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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장 본다는 LG화학·SK이노, 그뒤엔 전기차 '왕좌의 혈투'

중앙일보 2019.09.02 05:00 경제 4면 지면보기
 LG화학이 지난 4월 미국 연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의 첫번째 페이지. LG화학은 "배터리 플랫폼 기술을 탈취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 미 연방법원]

LG화학이 지난 4월 미국 연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의 첫번째 페이지. LG화학은 "배터리 플랫폼 기술을 탈취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 미 연방법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외나무다리 위 싸움을 벌이고 있다. 소송으로 시작된 갈등은 재계 3・4위 기업 간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뉴스분석]
2040년 신차 절반이 전기차 전망
한·미서 미래 먹거리 놓고 소송전
LG “30년 투자한 기술 유출” 선공
SK 90년대 사보까지 찾아 반격

 
두 회사가 이렇게 대립하는 이유는 뭘까. 업계에선 양사 갈등의 중심에 전기차 배터리를 둘러싼 헤게모니 다툼이 놓여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겉으론 미국과 한국 법원에서 진행되는 소송전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이면엔 전기차 배터리 시장 지배력과 기술 우위 확보가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래 자동차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 전기차가 빠르게 성장하는 것에 비례해 전기차 배터리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2040년 무렵에는 신차 절반을 전기차가 차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두 회사 모두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놓고 물러설 수 없을 것”이라며 “전기차 메이커도 양사의 특허 소송전을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갈등의 성격은 양사가 작성한 소장을 보면 명확해진다. 먼저 칼을 빼 든 건 LG화학이었다. LG화학은 지난 4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제소했다. LG화학은 65페이지 분량의 소장에서 “LG화학이 개발하던 폴크스바겐 배터리 플랫폼 기술을 SK이노베이션이 훔쳐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SK이노베이션이 2017년부터 불과 2년 만에 LG화학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생산·품질관리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인력과 기술을 빼갔다”며 “리튬이온 배터리와 배터리 모듈, 배터리셀, 배터리팩과 관련된 부품을 포함한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전기차 배터리 기술을 소장에 적으면서 경쟁사를 압박한 것이다. 법무팀이 아닌 특허대응팀이 반년 이상 소송을 준비했다는 사실에서도 LG화학이 제기한 소송의 배경이 전기차 배터리 기술 선점에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도 전기차 배터리 기술력을 강조했다. 지난 6월 국내 법원에 LG화학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한 SK이노베이션은 30페이지 분량의 소장에서 자사의 배터리 개발 역사를 적었다. SK이노베이션의 전신인 유공 시절 발행한 1990년대 사내 소식지도 확인해 배터리 개발 역사가 깊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은 소장에서 “1992년 전기차용 Na-S(나트륨황) 전지 개발, 시험용 전기차 제작을 시작으로 약 30여년에 걸쳐 2차 전지에 대한 투자와 개발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199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배터리 개발 기술 역사를 압축했다.
 
 SK이노베이션이 전신인 유공 시절 발행한 사보. 1992년 발행한 사보에는 전기차용 축전기 개발사로 선정됐다는 기사가 담겨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이 전신인 유공 시절 발행한 사보. 1992년 발행한 사보에는 전기차용 축전기 개발사로 선정됐다는 기사가 담겨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양사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의 소송전에 전력투구하는 이유로는 빠르게 성장하는 미국 전기차 시장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는 ITC가 갖는 독특한 법적 지위에서 엿볼 수 있다. ITC는 지식재산권을 위반한 제품에 대해 미국 내 수입 금지를 명령할 수 있는데,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경쟁사의 배터리 시제품 및 설계자료 등의 미국 반입을 막을 수 있게 된다. 이럴 경우 미국 내 배터리 공장 운영 차질이 불가피하다. LG화학은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에서 배터리 공장을 가동하고 있고,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생산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이런 이유로 어느 한쪽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치킨 런 게임이 시작됐다는 얘기도 일각에서 나온다.
 
기술 및 외화 유출이란 부정적인 인식에도 양사가 소송전에 사활을 걸고 있는 건 전기차 배터리가 기업의 미래를 이끌 가장 중요한 먹거리라서다. 정유(SK이노베이션)과 화학(LG화학)은 세계적인 트렌드인 신재생 에너지 전환과 이에 따른 각종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표 산업으로 꼽힌다. 
 
당장 양사 간 합의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LG화학은 최근 미국 로펌을 교체하며 소송전 화력을 보강했다. 끝을 보겠다는 의도다. LG화학 관계자는 “30년 동안 2차 전지 분야에 투자해 경쟁사보다 관련 특허가 14배 많다”며 “후발업체가 손쉽게 경쟁사의 핵심기술 및 영업비밀을 활용하는 것이 용인된다면 어떤 기업도 미래 투자에 나서지 않아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도 이달 내로 LG화학은 물론이고 LG전자를 상대로 한 소장을 ITC에 제출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우리 기술이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대체할 수 없는 기술을 이용해 LG가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며 “일본의 수출규제 등에 공동 대응하자는 취지에서 그동안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지만,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고 있는 발주사 등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선 소송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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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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