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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 사상 첫 마이너스, 커지는 디플레이션 공포

중앙일보 2019.09.04 00:11 종합 2면 지면보기
3일 서울의 한 마트에서 시민이 채소를 고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올해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1로 전년 동월 104.85보다 하락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통계 집계 후 처음이다. [뉴스1]

3일 서울의 한 마트에서 시민이 채소를 고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올해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1로 전년 동월 104.85보다 하락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통계 집계 후 처음이다. [뉴스1]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디플레이션(경제 전반적으로 상품·서비스 가격이 지속 하락)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경제가 생산·투자·수출에 이어 소비마저 위축됐다는 것으로 정책 방향을 시장 활력을 높이는 쪽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난달 -0.04%, 8개월 연속 0%대
생산·투자·수출 이어 소비도 위축
0%대는 1999년·2015년 두 해뿐
체감물가와 괴리 6년 새 최대
2분기 성장률은 1.0% 겨우 턱걸이

3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1로 지난해 8월(104.85)과 거의 같았다. 하지만 지수 변동률을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들여다보면 -0.04%다. 전년 대비 마이너스 상승률을 보인 것은 1965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이에 따라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개월 연속 0%대 이하를 기록했다. 2015년 2~11월(10개월) 이후 가장 길다.
  
정부 “농수산물 일부 품목 값 하락 탓”
 
신승철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국민계정부장이 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2019년 2분기 국민소득(잠정)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신승철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국민계정부장이 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2019년 2분기 국민소득(잠정)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정부는 지난달 저물가 상황만 놓고 디플레이션 국면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못 박는다. 측정 대상인 전체 품목 물가가 하락했다기보다 농·축·수산물 등 일부 품목 물가가 내려 전체 소비자물가를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국제유가 하락에 무상급식·무상교복 등의 정책에 따른 공공서비스 물가 하락도 영향을 미쳤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저물가는 수요 측 요인보다는 공급 측 요인에 상당 부분 기인한 것”이라며 “연말부터는 0%대 중후반 수준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국제통화기금(IMF) 디플레이션 취약성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디플레이션 위험도는 ‘매우 낮음’ 단계”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실상 디플레이션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2019년 2분기 국민소득 잠정치’에 따르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1.0% 성장했다. 7월 발표 속보치보다 0.1%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지난 1분기 -0.4%의 ‘역성장 쇼크’에서 반등하며 가까스로 1%대에 턱걸이한 것이다. 국내외 주요 경제전망기관은 한국이 올해 사실상 1%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부 설명처럼 소비자물가 하락은 일부 품목의 가격 하락에 따른 것이 아니라 경기 부진 국면에서 시장 내 수요 자체가 위축된 구조적인 결과란 것이다.
  
일본식 디플레이션 고착화 우려
 
소비자물가 1965년 집계 이후 최저.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소비자물가 1965년 집계 이후 최저.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소비자·수출·수입물가지수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GDP 디플레이터가 한 예다. 이 지표는 명목 GDP와 실질 GDP의 차이로 국민경제 전반의 물가 수준을 뜻하는데 전년 동기 대비 0.7% 하락했다. 2006년 1분기(-0.7%) 이후 13년3개월 만에 최저다. 특히 GDP 디플레이터는 지난해 4분기 이후 3분기 연속 하락했다. 20년 전 외환위기 당시(1998년 4분기~1999년 2분기) 이후 최장 기록이다.
 
저물가에도 체감물가와의 괴리는 커지고 있다. 체감물가를 가늠할 수 있는 한국은행의 물가인식 지표(지난 1년간 소비자들이 인식한 물가 상승률 수준)는 8월 2.1%포인트로 2013년 1월 이후 최대로 벌어졌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나쁜 가운데 GDP 디플레이터가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보이고 소비자물가까지 하락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디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승철 한은 국민계정부장은 “GDP 디플레이터가 장기간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장률 전망치

성장률 전망치

디플레이션이 현실화하면 시장에서 거래하는 상품·서비스 가치 하락으로 기업의 생산과 투자가 위축된다. 소비자도 값어치가 떨어지는 상품을 구매하기보다 현금을 쌓아두길 원해 소비가 침체한다. 한국은행이 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2%대로 제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물가가 내려가면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 쉬운데, 월급은 물론 부동산 등 보유 자산 가격마저 하락하면 시장이 얼어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은은 물가상승률이 올해 0%대로 하락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0%대를 기록한 것은 외환위기 때인 1999년(0.8%)과 유가 폭락과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물가상승률이 0.7%를 기록했던 2015년 두 해뿐이다. 특별한 외부 충격이 없는데도 물가가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것은 좋지 않은 신호다. 자칫 구조적인 저물가가 고착화하는 이른바 ‘일본식 디플레이션’이 고착화할 수 있어서다. ▶경기 침체 ▶물가 하락 ▶지속적인 저금리 ▶설비투자 부진 ▶소비 위축이라는 경제 상황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일본과 닮은꼴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시장·생산·소비·투자·순수출이 모두 부진한 ‘오면초가(五面楚歌)’ 상황”이라며 “부동산과 산업 전반이 쪼그라들고 있어 일본식 장기 침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성태윤 교수는 “디플레이션에 가까운 상황이 계속되면 세수 확보가 어렵고 기업도 수입이 감소한다”며 “노동 비용을 높이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수정하고 재정·통화 정책 등도 전방위적으로 완화하는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애란·김도년·허정원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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