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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숨은그림찾기] 마그리트의 낮과 밤

중앙일보 2019.09.03 00:18 종합 27면 지면보기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

낮은 덥고 밤은 선선한 날들이 이어집니다. 하늘은 한층 높아졌고요. 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시작입니다. 지난 여름을 그림으로 돌아보면 가장 머리에 남는 한 점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봤던 ‘빛의 제국’(1953∼54)입니다. 어둠에 싸인 집, 그 위 하늘은 너무도 밝아 신비로운 그림이죠.
 
2년에 한 번 ‘미술의 도시’가 되는 베네치아의 아침, 골목길 작은 미술관 앞에는 개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작품이 바로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유화입니다. 자기 키보다 큰 이 그림 앞에 선 관객들은 선물 받은 사람처럼 나직이 탄성을 지릅니다. 바로 옆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는 경쟁하듯 새로움을 전시하지만, 많은 이들은 오래된 것에서 새로움을 찾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빛의 제국, 195.4x131.2㎝. [사진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빛의 제국, 195.4x131.2㎝. [사진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는 파이프를 그려 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으며,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그림으로 보여줬습니다. 생전에 라디오에서 ‘빛의 제국’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낮과 밤의 동시성은 우리의 허를 찌르고 마음을 끄는 힘을 갖고 있는데, 나는 그 힘을 시(詩)라고 부른다.”
 
화가는 무엇을 그릴까요. 마그리트의 경우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저 너머를 보고 그립니다. 집·나무·하늘 같은 평범한 풍경을 공들여 화폭에 모방하는 것 같지만 실은 태연하게 밤에 낮을 그리죠. 낮과 밤처럼, 도저히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소재를 한 화면에 그린 이 그림은 관객을 잡아끄는 힘을 갖고 오래도록 사랑받게 됐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함께 서지 못할 것이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름과 가을이 공존하는 지금처럼요.
 
권근영 JTBC 스포츠문화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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