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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공항 마비’ 시위에 경찰 특공대 투입

중앙일보 2019.09.02 00:06 종합 1면 지면보기
홍콩 경찰의 불허 결정에도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열린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또다시 충돌했다. 13주째 이어진 이번 집회에서 경찰은 과격 시위대 색출을 위해 파란색 염료가 들어간 물대포를 발사했고, 시위대는 화염병과 벽돌을 던지며 맞섰다. 집회에 참여한 한 시위대가 도로표지판을 방패 삼아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오늘(2일)도 홍콩 국제공항에서 연이은 시위와 총파업 등이 예고됐다. [AP=연합뉴스]

홍콩 경찰의 불허 결정에도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열린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또다시 충돌했다. 13주째 이어진 이번 집회에서 경찰은 과격 시위대 색출을 위해 파란색 염료가 들어간 물대포를 발사했고, 시위대는 화염병과 벽돌을 던지며 맞섰다. 집회에 참여한 한 시위대가 도로표지판을 방패 삼아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오늘(2일)도 홍콩 국제공항에서 연이은 시위와 총파업 등이 예고됐다. [AP=연합뉴스]

홍콩 당국의 범죄인 인도법 추진에 반대하는 시위는 9월 첫날에도 계속됐다. 초여름 시작된 시위가 계절을 바꿔 가을로 이어지고 있다. 홍콩 시위대는 1일 공항 마비를 시도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을 막아 공항철도와 공항버스 운행이 한동안 중단됐다. 승객들이 걸어서 공항으로 향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시위는 9월 1일을 뜻하는 “901 공항에서 만나자”란 구호 아래 기획됐다. 홍콩 당국이 최정예 ‘랩터스(速龍) 특공대’ 소속 경찰을 투입하자 시위대는 란타우 섬퉁청과 공항을 잇는 다리 위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불을 질렀다. 전날 홍콩 6곳에서 올랐던 불길이 다시 일었다.
 

시위대 바리케이드 치고 불질러
경찰은 두 번째 실탄 경고사격

영국 여권 들고 “우린 영국인”
12~16세 미성년자 15명 체포
화염병 든 13세 소년도 포함
중국 “학교서 가르치는 교재 잘못”

시위대는 퉁청 전철역에 장식된 ‘중국 건국 70주년’ 표지를 파손하고, 중국 국기도 끌어내려 불에 태웠다. 고객서비스센터도 부쉈다. 홍콩 도심의 애드머럴티에 위치한 영국 총영사관 앞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일부는 영국 여권을 꺼내 들고선 “우리는 영국인”을 외쳤다.
 
31일 시위에선 63명이 체포됐다. 13세 소년이 두 개의 화염병과 라이터를 들고 있다가 붙잡혔다. 프린스 에드워드역에선 경찰의 무차별 구타로 41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경찰의 두 번째 실탄 발사도 있었다. 2일부터는 중·고교와 대학의 수업 거부인 파과(罷課) 운동, 의료·항공·금융 등 21개 업종 종사자들의 총파업이 예고된 상태다.
 
이제 홍콩 시위는 낮과 밤이 달라졌다. 낮의 시위는 평화적이지만 해가 지면 시가전 양상을 띤다.
 
낮엔 평화시위, 밤엔 곳곳 화염 … 격렬해진 홍콩

 
그런데 낮과 밤의 홍콩 시위대를 하나로 묶어 주는 구호가 있다. “홍콩인 힘내라(香港人 加油)”다. 31일에 이어 1일 시위가 벌어진 현장 어디에나 이 구호가 울렸다. 이 외침엔 중국과의 ‘다름’을 강조하고 싶은 홍콩인의 속내가 담겼다. 지난달 25일 홍콩 시위에서 36명이 체포됐다. 이 중 12세 소년이 포함돼 있었다.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9월부터는 중학생이 될 참이었다. 시위로 붙잡힌 883명 중 최연소였다. 소년은 제법 무장도 갖췄다. 헬멧에 방독면도 쓰고 스프레이에 1.5m 길이의 쇠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폭력 충돌의 선봉에 서 있다가 체포됐다. 체포된 뒤 아픔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시위대 하나로 묶는 “홍콩인 힘내라”
 
홍콩 사회가 놀랐다. ‘송환법’ 반대 시위에 어떻게 이제 막 초등학생에서 벗어나는 어린 친구가 나오게 됐는지를 놓고서다. 홍콩 경찰이 조사해 보니 시위하다 체포된 12~16세 미성년자가 15명으로 나타났다. 31일 오후에도 ‘소년 시위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홍콩 완차이 서던 구장에 모인 시위대를 유심히 살펴보니 곳곳에 소년들이 보였다. 부모를 따라 나온 아이도 있었지만 일부 소년은 친구들끼리 무리를 지어 온 모양새였다.
 
12세 홍콩 소년이 책가방 대신 쇠파이프를 든 것을 놓고 중국 언론은 개탄했다. 홍콩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재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교재에 “나는 홍콩인이지 중국인이 아니다. 홍콩인은 중국인과 다르다”로 해석될 내용과 대륙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 등이 담겼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홍콩 교재에 왜 이런 내용이 담겼는지에 대한 성찰은 보이지 않았다. 1997년 반환 이후 홍콩 사회 곳곳을 파고드는 중국의 영향력, 그리고 이를 우려하는 홍콩인의 불안한 속내는 간과했다.
 
홍콩은 날로 중국화하고 있는데 홍콩인은 이를 두려워한다. 중국의 입김이 커지면서 인권 침해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본다. 중국에 갔다가 종종 연락이 끊기는 사태도 홍콩인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이른바 실종이다. 이번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가 터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범죄자라면 중국에 인도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는 멀쩡한 사람이 중국에 인도될 가능성을 홍콩인은 더 무서워하는 셈이다.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의 총편집 후시진(胡錫進)은 홍콩 사태의 분수령을 이룰 것으로 여겨진 8월 31일의 시위 취재를 위해 지난 29일 홍콩에 왔다. 그가 한 홍콩 젊은이를 인터뷰했다. 청년은 시위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중국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혹시 시위대로 오인돼 붙들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환구시보는 청년의 대답에 “난감하다”고 전했지만 이게 바로 홍콩인들의 불안한 속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산혁명 때 79일 시위 기록 넘어서
 
1일 만난 홍콩 신문의 한 기자는 베이징에선 홍콩 시위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중국 언론에선 시위대의 폭력을 부각하고, 시위대 배후엔 미국 등 외부 세력이 개입돼 있다고 주장한다고 답했다. 실제로 일반 중국인은 홍콩인도 중국 사람인데 어떻게 미국 성조기를 앞세우며 중국 오성홍기를 바다에 집어던지는 매국 행위를 할 수 있느냐고 분개한다. 중국 내부적으론 미적지근한 홍콩 경찰의 태도에 불만이라는 얘기도 베이징 외교가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래도 현재로선 홍콩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게 상책이라 판단해 홍콩 경찰에 대한 지지 목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케리 람 행정장관이 이끄는 홍콩 정부는 재량권이 없다는 관측이 많다. 중국 중앙정부의 말을 따라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시위대와 대화해 이들을 설득할 재량권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결국 홍콩 경찰이 시위대를 완전하게 무너뜨리든가, 아니면 매 주말 시위대와 싸우든가 둘 중 하나다. 그래서 중간 타협점을 찾기 어려워 보이는 게 현재 홍콩 사태다. 홍콩 당국은 지난달 31일 시위를 앞두고 학생 지도부와 입법회 의원 등을 대거 검거했고 또 백색 테러까지 벌어졌지만 홍콩인은 13번째 주말 시위를 이어갔다.
 
홍콩 시위에선 이제 쇠파이프를 든 12세 소년이 등장한 것처럼 어린 학생 참여자가 늘고 있다. 이들에겐 날로 중국화하는 홍콩의 미래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자신이 성인이 됐을 때 부닥쳐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시위대와 경찰 모두 과격화하고 있다. 시위대가 불을 지르는 건 “싸울 의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홍콩 시위대는 9월부터는 물건을 사지 말자는 ‘파매(罷買)’ 운동도 새롭게 전개할 예정이다. 매주 금요일과 일요일엔 꼭 필요한 기본 생활용품을 제외하고는 구매하지 말자는 것이다. 홍콩 정부에 타격을 주고 상인들의 시위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지난 6월 9일 송환법 반대로 시작된 홍콩 시위는 지난달 26일로 역대 가장 길었다는 2014년의 우산혁명 때(79일 시위)를 넘어섰다. “홍콩인 이겨라” 구호는 계속되고 있다. 홍콩 시위의 핵심은 여기에 담겼다. 홍콩은 중국이 되기 싫은 것이다.
 
홍콩=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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