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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내로남불 교육법

중앙일보 2019.09.04 00:20 종합 30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과연 한국 사회 최고 블랙홀은 자녀 문제인가. 어떻게든 내 자식은 남보다 잘 키우고 싶다는 건 좌우 따로 없는 불변의 욕망인가. 그제 청문회를 대신해 열린 ‘해명회’성 기자간담회에서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당당했다. 딸과 관련된 각종 의혹에 “불법은 없었다”고 맞받아쳤다. 평소 그렇게 비판하던 특목고(외고)-의학전문대학원으로 이어지는 ‘황금스펙’ 코스를 딸에게 밟게 하고, ‘아버지가 조국이어서’ 가능한 각종 특혜를 누리게 했는데도 말이다. 당연히 합법이냐, 불법이냐가 핵심이 아니다. 그는 “(딸 같은 기회를 갖지 못한) 흙수저 청년들에게 미안하다”고 했지만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말과 달리 진심으로 미안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때는 누구나 그랬다’ 또는 ‘내 자식 위해 최선을 다한 게 죄냐’가 정말 그가 하고 싶은 말처럼 들렸다.
 

공정성, 계층문제 부각 조국 사태
입시제도 개선 논의 시작 모양새
정국 타개용 접근은 혼란만 양산

지지자들은 모든 걸 정치 논리로 환원시켰다. 조국을 비판하면 반개혁, 적폐세력이란 정치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젊은 세대의 반발 등 한국 사회가 들썩이는데도 모든 게 다 ‘정치공세’라니, 사태의 엄중함을 부러 외면하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지난 주말 주요 신문이 일제히 소개한 『20 대 80의 사회』는 불평등과 계층 이동성 연구자인 리처드 리브스의 흥미로운 책이다. 1:99의 극단적 양극화보다 20:80의 불평등에 주목한다. “꼭대기 1%의 바로 아래에 있는 19%와 그 아래 80%의 경제적 분리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으며, 중상류층이 교육 등을 통해 불평등을 고착화한다”는 게 요지다. 바로 “당신과 나 같은 먹물들”이 월가 시위에 나와 수퍼 리치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지만, 사실은 제 자녀가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유리바닥’을 깔아주는 데 여념이 없다는 지적도 한다. 리브스에 따르면 ‘계층 이동성 없는 능력 본의주의’가 현재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으며, 고등교육은 오히려 ‘불평등을 일구는 기제’가 됐다. 학사 학위가 대중화되자 이제는 중상류층 지위를 유지하는 데 석·박사 학위가 중요해지는 식이다. ‘부모 잘못 만나는 것이 가장 큰 시장 실패’이듯, 입시 등에서 중상류층 자녀에게 유리한 ‘기회 사재기’ 메커니즘도 비판한다. 미국 얘기지만 남 얘기 같지 않다.
 
인상적인 것은 리브스가 이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다. 리브스는 마치 고백처럼 동료의 말을 인용한다. “나는 평일에는 불평등 문제를 비난하고, 주말과 저녁에는 불평등 강화에 일조해.” 불평등 문제를 얘기하며 항상 자신은 괄호 쳐버리는 이중성 대신, 자기비판을 전제한 사회비평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 ‘진보시대’를 연 것은 ‘자기비판’이라는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말도 인용했다. “당시의 도덕적 비난은 다른 이들에게만 향하지 않았고, 상당한 정도로, 또 매우 중요하게 자기 자신에게도 향했다. 진보 시대 사회 개혁 운동을 양심의 문제로 이야기한 당대 사람들은 본질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개혁의 시대』)
 
이번 사태는 그저 공정성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엄존하는 계층이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여전한 특권과 교육을 통한 부·지위의 대물림이, 가진 자들을 악마화하며 정의를 독점한 듯한 강남좌파들에서도 이뤄지는 현실을 대중이 목격했다. 젊은 세대를 들끓게 한 공정성 이슈에 계층 문제까지, 쉽게 풀기 어려운 본질적 질문이 다시 던져진 셈이다.
 
이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조 후보자 가족 논란을 넘어 대입 제도 전반을 재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 당장 교육부가 입시 개편 회의를 열었다. 입시의 공정성이란 중요한 화두고 개선 요구도 많지만, 급작스런 정국 타개용으로 소환되는 방식이라면 현장의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그리고 그에 앞서 자식에게 자기 삶을 통해 ‘내로남불’을 보여주지 않는 일이 더 급한 게 아닌가. 부모가 어떻게 사는가가 최고의 교육이란 말도 있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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