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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델루나’로 다시 빛난 홍자매 “CG가 날개 달아줬죠”

중앙일보 2019.09.03 08:00 종합 23면 지면보기
2005년부터 15년째 공동작업 중인 홍정은(왼쪽)·홍미란 작가. 5남매 중 첫째와 셋째딸이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워킹맘인 홍정은은 ’미란이와 24시간 붙어서 같이 일하는데 어린이집을 하는 넷째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사진 tvN]

2005년부터 15년째 공동작업 중인 홍정은(왼쪽)·홍미란 작가. 5남매 중 첫째와 셋째딸이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워킹맘인 홍정은은 ’미란이와 24시간 붙어서 같이 일하는데 어린이집을 하는 넷째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사진 tvN]

연장전 끝에 승리하면 이런 기분일까. 홍정은(45)·홍미란(42) 작가가 집필한 tvN 주말드라마 ‘호텔 델루나’가 1일 시청률 12%(닐슨코리아)로 종영했다. 이는 두 작가가 2013년 ‘주군의 태양’(21.8%) 이후 6년 만에 기록한 두 자릿수 시청률이다. 2005년 ‘쾌걸 춘향’을 시작으로 ‘환상의 커플’(2006) ‘최고의 사랑’(2011) 등 9연속 홈런을 날려온 이들에게 전작 ‘맨도롱 또똣’(2015)과 ‘화유기’(2017~2018)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12번째 공동집필 홍정은·미란 작가
이지은·여진구 호연, 12%로 종영
“어려서부터 좋아한 귀신 이야기…
할머니 별세 뒤 사후세계 더 관심”

시청률도 고전을 면치 못한데다, ‘화유기’에 대해 웹소설 ‘애유기’의 정은숙 작가가 저작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심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법원은 “일부 유사한 부분이 있으나 별개의 저작물”이라며 홍자매의 손을 들어줬지만 ‘표절 논란’이란 꼬리표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호텔 델루나’ 역시 일본 만화 ‘우세모노 여관’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정작 드라마가 시작되니 비난의 목소리는 쑥 들어갔다. 월령수에 묶여 생과 사의 흐름이 멈춘 채 1300년 동안 달의 객잔(호텔 델루나)을 지킨 장만월(이지은) 사장과 99번째 지배인 구찬성(여진구)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덕분이다. 바텐더·객실장·프론트맨으로 열연한 신정근·배해선·표지훈 등 호텔 직원들은 물론 이승을 떠나지 못할 사연을 품고 이곳에 머물다 저승길에 오른 귀신 한 명 한 명까지 깊은 인상을 남겼다.
 
2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홍자매 역시 큰 숙제를 마친 듯 후련한 표정이었다. 언니 홍정은은 “드라마는 대본도 중요하지만 여러 여건이 잘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앞서 두 작품은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소재를 선점했다고 다 창작은 아니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여관 배경의 귀신 이야기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2)을 비롯 일본 애니메이션·영화·소설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소재이고, 얼마든지 재가공·변주될 수 있단 얘기다.
 
‘호텔 델루나’에서 지배인과 사장 역할을 맡아 호평 받은 여진구와 이지은. [사진 tvN]

‘호텔 델루나’에서 지배인과 사장 역할을 맡아 호평 받은 여진구와 이지은. [사진 tvN]

“그동안 캐릭터나 콘셉트가 강한 작품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극성이 강한 이야기를 써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도 많이 했어요. 다른 색깔로 가야 하나 싶기도 했고. 그렇지만 역시 잘하는 걸 더 열심히 해보자 싶었죠.”(홍미란) 그렇게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2010)와 ‘주군의 태양’이 녹아든 ‘호텔 델루나’가 탄생했다. 삼신할머니한테 잡혀서 봉인돼 있던 구미호는 마고신(서이숙)에게 붙잡힌 장만월이 됐고, 쇼핑몰 사장과 귀신 보는 직원의 이야기는 호텔로 공간을 옮겨 왔다.
 
‘주군의 태양’ 초기 기획안이기도 했던 ‘호텔 델루나’가 6년 만에 빛을 볼 수 있던 것은 컴퓨터그래픽(CG)의 공이 가장 컸다. 경기 용인에 만든 350평짜리 세트장은 귀신 손님들이 머물다 가기에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방문을 열 때마다 손님별 사연에 꼭 맞는 맞춤형 공간으로 꾸며졌다.
 
고전에서 모티브를 얻어 판타지로 재해석한 작품을 주로 선보여온 만큼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10년 전만 해도 CG가 힘든 장면도 많고 시간도 오래 걸렸어요.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1회 때는 CG로 멋진 꼬리 9개를 펼쳐 보였지만 다른 회차는 모두 인형 꼬리를 달고 하는 아픔도 있었고…. 하고 싶어도 여건상 할 수 없는 장면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장만월이 2순위 지배인 잡으러 우주도 가고. 재밌었어요. 기술 발전에 힘입어 날개 펴고 열심히 해보자 싶었죠.”(홍정은)
 
홍자매는 어릴 적부터 귀신 이야기를 좋아해 ‘전설의 고향’을 즐겨봤다고 했다. 홍정은은 MBC 예능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작가로 3년간 일하기도 했다. “지난해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것 같아요. 다들 살면서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신은 강자의 편인 것만 같고. 만약 죽음이 끝이 아니고 이번 삶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그것이 다음 세상에도 이어진다면 그 불공평함이 좀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위안이 될 것 같기도 하고. 할머니도 다른 세상에서 많은 인생을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할머니를 생각하며 쓴 마고신의 대사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홍자매가 가장 이견을 보인 부분이기도 하다. 인간의 생사고락을 관장하는 신이지만 혹여 훈계조로 흐를까 걱정했던 탓이다. “한 집에 같이 살면서 노트북 한 대 켜놓고 대화하며 글을 쓰다 보니 좋아하는 것은 달라도 싫어하는 것은 비슷해요. 재미없다고 지적하면 빠르게 수용하죠. 화가 나면 한 명 화장실 갔다 오고. 나이가 들면 노여움이 는다고 이번엔 쉬는 시간이 좀 많아지긴 했는데 따로 써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걸 확실하게 알고 있으니까요.”(홍미란)
 
‘호텔 델루나’ 에필로그에는 김수현이 ‘블루문’ 사장으로 등장해 시즌 2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홍미란은 “아직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종류의 드라마는 얼마든지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만월당에서 잠깐 보여드렸듯이 사극도 가능하고, 학교 배경의 학원물도 재밌을 것 같아요.”(홍정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노예제가 부활해 노예시장이 열리는 이야기도 생각해 놓은 게 있긴 한데 세트를 지을 수 있을지는….”(홍미란) 홍자매의 이야기는 쉼 없이 이어졌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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