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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호의 시선] ‘오버’한 유시민의 작가정치

중앙일보 2019.09.02 00:16 종합 28면 지면보기
신용호 논설위원

신용호 논설위원

제정신인가 싶었다. 작가 유시민의 인터뷰 원고를 읽고 나서였다. 한참 침묵했던 그가 지난 29일 라디오에서 작심하고 ‘조국(법무장관 후보자) 살리기’에 나섰다. 언론과 검찰에 대한 도를 넘은 비판은 그렇다 치자. 때가 되면 되풀이하던 레퍼토리려니 했다. 하지만 서울대 촛불 집회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아연실색했다. “뒤에서 자유한국당 패거리들의 손길이 어른어른하는 그런 것이라 본다”며 “(집회가) 물 반 고기 반”이란 표현을 썼다. 학생들의 마스크 착용을 두고선 “안 쓰고 오면 좋겠다. 진실을 비판하면 불이익이 우려될 때 신분을 감추고 마스크를 쓰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촛불집회 ‘물 반 고기 반’ 폄하
직접 현장 봤다면 못할 소리
맹목적 감싸기 역풍 부를 수도

기자는 전날 현장에서 집회를 지켜봤다. 서울대생들이 얼마나 특정 정치색을 경계했는지 그가 현장을 봤어야 한다. 집회장에는 학생증과 신분증을 대조한 후 들어가야 했고 그들만 촛불을 들 수 있었다. 특정 정치 집단을 연상케 하는 문구나 그림은 아예 차단했다. 집회 도중 “집회 취지와 어긋난 정치적 구호나 행위를 하지 말라”는 당부가 수차례 나왔다. 발언자로 나선 한 학생은 유시민의 비판을 미리 알기라도 한 듯 “누군가 서울대가 우경화됐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우리는 진보나 보수적인 학생이라 온 게 아니고 대한민국 학생이라 왔다.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이유는 법치국가로 법 앞에 평등이 있다는 것과 대상에 따라 잣대가 다르지 않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국 반대 집회를 보면서 ‘학생들이 눈치를 많이 보는구나’ 싶어 안쓰러울 정도였다. 마스크를 쓴 학생도 소수였다. 대충 봐도 10%가 안 됐다. 설사 마스크를 쓴들 어떠한가.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복면금지법’이 발의되자 “정부가 국민을 테러·불온세력으로 연일 매도하고 있다”고 반발했던 사안이 아닌가.
 
유시민은 “조 후보자가 심각한 도덕적 비난을 받거나 법을 위반한 행위로 볼 수 있는 일은 한 개도 없다”고 감쌌다. 하지만 학생들의 분노는 조국의 불법이 아니었다. 이 사회의 공정과 상식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집회에서도 딸의 논문과 장학금이 주요 쟁점이었다. 유시민은 이런 학생들과 그들의 집회에 대해 특정 색을 입히려 했다. 그건 학생들에 대한 모독이다.
 
유시민의 조국 살리기는 검찰의 압수 수색 이후 여권의 사정이 얼마나 긴박한가를 보여준다. 방송에서 온화한 이미지를 쌓은 이후 잘 안 쓰던 거친 언어들이 나오는 것만 봐도 평온한 시기의 마음은 아닌 듯하다. 두 사람의 관계도 유시민이 나서는 계기가 됐을 거다. 지난 3월 민정수석 조국은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나가 1시간 넘게 인터뷰를 한다. 사법개혁이 주제였다. 현직 민정수석이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유튜브 방송 출연은 파격 중의 파격이다. 그 정도니 둘 사이의 신뢰를 짐작하고 남는다. “팬으로 나왔다”(조국)며 시작한 인터뷰 말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당시 유시민이 “(개혁 과제를) 다 끝내야 학교로 돌아갈 거 아니냐”고 물었고 이에 조국은 “(대통령이) 안 놔주실 거 같긴 하다”고 답한다. 공개석상에서 이 정도면 문 대통령과 조국 사이에선 상당한 언질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문 대통령이 결국 조국을 장관에 임명한다면 그 발언은 ‘천기누설’이 되는 셈인데 그 말이 틀리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유시민은 공공연히 “정치는 안 할 것”이라고 한다. 스스로 작가라 한다. 하지만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도 진행한다. 다른 방송에도 가끔 나온다. 수시로 이슈의 중심에 선다. 사실 안한다 했지만, 그 이후부터 오히려 정치권과 멀어지기는커녕 점점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른바 유시민식 작가정치다. 그 작가정치가 이번엔 단단히 틀렸다. 그도 젊은 시절 독재에 항거하며 학생운동을 했다. 그때도 주변에서 그를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을 거다. 상황이 달라졌지만, 당시와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이 하고 싶은 말은 여전히 많다. 그때가 민주화에 모든 것을 걸 때였다면 지금 대학생들이 요구하는 건 공정이고 상식이다. 그냥 어른들이 들어주면 된다.  
 
나아가 조국 지키기가 과연 문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일인지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대통령을 둘러싼 인사들이 조국을 감쌀수록 대통령의 선택 폭은 줄어든다. 문 대통령은 우리 사회가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했다. 집회에 참석한 서울대생들과 반대 여론은 조국의 임명이 이와 배치된다고 여기고 있다. 그게 핵심이다. 그래도 여권의 밀어붙이기가 계속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알 수는 없다. 극히 우려스럽다.
 
신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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