 1개꼴로 210g 이상 큰 사과가 나온다. 충주 = 문희철 기자

3000그루의 사과나무를 재배 중인 명산농원의 김택성(오른쪽), 우영자 부부. 충주 = 문희철 기자

3000그루의 사과나무를 재배 중인 명산농원의 김택성(오른쪽), 우영자 부부. 충주 = 문희철 기자

김택성(오른쪽) 명품프레샤인 공동선별회장과 그의 아내 우영자 씨가 롯데마트에 납품할 예정인 사과를 키우고 있다. 충주 = 문희철 기자

김택성(오른쪽) 명품프레샤인 공동선별회장과 그의 아내 우영자 씨가 롯데마트에 납품할 예정인 사과를 키우고 있다. 충주 = 문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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