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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네 번 걸려도 또 장사…과태료 안 내고 몸으로 때운다”

중앙선데이 2019.08.31 00:24 651호 8면 지면보기
“뭔 소리야, 딴 데 가서 물어 보슈.”
 

16년째 장사하는 3호선 ‘곰탱이’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 모인 ‘땅굴’
숨 쉴 정도는 마련해주고 단속을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손사래를 쳤다. 지난 19일 오후 지하철 3호선 XX역 승강장.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검정 캐리어를 끌고 나타난 이동상인을 만났다. 살짝 열린 지퍼 틈새로 알록달록한 상품이 보였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거부감을 심하게 드러냈다. 설득 끝에 다음 지하철이 들어올 때까지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이름도 얼굴도 공개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곰탱이라는 별명을 가진 경력 16년의 이모(57)씨였다. 
3호선 ‘곰탱이’ 이모씨가 19일 오후 지하철 안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3호선 ‘곰탱이’ 이모씨가 19일 오후 지하철 안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단속이 얼마나 심해졌나.
“저기 땅굴은 정말 죽을 맛이란다. 숨을 못 쉬겠다. 장사 자체가 안 돼 관둔 사람도 많다. 우리 라인에 11~12명이 있었는데 몇 년 새 6명으로 줄었다. 저 밑으로 XX역까지는 1명만 남은 것으로 안다.”
 
땅굴은 지하철 노선의 지하 구간을 뜻하는 은어다. 그가 말한 ‘우리 라인’은 역 6곳을 잇는 구간이다.
지하철 보안관 박상혁(38) 씨가 23일 오후 지하철 5호선 객차 연결 통로문에서 보따리를 짊어지고 물건을 파는 이동상인을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 채증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지하철 보안관 박상혁(38) 씨가 23일 오후 지하철 5호선 객차 연결 통로문에서 보따리를 짊어지고 물건을 파는 이동상인을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 채증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오늘 몇 바퀴 돌았나.

“난 8바퀴 돌고 퇴근한다. 동료들은 4~5바퀴 돌고 퇴근했다. 그래서 나를 곰탱이라고 부른다. 8번쯤 돌면 이렇게 목소리가 갈라진다.”
 
인터뷰가 길어졌다. 약속한 ‘지하철 1대’를 넘어 3대가 더 들어왔다. 그와 지하철에 동승했다.
 
지하철을 타게 된 이유는.
“소파 수선을 하다 빚을 지고 때려치웠다. 달리할 게 없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겠지만, 여기는 바닥까지 갔다 온 사람들이 많다. 내게도 유혹이 있었다. 주먹 좀 쓴다고 여기저기서 부르더라. 그래도 그쪽으로 빠지진 않았다. 이렇게라도 벌어보려 노력하고 있는 거다. 같이 장사하는 형님이 오늘만 단속에 4번 걸렸지만, 몸으로 때운다고 하더라. 단속이 필요하지만 먹고살 정도로만 했으면 좋겠다. 이곳도 나름 시장이라 난장판이 안 되게 단속해달라는 것이다.”
 
그는 마지막 하행 장사에 들어갔다. 갈라진 목소리를 짜냈다. “자, 4000원 하던 때수건. 세일합니다. 2000원. 이 양쪽을 이렇게 잡아….” 지하철 문이 닫혔다. 승강장에서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현란한 시범 동작이 도드라져 보였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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