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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인싸', 'TMI' 신조어도 수어(手語)로 전하는 '손짓 사랑'

중앙일보 2019.08.31 11:34
행인에게 길을 물었다. 몇번을 물어봤는데도 대답이 없다. ‘왜 이리 불친절하지?’라고 생각할 때쯤 상대방이 손짓으로 귀가 안 들린다는 표현을 했다. ‘아, 청각장애인이구나…’ 장애의 정도가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으니 불편한 부분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는 살아오면서 지금과 같은 무례한 상황을 얼마나 마주해야만 했을까.  

[눕터뷰]
부처님 말씀과 신조어 손짓으로 전하는
김철환·추호성 수어 통역사

 
수어(手語)는 '수화언어'라는 의미로 청각, 언어 장애인들이 입으로 하는 말을 대신해 몸짓이나 손짓으로 표현하는 의사 전달 방법이다. 손가락이나 팔로 그리는 모양 및 그 위치나 이동에 덧붙여, 표정이나 입술의 움직임을 종합해 이해하는 언어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한국수어'가 청각장애인의 고유 언어로 인정됐다.
 
 
김철환 수어통역사(왼쪽)는 부처님의 말씀을, 추호성 수어통역사는 신조어를 수어로 전달한다. 이들은 청각장애인들에게 일상언어 말고도 여러 분야의 수어 통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사랑해'를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김철환 수어통역사(왼쪽)는 부처님의 말씀을, 추호성 수어통역사는 신조어를 수어로 전달한다. 이들은 청각장애인들에게 일상언어 말고도 여러 분야의 수어 통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사랑해'를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 4월 뉴질랜드 이슬람사원 총격 테러 당시 저신다 아던 총리는 반자동 소총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 발의를 밝히는 기자회견에 수어 통역사와 함께했다. 아던 총리는 각료회의 결과 브리핑도 수어 통역을 제공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4월 강원도 고성 산불 사고 당일 재난 방송에서는 수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았다. 장애인 단체들은 “짧은 문자나 뉴스 자막만으로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수어 통역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일상의 대화 뿐 아니라 진료, 문화생활, 여가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어 통역은 필요하다. 청각장애인들의 종교생활과 문화생활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수화 통역사가 있다. 수어로 불법을 전하는 김철환 통역사와 각종 신조어를 통역하는 추호성 수어 통역사다. 조금 더 깊은 소통을 향하고 있는 그들을 만나 손짓으로 전하는 세상에 대해 들어봤다.
 

손짓으로 전하는 불법, 김철환 통역사

 
“모든 통역의 출발은 언어를 치환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이 가진 정체성을 고려해 필요에 맞게 재가공하는 것입니다”

 
김 통역사는 조계사 장애인전법팀 원심회 소속으로 불법(佛法)을 수어로 통역하고 있다. 오랜 시간 장애인 인권활동을 했던 그는 ‘불교와 청각장애인’을 주제로 불자들에게 수어를 가르친다. 불자들을 위한 통역도 하고 있다.  
김철환 수어통역사가 지난 5월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 법요식에서 수어 통역을 하고 있다. [사진 김철환]

김철환 수어통역사가 지난 5월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 법요식에서 수어 통역을 하고 있다. [사진 김철환]

 
"우연히 수어 강좌를 듣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청각장애인들을 만나 복잡했던 속마음을 나누게 되었어요. 그들도 속앓이가 심했기에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었죠"
 
김 통역사는 지난 1997년 민간 수화통역사 자격증 시험에 합격한 후 조계사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불자의 삶을 사는 것, 그게 청각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사는 것이라 판단했어요"

 
이후 한국농아인협회에서 일을 시작했고 2008년에는 '장애인정보문화누리'라는 장애인 인권 단체를 만들었다. 영화 자막 지원 운동을 국내에서 처음 시작하기도 했다.  
 
"듣지 못하는 데서 오는 한계에 대한 보완이 없어서 수어를 주로 쓰는 사람들은 문장 이해도가 낮은 경우가 많아요. 이건 지능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언어발달 과정에서 모국어와 친숙해지지 못해 그렇게 된 겁니다. 우리가 외국어를 어렵게 느끼는 것과 같죠" 
 
김 통역사가 조계사 내 장애인 전법팀 '원심회'에서 진행한 법회에서 수어통역을 하고 있다. [사진 김철환]

김 통역사가 조계사 내 장애인 전법팀 '원심회'에서 진행한 법회에서 수어통역을 하고 있다. [사진 김철환]

 
불교 용어에는 한자가 많다. 그렇기에 우리말로 뜻풀이하고 수어로 다시 통역하는 두 번의 과정이 필요하다. "자비(慈悲)는 '남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겨 베풀다'라는 뜻입니다. 어루만지는 듯한 동작으로 표현합니다. 열반(涅槃)은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닫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생각'이라는 동작과 '깨닫다'라는 동작으로 보여줍니다. 언어는 전달하는  분위기를 따라가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전달해야 합니다" 
 
김 통역사가 '깨닫다'라는 동작들로 '열반'을 표현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김 통역사가 '깨닫다'라는 동작들로 '열반'을 표현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그는 청각장애인의 정보화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시행됐어요. 한국수어가 대한민국의 공식 언어로인정된 거죠. 소수언어인 수어가 한국어와 동등한 언어가 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수어 교육 표준화를 위해 수어 교육원 인증제, 교원양성, 자격증 제도 등이 신설됐지만 청각장애인들의 인권이나 복지 부분은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뉴스 화면을 보면 청각장애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정보차단이 더 심각합니다. 사회적 약자의 정보 접근성을 더 활발하게 논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신조어도 수어로 가뿐, 추호성 통역사 

 
‘롬곡옾눞(폭풍눈물)’, ‘갑분싸’, ‘핵인싸’...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서울 강동구 수어 통역센터에서 근무하는 추호성 통역사는 청각장애인들도 언어유희를 즐길 권리가 있다며 신조어를 수어로 옮기는 데 힘쓰고 있다.  
 
 
“요즘 방송에는 자막이 과도하게 많이 나옵니다. 듣지 못하고 자막만 보게 되는 경우 오히려 내용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나열된 단어들을 해석하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이죠. 화면은 빠르게 전환되는데 상황을 종합해서 받아들여야 하므로 정보 습득의 한계가 오기도 합니다”

추호성 통역사가 드라마를 수어 통역하고 있다. [사진 추호성]

추호성 통역사가 드라마를 수어 통역하고 있다. [사진 추호성]

 
그가 처음 손짓으로 옮긴 신조어는 ‘TMI(Too Much Information)’였다. “예능프로그램을 통역하는데 경제 용어인 줄 알았어요. 그걸 빼고 통역하고 나중에 뜻을 찾아봤습니다” 신조어를 전달하는 핵심은 단어의 뜻을 간결한 동작으로 정리하는 데 있다. “축약된 원래의 단어를 일일이 지칭하면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TMI’는 말이 많은 듯한 동작, 폭풍눈물을 뒤집어 놓은 모양의 ‘롬곡옾눞’은 우는 표정을 지으며 눈물이 쏟아지는 듯한 동작으로 표현한다.  
 
폭풍눈물은 우는 표정을 지으며 눈물이 쏟아지는 듯한 동작으로 표현한다. 장진영 기자

폭풍눈물은 우는 표정을 지으며 눈물이 쏟아지는 듯한 동작으로 표현한다. 장진영 기자

'TMI'는 '말이 무척이나 많다'라는 동작으로 표현한다. 장진영 기자

'TMI'는 '말이 무척이나 많다'라는 동작으로 표현한다. 장진영 기자

 
추 통역사의 신조어 표현에 청각장애인들은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며 반겼다. “방송을 보면서 신조어의 뜻을 모르니 아주 답답해들 하시더라고요. 제 통역으로 ‘그 의미였구나’라며 좋아하십니다. 수어의 특징이 표정과 몸짓을 더해 전달하는 건데, 신조어의 경우 표정을 더 풍부하게 전달하려 노력합니다”
 
수어는 이름이나 외모의 특징으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추호성 통역사(왼쪽)는 별명인 '반달곰'을, 김철환 통역사는 '철'로 자신의 이름을 보여주고 있다. 장진영 기자

수어는 이름이나 외모의 특징으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추호성 통역사(왼쪽)는 별명인 '반달곰'을, 김철환 통역사는 '철'로 자신의 이름을 보여주고 있다. 장진영 기자

 
부처님의 말씀과 각종 신조어를 수어로 전달하고 있는 두 사람은 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청각 장애인에 대해 한국 사람이니까 당연히 한국말과 한글을 잘 쓸거라고 생각하고 이해가 늦으면 지적 장애가 있는 걸로 간주해버리는 경향이 많습니다. 입술 모양을 읽는 구어법도 능숙할 거라는 생각도 오해입니다. 말은 들으면서 입으로 따라 하며 배우는 겁니다. 이런 과정이 없었던 사람들은 당연히 힘들 수 있죠. 조금 느리고 답답할 수 있겠지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진·글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눕터뷰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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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장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