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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돈 일일이 핀셋 작업도"… ‘진짜 돈’ 가리는 조폐公 연구원

중앙일보 2019.08.31 11:50
우리는 매일 돈을 쓰면서도, 돈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잘 모른다. 강주희(33) 한국조폐공사 위조방지연구팀 선임연구원도 2012년 입사 전까지 그랬다고 한다. 조폐공사는 돈을 찍어내는 일을 하지만, ‘진짜 돈’만 시장에 돌도록 돕는 일도 한다. 강 선임연구원은 “화폐에 들어가는 보안 기술을 개발하고 지폐의 진위를 감정하는 일을 한다”고 소개했다. 올해 탄생 10주년을 맞은 5만 원권이 나오기까지 과정부터 물었다.
강주희 한국조폐공사 위조방지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이 대전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한국조폐공사]

강주희 한국조폐공사 위조방지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이 대전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한국조폐공사]

“첫째, 흰색 용지에 바탕 그림을 넣는 ‘평판 인쇄’를 합니다. 둘째, 뒷면에 금액을 표시하는 ‘스크린 인쇄’를 합니다. 셋째, 위조 방지를 위해 홀로그램을 부착합니다. 넷째, 뒷면에 사물ㆍ풍경을 넣는 ‘요판 인쇄’를 합니다. 다섯째, 앞면에 인물ㆍ초상ㆍ금액을 넣는 ‘요판 인쇄’를 합니다. 여섯째, 전체 이미지를 기계로 검사하는 ‘전지 검사’를 합니다. 일곱째, 앞면 위아래 부분에 고유의 번호를 넣는 ‘활판 인쇄’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폐를 자르고 포장하는 ‘단재ㆍ포장’ 단계를 거칩니다. 꽤 복잡하죠? 인쇄를 마칠 때마다 창고에서 4~5일씩 건조 과정도 거쳐야 하는 ‘예술 작품’이랍니다.”
경북 경산 조폐공사 화폐본부에서 5만원권을 찍어내고 있다. 5만원권은 올해 발행 10주년을 맞았다. [뉴스1]

경북 경산 조폐공사 화폐본부에서 5만원권을 찍어내고 있다. 5만원권은 올해 발행 10주년을 맞았다. [뉴스1]

돈을 만드는 과정 곳곳에 들어가는 보안 기술을 개발하는 게 ‘평시’ 그의 업무다. 화학ㆍ광학ㆍ신소재공학ㆍ기계공학 등을 전공한 석박사가 모여 연구하고, 실험한다. 눈으로도 흔히 위조지폐를 가려낼 때 쓰는 ▶띠형 홀로그램 ▶입체형 부분 노출 은선 ▶가로 확대형 번호 ▶색 변환 잉크 ▶숨은 그림이 이 연구실에서 나왔다.
  
그는 “돋보기 쓰고, 현미경 들여다보고, 스포이트로 화학 물질을 떨어뜨리는 연구팀의 노력이 ‘진짜’ 돈이 도는 건전한 시장을 만든다”며 “여기서 개발한 기술은 지폐ㆍ주화뿐 아니라 신분증ㆍ여권, 복사방지 용지 제작, 브랜드 보안 라벨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대형 화재나 홍수라도 나면 즉시 ‘전시’(戰時)로 바뀐다. 진위감별 수요가 크게 늘어서다. 그는 경찰서ㆍ검찰 등에서 의뢰한 위조지폐도 감별하지만, 자연재해로 훼손된 돈의 진위를 가리는 업무도 한다. 지난 4월 강원도 고성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 사태 직후엔 사과박스 가득 불탄 1만원ㆍ5만 원권 지폐 3500장이 연구실에 들어왔다.
 
“까맣게 엉겨 붙은 돈을 한장 한장 낱개로 떼어내야 합니다. 최대한 바스러지지 않게 핀셋으로 분리하는 ‘노가다’죠. 오물 묻거나 썩은 돈도 많이 다룹니다. 내 돈이라고 생각하고 달려들지 않으면 힘든 일이죠.”
강주희 선임연구원이 돋보기로 1만원권 지폐의 진위를 감정하고 있다. [한국조폐공사]

강주희 선임연구원이 돋보기로 1만원권 지폐의 진위를 감정하고 있다. [한국조폐공사]

영화 ‘캐치 미 이프유 캔’ 같은 이야기는 말 그대로 영화다. 진위 감별은 감이 아니라 ‘과학’이라서다. 1단계로 숨은 그림, 홀로그램, 오톨도톨한 감촉같이 일반인도 알 수 있는 20여 가지 방식을 맨눈으로 감식한다. 그는 “첫 단계에서도 베테랑 연구원은 현미경 없이 어떤 장비로 인쇄했는지 단번에 파악할 정도로 눈썰미가 좋다”고 설명했다. 2단계로 형광램프ㆍ현미경ㆍ특수장비 같은 기계로 감식한다. 3단계는 일반에 공개 않는 조폐공사만의 노하우로 감별한다.
 
그는 “‘슈퍼 노트’ 같이 정밀하게 위조한 위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며 “집에 있는 프린터로 복사해 앞 뒷장을 붙인 엉성한 수준의 위폐가 주로 어르신이 많은 재래시장에서 종종 발견되곤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화폐 보안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100만장당 위조지폐는 0.12장으로 조사됐다. 달러ㆍ엔화같이 위폐가 많은 국가는 물론이고 영국(129.1장)ㆍEU(34장)ㆍ호주(19.7장)ㆍ캐나다(11장)보다 월등히 적다. 그는 “많은 보안 기술을 개발하지만, 유통 중인 화폐에 곧바로 적용할 수 없어 빛을 못 본 경우가 많다”며 “이런 노력이 모여 결국 더 완벽한 ‘신권’을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기환의 나공
[나공]은 “나는 공무원이다”의 준말입니다. 세종시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세금 아깝지 않게 뛰는 공무원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각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며 헌신하는 이들의 고충과 애환, 보람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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