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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부 마라톤 금지’부터 399.6m 달리기까지…전국체전 100년 스토리

중앙일보 2019.09.03 14:24
배순학 대한체육회 고문이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에 있는 한국체육박물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뒷 배경은 전국체육대회 동계대회 우승기, 오른쪽에 보이는 빨간 통은 차량에 설치됐던 이동 종화(성화불씨)로다. 임현동 기자

배순학 대한체육회 고문이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에 있는 한국체육박물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뒷 배경은 전국체육대회 동계대회 우승기, 오른쪽에 보이는 빨간 통은 차량에 설치됐던 이동 종화(성화불씨)로다. 임현동 기자

다음 달 4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전국체육대회가 개막한다. 전국체전은 1920년 전조선야구대회에서 시작해 이번에 100회를 맞는다. 대한체육회에 재직하면서 30년 넘게 전국체전을 기획·운영했던 배순학(78) 전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으로부터 ‘체전 뒷얘기’를 들어봤다. 배 전 총장은 대한체육회 운영부장·사무총장 등을 지냈고, 현재 체육회 고문이다.
 

한국 체육사 산증인 배순학씨 인터뷰

배 전 총장은 “전국체육대회 41회 때 입사해 벌써 100회가 됐으니 60년이 흘렀다. 지금 전국체전의 운영 규모는 올림픽보다 크다. 어떻게 이런 대회를 끌고 왔나 하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멘다”고 운을 뗐다. 이어 “1960년대에는 1만2000명의 학생이 행사에 동원되기도 하고 대회를 생중계하는 등 전국적인 잔치였다. 지금은 관심이 많이 떨어져 안타깝다”며 “대회 운영방식을 바꿔 더 많은 사람이 일반부에 출전해 주목도를 높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배 전 총장이 말하는 전국체전 주요 에피소드다. 
 
1920년 제1회 전국체육대회인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 개회식에서 애국지사 이상재 선생(오른쪽)이 하얀 두루마기 차림으로 시구를 하고 있다. [사진 대한체육회]

1920년 제1회 전국체육대회인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 개회식에서 애국지사 이상재 선생(오른쪽)이 하얀 두루마기 차림으로 시구를 하고 있다. [사진 대한체육회]

 

① “우체부는 마라톤 출전 금지합니다”

전국체전은 1920년 11월 서울 배재고보에서 열린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효시로 한다. 단일 종목이라 규모는 작았지만 조선체육회 창설 이후 치러진 첫 번째 대회였다. 
 
초창기 전국체육대회가 자리 잡기 전 개별 종목 경기가 따로 열릴 당시 마라톤은 프로 선수가 없었다. 모두 아마추어가 출전하는 경기였는데, 당시 체육당국은 우체부와 신문 배달부, 인력거꾼에게는 참가 자격을 주지 않았다. 달리기를 일로 하는 ‘프로’로 여겼기 때문이다. 
 
1925년 준공한 경성운동장(옛 동대문운동장, 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자리)과 관중석의 모습. [사진 대한체육회]

1925년 준공한 경성운동장(옛 동대문운동장, 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자리)과 관중석의 모습. [사진 대한체육회]

1925년 한국 최초의 경성운동장이 육상(축구)장, 야구장, 정구장, 실외농구장을 갖춘 종합경기장으로 개장했다(위). 1955년 경성운동장의 해방 이후 변화한 모습(아래). 스탠드 관중석이 설치됐다. [사진 대한체육회]

1925년 한국 최초의 경성운동장이 육상(축구)장, 야구장, 정구장, 실외농구장을 갖춘 종합경기장으로 개장했다(위). 1955년 경성운동장의 해방 이후 변화한 모습(아래). 스탠드 관중석이 설치됐다. [사진 대한체육회]

1945년 자유해방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 제26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 손기정 선수(맨앞)가 기수로 참석해 태극기를 들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대한체육회]

1945년 자유해방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 제26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 손기정 선수(맨앞)가 기수로 참석해 태극기를 들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대한체육회]



② 한국전쟁 중에도 열린 전국체육대회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체육계도 큰 타격을 받았다. 대한체육회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 연락사무소를 설치했다. 서울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제31회 전국체육대회 하계대회와 10월 전국체육대회는 자연히 중단됐다.
 
1951년 제32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 참가한 광주시내 여중 연합합창단의 모습. [사진 대한체육회]

1951년 제32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 참가한 광주시내 여중 연합합창단의 모습. [사진 대한체육회]

1951년 제32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장에 정렬한 시도 선수단. [사진 대한체육회]

1951년 제32회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장에 정렬한 시도 선수단. [사진 대한체육회]

 
하지만 이듬해에는 광주광역시에서 32회 대회를 열 수 있었다. 새 집행부가 전국에서 피난 온 체육인과 단체에 인편·우편·전화 등으로 연락해 준비한 끝에 행사를 준비했다. 전쟁 중에서도 마라톤의 최윤칠 선수가 2시간25분15초로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역도에서도 김성집과 이규혁이 잇달아 세계최고기록 겸 한국신기록을 수립하는 등 기록은 풍년이었다. 
 
전쟁으로 타격을 입은 가운데에서도 전국체육대회를 열고 52년 핀란드 헬싱키올림픽에 참가한 데 대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국과 체육인의 격려가 쏟아졌다. 
 
1958년 제39회 전국체육대회 우승자에게 수여한 최초의 금메달이다. [사진 대한체육회]

1958년 제39회 전국체육대회 우승자에게 수여한 최초의 금메달이다. [사진 대한체육회]

 

③ 인파 몰린 전국체육대회…압사 사고도 일어나  

큰 사고도 있었다. 46회 체전은 65년 광주에서 열렸다. 당시만 해도 전국체전의 인기가 어마어마했다. 새벽 6시에 이미 운동장에 관중이 꽉 찼는데 사람들이 넘어지며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만 100명이 넘었다. 57년 부산에서 열린 38회 체전에서도 관중이 몰려 정문에서 문이 넘어져 남학생 2명, 여학생 1명이 숨졌다.
 
기권 선수의 반칙도 있었다. 79년 대전에서 열린 60회 체전 때 일이다. 남자 마라톤에서 4등으로 들어온 선수가 잔디에 쓰러졌고, 곧바로 구급차에 실려 갔다. 그런데 서윤복 선수(보스턴 마라톤 금메달리스트)가 무명의 선수가 4등으로 입상한 것을 이상하게 여겨 중간 기록 지점을 체크했다. 그 결과 중간에 기권했던 선수인 것으로 드러났다. 알고 보니 대회를 지원하던 경찰차를 타고 결승점까지 왔다가 다시 뛴 것이었다.
배순학 대한체육회 고문이 1960년 석유를 연료로 쓴 성화봉 앞에서 전국체전 첫 메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배순학 대한체육회 고문이 1960년 석유를 연료로 쓴 성화봉 앞에서 전국체전 첫 메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④ 399.6m 달리기 들어보셨나요? 

정부는 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앞두고 모든 시·도를 ‘종합운동장’으로 연결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마산공설운동장 육상 트랙을 지방에선 처음으로 우레탄으로 시공했다. 그러나 대회 전날 공인 과정에서 400m 트랙의 거리가 40㎝ 짧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첫 이틀간은 기록 공인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이때는 등수만 가리고 공인기록으로는 남지 못했다. 이후 밤을 새워 라인을 재측정한 뒤 사흘째 돼서야 정식 경기장으로 공인받을 수 있었다.
 

⑤ 전국체전이 낳은 별들

전국체전은 선수들에게는 세계 무대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이자 등판 무대였다. 제68회(87년) 전국체전에서 2개의 한국신기록을 수립한 역도의 전병관 선수는 이듬해인 서울올림픽과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연이어 은메달과 금메달을 획득했다.
제66회 전국체전에서 한국신기록을 수립한 역도의 전병관 선수. [중앙포토]

제66회 전국체전에서 한국신기록을 수립한 역도의 전병관 선수. [중앙포토]

2010년 캐나다 밴쿠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0.05초 차이로 금메달을 따낸 뒤 기뻐하는 이상화. [연합뉴스]

2010년 캐나다 밴쿠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0.05초 차이로 금메달을 따낸 뒤 기뻐하는 이상화. [연합뉴스]

2000년 2월 14일 개막한 새천년 첫 전국체육대회 동계대회(제81회)는 개·폐회식을 모두 서울의 태릉에서 열었다. 그해 완공한 태릉 국제실내스케이트장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 스케이트장은 한국의 빙상, 특히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발전을 가져오는 촉매제가 됐다. 덕분에 10년 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모태범·이상화 선수가 아시아 선수로는 사실상 불가능으로 여겼던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2005년 제86회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한 박태환 수영 선수. [사진 대한체육회]

2005년 제86회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한 박태환 수영 선수. [사진 대한체육회]

2005년 열린 86회 대회에서는 박태환 선수가 경기고 1학년 신분으로 처음 출전해 MVP가 됐다. 박태환은 남자고등부 자유형 400m에서 3분50초16으로 터치패드를 찍어 종전 기록을 0.21초나 앞당기는 한국신기록을 세웠다. 한국 수영의 대들보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이후 박태환은 2008 베이징올림픽 자유형 400m 부문 금메달·자유형 200m 은메달, 2012 런던올림픽 자유형 400m·자유형 200m 각각 은메달을 따면서 한국인으로서는 수영에서 독보적인 기록을 세웠다.
전국체육대회는
1920년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시작으로 올해 100회째를 맞는다. 다음 달 4일부터 10일까지 잠실주경기장 등 서울의 57개 경기장과 지방의 15개 경기장에서 열린다. 고등부, 대학부, 일반부로 나뉘어 열리며 17개 시·도와 18개 해외동포 선수단과 임원 등 약 3만 명이 참가한다. 100주년인 만큼 성화 봉송부터 역대 최대 규모로 준비했다. 사상 최장기간인 13일, 2019㎞인 최장거리, 1100명인 최대주자로 성화 봉송이 이뤄진다.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을 시작으로 독도, 임진각, 마라도에서 성화를 채화한다.

서영지 기자 vivi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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