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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압구정·성수 한강변 재개발·재건축도 취소될 판

중앙일보 2019.09.01 00:03
유예기간 끝나 내년부터 일몰제 대상 나와… 내년에는 38곳 사업 무산될 수도
 

일몰제까지 덮친 재개발·재건축

내년에 일몰제 대상이 되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특별계획3구역.

내년에 일몰제 대상이 되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특별계획3구역.

지난 6월, 서울 은평구 수색·증산뉴타운 내 17만2932㎡ 규모의 증산4구역이 재개발 사업을 접었다. 재개발 사업을 위한 정비구역지정이 해제된 것이다. 이에 따라 증산4구역은 재개발 사업 추진 이전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사업을 접은 건 주민 의지가 아니다. 일몰제가 증산4구역의 발목을 잡았다. 관련법(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상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정해진 기간 안에 다음 단계로 가지 않으면 시·도지사가 직권으로 사업을 중단하는 일몰제가 적용된다. 증산4구역은 2014년 8월 추진위원회를 설립했지만 이후 조합을 설립하지 못했다. 추진위는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서울시에 일몰제 연장을 신청했지만 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추진위는 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해제 기한 연장 여부는 서울시의 재량”이라고 판결했다.
 
 

수익성 악화로 멈춰 서면 일몰제 부담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뿐 아니라 일몰제까지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증산4구역은 일몰제로 사업이 중단된 첫 사례인데, 앞으로 이런 재개발·재건축 사업지가 적지 않게 나올 전망이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 간 대립으로 사업이 멈춰 선 곳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전제 조건인 집값 상승이 불투명한 데 상한제까지 시행되면 수익성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며 “사업이 착착 진행되던 사업장도 멈춰서 일몰제에 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몰제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지나치게 장기화해 주민 갈등이 심화하고 매몰비용(사업 추진을 위해 사용한 비용) 부담이 커지는 문제를 막기 위해 2012년 도입했다. 대상지는 ▶정비구역 지정일로부터 2년 안에 추진위 승인을 신청하지 않거나 ▶추진위 승인일로부터 2년 안에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지 않거나 ▶조합설립 인가일로부터 3년 안에 사업계획 승인을 신청하지 않는 사업장이다. 이들 사업장은 일몰 규정에 의해 자동으로 일몰제 대상이 된다. 일몰제는 특히 2016년 관련법 개정을 통해 2012년 이전부터 추진한 사업까지 확대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2012년 1월 30일 이전에 추진위 승인을 받은 사업지 중 사업 진척이 없는 단지가 무더기로 일몰제 대상이 된다. 전국의 묵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지가 대거 정비구역에서 해제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당장 서울시는 일몰제를 적극 적용할 계획이다. 사업이 사실상 멈춰 있는 정비사업을 정비구역에서 해제, 시간과 비용의 소모를 막겠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시는 2013년부터 최근까지 사업이 멈춰 서 주민들의 고통이 컸던 재개발·재건축 사업지 300여 곳을 직권으로 취소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최근 서초구 등 각 자치구에 내년에 일몰제 대상이 되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지를 통보했다. 내년 일몰제에 해당 사업지는 재건축 23곳, 재개발 15곳(시장재개발 1곳 포함) 등 모두 38곳이다. 이 중엔 서울 강남구 압구정3구역과 한강변에서 유일하게 지상 최고 50층 건립이 가능한 성동구 성수동 성수전략정비구역 2지구 등 이른바 ‘대어급’ 사업지가 대거 포함돼 있다.
 
4개 지구로 이뤄진 성수전략정비구역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계획’에 따라 한강변에서 유일하게 50층까지 지을 수 있는 곳이어서 주목도가 더 크다. 이들 사업지는 내년 3월 2일까지 사업을 진척하지 못하면 정비구역에서 해제될 수 있다. 서울시는 이와 함께 사업이 오랫동안 멈춰 있지만 일몰제 대상에서 제외된 서대문구 가재울7구역 등 4개 사업장에 대해서도 일몰제 적용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 일몰제 대상 사업지는 사업에 박차를 가하거나, 일몰기한 연장을 추진 중이다. 성수2지구, 신길2구역 등지는 늦어도 11월에는 조합창립 총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총회를 연다는 건 그 전까지 조합설립 요건(토지 등 소유자 75% 이상, 전체 토지면적 2분의 1 이상 동의)을 갖추겠다는 의미다. 성수2지구는 최근 토지 등 소유주 동의율이 75%에 다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 추진 요건을 갖추지 못한 곳에서는 일몰기한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토지 등 소유자 30% 이상이 동의하면 해제기한 연장을 시·도지사에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일몰기한은 2년 더 늘어난다. 구로구 보광 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는 올해 초 조합원 50%가량의 동의를 얻어 구로구에 일몰기한 연장을 신청했다. 동작구 흑석11구역과 송파구 마천4구역도 일몰기한을 연장시켰다.
 
하지만 사실상 서울 전역이 상한제 타깃이 된 데다 서울시가 지지부진한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대해 회의적이어서 일몰제에 따른 사업 중단 사례는 계속 나올 전망이다. 이 때문에 서울의 주택 수급불균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은 주택을 새로 지을 땅이 사실상 거의 없어 재개발·재건축 사업 외에는 신규 주택 공급이 쉽지 않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서울은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지 않는 이상 가용 토지가 없다”며 “한번 일몰제로 정비구역이 해제되면 다시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떨어져 도심 공급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일몰제로 사업이 중단되면, 새로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집값 불안을 잡겠다며 재개발·재건축 사업 규제를 강화한 때문이다. 재건축 사업은 정부가 지난해 강화한 안전진단 규정을 따라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사업을 시작한다면 안전진단 문턱조차 넘기 힘들 수 있다는 얘기다. 재개발 사업은 정비구역 해제로 신축 건물이 들어서면 노후·불량건축물 비율이 낮아져 구역지정 요건을 맞추기 어려워 질 가능성이 있다.
 
 

서울시, 지금까지 300여 곳 해제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현행 일몰제를 폐지하거나 적어도 신중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사업장에 따라 사업 기간이 천차만별인데, 현행 일몰제는 일정기간만 지나면 시·도지사가 무조건 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지 소유자 등 사업지 주민 동의에 의한 정비구역 해제 제도가 있음에도 일몰제를 유지하는 것은 재개발·재건축을 위축하는 이중삼중의 겹구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의 한 재개발조합 관계자는 “일몰제 대상이 되면 주민 의사보다 시·도지사에 의해 정치적으로 남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증산4구역만 해도 주민 30% 이상이 일몰기한 연장을 신청했는데 시가 일방적으로 해제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 연구위원은 “해제된 지역의 주택 노후화에 대한 대책도 없는 만큼 일몰제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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