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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복 아파트 그만! 내부는 집주인에 딱 맞는 맞춤으로

중앙일보 2019.09.03 09:00

[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28)

부산에 가서 건축자문에 응한 적이 있다. 그에 대한 대가를 받기가 애매한 관계였다. 상대방은 대신 양복을 한 벌 맞춰주겠다고 했다. 부산에서 유명한 양복점이었다. 즉석에서 원단과 색깔을 고르고 몸 치수를 재고 서울로 올라왔다.
 
맞춤옷은 가봉이라는 과정이 있다. 처음에 잰 몸 치수를 가지고 옷의 틀을 만든 다음 다시 한번 몸에 더 잘 맞게 조정하는 필수과정이다. KTX가 없던 시절이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새마을호로 4시간 반 정도 걸렸다. 한번 다녀오는데 하루가 걸렸다. 결국 가봉을 하러 부산에 한 번 더 다녀와야 했고 양복을 찾으러 또 한 번 가야 했다.


맞춤복을 외면하게 한 '가봉'

몸에 꼭 맞는 맞춤옷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파트가 기성복이라면 단독주택은 맞춤옷이다. [사진 pexels]

몸에 꼭 맞는 맞춤옷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파트가 기성복이라면 단독주택은 맞춤옷이다. [사진 pexels]

 
언제부턴가 맞춤 양복집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맞춤옷은 체형에 꼭 맞춘다. 맵시도 나고 몸에 붙어 활동도 편하다. 그러나 맞춤복은 기성복이 등장하면서 거의 사라졌다. 우선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 일일이 사람 손으로 만드는 옷이 대량생산 제품과 경쟁이 될 리 없다. 게다가 가봉이라는 절차가 맞춤옷을 외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지금도 맞춤옷을 찾는 사람이 있다.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몸에 꼭 맞는 옷을 입고 싶어 한다. 집도 마찬가지다. 아파트는 기성복, 단독주택은 맞춤옷과 같다. 기성복처럼 아파트는 크기별로 생산된다. 제조사마다 옷의 특징이 있고 디자인도 다르듯이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같은 크기라도 브랜드마다 내·외부 디자인이 조금씩 다르다. 소비자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아파트도 기성복처럼 고른다. 그에 반해 단독주택은 맞춤이다. 단독주택을 설계하면서 사람의 생각과 취향은 어쩌면 그렇게 다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부산에서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지인의 소개로 주택설계를 하게 됐다. 건축주는 60대 초반으로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건축주 부부를 만나 어떤 집을 상상하고 있는지 먼저 이야기를 듣고 진행하자고 했다. 한번 다녀가기가 쉽지 않으니 가족 구성을 참고해 기본 디자인을 만들어 오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는 의미 없는 디자인이 된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자리에 참고용으로 쓰려는 목적으로 기본 평면도를 만들었다. 건축주 부부 앞에 도면을 펼쳐놓고 열심히 설명하는데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 집 안주인의 얼굴이 갈수록 굳어졌다. 설명이 끝나자 팔짱을 낀 그녀가 매우 불만족스러운 투로 한마디 했다. “주택 설계해본 적 있나요?”
 
주택 디자인을 진행하다 보면 가족 간에도 생각이 다를 때가 많다. [사진 pixabay]

주택 디자인을 진행하다 보면 가족 간에도 생각이 다를 때가 많다. [사진 pixabay]

 
충격적인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특별한 평면도 아니었지만 상투적인 디자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성복으로 치면 어느 고급 브랜드처럼 무난한 디자인이었다. 정중하게 그 이유를 물었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의 그가 한참 뜸을 들인 후 말문을 열었다. 자기는 거실과 주방이 하나의 공간으로 터져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주방이 거실이나 식당과 분리돼 온전하게 독립된 공간이어야 요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특별한 맞춤옷을 주문하는 고객에게 기성복을 열심히 권한 꼴이 되었다. 도면을 접고 정중히 사과했다.
 
주택 디자인을 진행하다 보면 가족 간에도 생각이 아주 다르다. 때로는 의견 조율이 힘들어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 주로 외관과 재료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대체로 주부는 현대식 디자인을 선호한다. 아기자기한 공간 활용을 좋아한다. 주방이나 욕실의 크기와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유행에 민감하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온 사람과 협의하려면 늘 공부해야 한다.
 

공간 디자인의 결정 주체는 그 집 안주인

주택 공간 디자인은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의견이 절대적이다. [사진 pixabay]

주택 공간 디자인은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의견이 절대적이다. [사진 pixabay]

 
건축가의 공간 디자인 능력이 중요하지만 최종 결론은 그 집 안주인이 내리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렇듯 주택은 작은 공간이지만 다양한 삶을 담는다. 누구나 맞춤옷 같은 집에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여러 여건상 기성복 같은 아파트에서 산다. 공급자는 더 보편적인 대중의 취향을 연구하고 특별하지도 않지만 별문제도 없는 집을 찍어낸다.
 
그것을 못 참는 소비자는 멀쩡한 마감재를 다 뜯어내고 큰돈 들여서 인테리어를 다시 한다. 여기서 우리의 아파트 공급방식도 획기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즉, 골조와 기본 설비만을 완성해 공급하고 인테리어는 입주자가 취향대로 완성하는 방식이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골조는 어쩔 수 없지만 내부 공간은 맞춤형으로 만들 수 있어서 집집마다 다양한 공간 연출이 가능하다. 건강한 사회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손웅익 프리랜서 건축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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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웅익 손웅익 프리랜서 건축가. 수필가 필진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더위와 추위를 피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집, 투자와 과시의 대상으로의 집에서 벗어나 집은 살아가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건축가이자 수필가인 필자를 통해 집의 본질에 대해, 행복한 삶의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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