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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은 독단적 민족주의 탓, 보편적 이성이 사라졌다

중앙선데이 2019.08.31 00:20 651호 26면 지면보기

빠른 삶, 느린 생각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이제는 그 의미도 복합적인 것이 되는 듯하지만, 강제 징용자 보상에 대한 판결과 그에 대한 일본 아베 총리의 경제 반격에서 유래한 한일 불협화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정치 판도를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혹독한 식민지 체험, 후대에도 영향
사회 정의 실현한다며 분노 북돋아
국가 단위의 민족주의 다시 고개
이젠 이성적 담화의 공간 필요

그리고 뒤따르는 움직임들도 상황을 계속 악화시키는 쪽으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 한일 관계의 악화는, 정치나 경제 그리고 국제 관계에 대하여 별로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크게 작게 마음을 흔들어 놓는 사건이 되었다. 그 충격으로 생기는 반응은 물론 집단적 정치 움직임으로도 나타나지만, 일본 수입품 불매와 같은 일상적 삶의 움직임 같은 데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음식 식당에 들어 갈 때 조금은 느끼게 되는 망설임과 같은 데에도 그 영향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널리 파급되는 효과는 사람의 삶과 의식이 그날 그날의 삶에 있어서까지도 얼마나 정치적 상황이 짜내는 편직물에 접혀 들어가 있는가, 그리고 거기에서 벗어져 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하게 한다.
 
민족의식이 미세한 일상적 삶에까지 배어 들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식민지 시대는 너무나 중요한 역사 체험이었다. 강한 민족의식은 적극적인 정치 계획의 기초가 될 때, 긍정적인 요소이고 권장하여서 마땅한 심리적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보다 포용적 입장으로의 이행에 부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타협과 화해의 가능성으로 옮겨 가는 데에는 더 넓은 관점에서의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트럼프 ‘미국 제일주의’가 대표적
 
그리고 그것은 국제 관계나 사회생활에서 기본적 바탕이 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보편주의가 민족 중심 또는 다른 종류의 국지주의의 독단을 간단히 대신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일 갈등과 관련하여 생각하게 되는 것은-문제가 촉발된 것은 두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의 단견(短見), 정치 전술 또는 애국심으로 인한 것이지만-민족의식이 얼마나 원초적인 것인가 하는 사실이다. 필요한 것은 상황의 모순적 복합성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여, 추상적 개념이 불러일으키는 반응도 사고를 넘어 감정의 직접성을 얻어 삶에 작용하는 큰 힘이 된다. 자주 이야기되듯이, 사람은 사회적 동물 또는 존재이다. 그렇다는 것은 사회 속에서만 개인의 삶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사회성은 생존의 필요에 이어져 있다. 그것은 추상적 이념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그러면서 감각과 감정의 직접성을 얻어 행동의 동기로 작용한다.
 
애국심은 그러한 개념과 감정이 통합되어 생겨난 마음 상태의 하나이다. 어떤 미국 소설에 전쟁에 나가는 한 청년이 자신의 동기를 고향과 그곳의 삶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있다. 우리의 경우에 애국심은 좀 더 추상화된 이념이고 심정이다. 그러면서 더 강력하다. 그러나 사회성은 고장, 가족, 씨족, 종족, 현대적 의미의 국가에 대한 애착과 충성에 두루 작용한다. 정당 그리고 여러 가지 사회적 결사체(結社體)들도 이러한 인간 실천의 통합적 동기에 대응하는 대상이고 사건이다.
 
인간 심리의 감정 결정체(結晶體)에 개입되는 다른 요소들도 있다. 인간의 의식은 사실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 또는 ‘백지(白紙) 상태(tabula rasa)’가 아니다. 사물이나 사태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모든 선입견을 제거한다고 하여도 그러한 공백 상태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말할 것도 없이, 두뇌와 신체의 생물학적 조건은 우리의 사고를 선험적으로 한정한다. 최근에 발전된 것으로, 후천적(後天的)인 요소가 거의 선천적인 조건에 비슷하게 사고와 행동을 규정한다는 연구들, 가령 ‘후성유전학(後成遺傳學, epigenetics)’의 연구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식민지 경험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 하나는, 식민지 경험이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이다.  
 
서호주대학의 패트리시아 더젼 교수가 주도하는 ‘토착인 연구팀’은 두서너 세대가 지난 후에도, 잔혹한 식민지 경험이 DNA보다는 그 상위, 그러면서 의식의 하위인 중간 부분에 자취를 남긴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젊은 세대에 자살률이 높은 것과 같은 일이 거기에 관계된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민족주의적인 독단론을 벗어나게 하는 데에는 논리적 설득이나 보편적 인간주의 호소력 이상의 조처들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식민주의 경험이 그러한 치명적 상처를 남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호주의 토착민 정책은 출생아를 부모로부터 격리시키는 것과 같은 특히 가혹한 방안을 포함하였다. 의도는 인간형성의 문화적 기초부터 바꾸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이러한 혹독한 식민지 체험에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도, 식민지 후세대의 민족의식에는 이에 비슷하게 단순한 의식의 차원을 초월하는 후성유전자적 요인이 스며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의 식민지 체험 또는 정치 체험을 뒷받침하는 것은 조금 더 의식의 차원에 작용하는 개념의 힘이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생각에 분노를 북돋아서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있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정치의 힘이 된다. 그것은 공격적 힘이기도 하고 대항적 결속을 가져 오는 힘이기도 하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힘은 국가이다. 이 힘에 민족이 추가되면, 그것은 더욱 강한 것이 된다. 어떤 경우에나 국가의 권력은 강력한 힘이고, 그 힘은 사람의 삶을 여러 가지로 뒤틀어 놓는다. 이번에 보게 되는 한일 갈등이 당장에 삶의 여러 세부를 바꾸어 놓은 것으로도 그것을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이 마구잡이로 삶의 세부, 극히 작은 차원에서는 그 뉘앙스를 바꾸어 놓는다는 점에서 자유의지를 억제하는 힘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힘이라도 느낄 수 있기를 원한다. 집단은 개인으로 하여금 개인적 실존의 취약성을 넘어 갈 수 있게 한다.
 
지금의 세계에서 널리 볼 수 있는 현상의 하나는 국가 단위의 민족주의의 재등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제일주의’는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민족주의 정권 또는 정당의 발흥을 본다.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겠다는 브렉시트도 그러한 흐름의 조금 다른 표현이다. 동북아에서의 강화되는 것으로 보이는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도 이러한 흐름에 맞아 들어간다.  
  
칸트는 ‘교역 발달이 평화 매개자’ 주목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국가 단위 또는 집단적 힘에 대한 열망이다. 보다 큰 테두리에 통합됨으로써 취약해진 민족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거기에 입각하여 자신들의 문제 해결의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한일 갈등은 그 나름대로의 구체적인 원인에 의하여 유발된 것이지만, 그것을 강화하는 것도 민족주의 재발흥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여러 목적을 위하여 정치의 힘을 강화하는 방편이다.)
 
세계화는 지구를 하나로 묶어 주는 역사적 흐름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정치력을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계층, 지역, 국가 이익을 걸머지는 정치력에 대한 요청이 생겨난다.
 
그러나 보다 보편적인 인간 이상에 대한 갈구가 사라질 수는 없다. 그것을 위하여서는 지역 그리고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문화, 이성적 문화가 존재하여야 한다. 유럽에서 그러한 문화는 역사적 발전의 일부를 이루었던 것으로 말할 수 있다. EU는 그러한 발전의 한 열매이다. 다만 그것은 최근에 와서 일단의 시련에 들어 간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에 그러한 문화는 미약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동북아에 필요한 것은 그러한 문화의 수립 또는 공유할 수 있는 이성적 담화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것은 최근의 일로 더욱 요원한 이상이 되었다.
 
다만 이러한 이상과는 별도로, 칸트는 교역의 발달이 평화의 매개자가 된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이번에 촉발된 한일 불화 관계에서도 그것이 격렬한 대결로 치닫지 않은 것은 물질적 인간적 교류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이성적 담론 공간의 수립은 미래의 과제로 남는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은 구현되고야 말 실천적 이상일 것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고려대 명예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미국문명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첫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이후 『지상의 척도』 『심미적 이성의 탐구』 『자유와 인간적인 삶』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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