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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범 책임 묻는 다큐 영화 ‘도쿄재판’ 아베도 봐라

중앙선데이 2019.08.31 00:20 651호 27면 지면보기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한국의 광복절인 8월 15일은 일본에서는 종전기념일이다. 일본은 ‘패전’이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가해국이면서도 ‘피해자 의식’이 강한 것은 두 번의 원자폭탄 피해를 입고 전쟁이 끝났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에서는 식민지 지배에 대해 배울 시간이 거의 없다. 반면 수학여행으로 원폭 피해지인 히로시마(広島)나 나가사키(長崎)에 가는 기회는 많다.
 

4시간37분짜리 83년 작 재개봉
피고 28명 전원 유죄 판결받아
도조 전 총리 등 7명은 교수형에
전쟁 책임 반성은 못 느껴 아쉬움

8·15에 즈음해 열린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다녀왔다. 제천시의회는 개막전 일본 영화 상영에 반대했다고 들었다. 일본 정부의 백색 국가(화이트 리스트) 배제 조치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국제영화제에서 국가 간의 정치적 갈등을 이유로 어떤 나라의 작품을 상영하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아이치현(愛知県)에서 열렸던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 출품된 ‘표현의 부자유전-그 이후’가 거기에 함께 있던 ‘평화의 소녀상’ 때문에 전시가 중단됐다. 이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요즘 한·일에서는 이처럼 평소에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제천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일본 반전 영화 ‘오래된 이 길’의 한 장면. [사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천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일본 반전 영화 ‘오래된 이 길’의 한 장면. [사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다행히 제천영화제에서는 예정대로 7편의 일본 영화를 상영했다. 그중 사사베 기요시(佐々部清) 감독의 ‘오래된 이 길’을 봤다. 시인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와 음악가 야마다 코사쿠(山田耕筰)라는 실재 인물을 모델로 한 영화다. 둘은 1923년에 일어난 간토(関東) 대지진을 계기로 상처 입은 아이들을 위해 함께 동요를 만들기 시작하지만, 일본이 전쟁의 길로 가는 시기에 오히려 아이들을 전쟁터에 보내게끔 하는 군가를 만들어야 하게 되면서 괴로워한다.
  
제천영화제 곡절 끝 일본 영화 7편 상영
 
이러한 반전(反戰) 영화가 일본 영화라는 이유로 한국에서 상영을 못 하게 될 뻔한 것이다. 문화인들이 자신의 뜻과 달리 전쟁에 휘말린 역사는 지금이야말로 한국 사람도 일본 사람과 함께 생각해 봐야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 참가한 일본 프로듀서는 ‘일본 우경화에 대해 일본의 일반 시민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가’라는 관객의 질문을 받았다. 프로듀서는 “물론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며 “일본 사람들은 원폭 피해를 입은 역사를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평화헌법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한국에서 한국 관객들을 앞에 놓고도 ‘전쟁=원폭 피해’라고만 이야기하는 것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식민지 지배나 징용공, 위안부 등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에 대해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했다.
 
그렇지만 나도 한국에 살기 전까지는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일본에만 있으면 그런 기회가 많이 없는 건 사실이다. 일본의 전쟁 책임이나 식민지 지배에 대해 많이 배우는 한국과 일본의 큰 차이다. 최근 한·일 갈등도 이런 역사 인식 차이로 인한 부분이 큰 것 같다.
 
한·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이번 여름에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달 도쿄에서 기록영화 ‘도쿄재판(東京裁判)’을 봤다. 도쿄재판의 정식 명칭인 극동국제군사재판은 태평양전쟁의 종착점이자 전후 일본의 출발점이다. 1946년 5월부터 약 2년 반에 거쳐서 일본 피고 28명의 전쟁 책임을 묻는 재판을 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도쿄재판에 대해 잘 몰랐다. 쇼와 히로히토 천황이 피고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 1941년 진주만 공격 시 총리였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가 재판 결과 교수형에 처해진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도쿄재판’은 1983년에 개봉한 영화다. 영상과 음성이 선명해진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은 이달 선보였다. 러닝타임 277분(4시간37분)이라는 긴 영화지만 보고 나면 더는 짧아질 수가 없다고 느꼈다. 미군이 찍은 실제 재판 영상은 170시간이었는데 다른 영상도 추가하면서 줄인 것이다.
 
고바야시 마사키(小林正樹) 감독은 전쟁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며, 전쟁 관련 극영화를 만들었다. ‘도쿄재판’도 처음엔 A급 전범을 주인공으로 한 극영화로 기획했지만 결국 기록영화로 제작됐다. 그래서 그런지 다큐멘터리이면서 극영화 같은 느낌이 난다. 피고가 모두 무죄를 주장한 장면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감독은 이 부분을 강조한 것 같다. 예를 들어 도조가 “무죄”라고 하는 영상만 보여 주고 나머지 피고들도 무죄를 주장했다고 내레이션으로 표현해도 될 만한데, 피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에서 “무죄”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다 보여 준 것이다. 물론 변호사가 무죄를 주장하도록 권한 것도 있겠지만, 영화 전부를 봐도 솔직히 전쟁 책임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는 보지 못했다.
 
연합군 총사령관 맥아더(왼쪽)와 쇼와 천황. [중앙포토]

연합군 총사령관 맥아더(왼쪽)와 쇼와 천황. [중앙포토]

최종적으로 모든 피고가 유죄 판결을 받았고, 도조를 비롯한 7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도쿄재판이 정말로 전쟁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재판이었는지 의문이 남았다. 오히려 초점은 윌리엄 웹 재판장과 조셉 키넌 수석 검사의 대결로 보였다. 둘은 쇼와 천황의 면책을 둘러싸고 대결했다. 키넌 수석 검사는 미국인이다.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의 뜻을 받아 천황 면책을 위해 싸웠다. 책임을 추구할 입장인 검사가 말이다. 한편 호주인 웹 재판장은 천황의 전쟁 책임을 물으려고 했다. 맥아더는 한국에서는 인천상륙작전 등 한국 전쟁 관련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일본에서는 전후 일본을 점령, 통치한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 기억하고 있다. 맥아더는 천황제를 유지하는 것이 일본을 점령, 통치하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영화 자체는 재미있었고 몰두해서 봤지만, 전쟁 책임에 대해 알고 싶다는 욕망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특히 쇼와 천황이 어떻게 전쟁 책임을 면했는지는 오히려 더 알고 싶어져서 관련 책을 몇 권 구입했다. 책임의 소재를 애매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일본적일 수도 있다. 영화로 보는 피고들은 검사나 재판관이 묻는 질문에 애매하게 대답하고 “그것은 어떤 의미냐”고 재차 질문받는 장면도 몇 번 있었다. 국회 중계방송 등에서 일본에서 자주 보는 답답한 풍경이다.  
  
출판사 고단샤 5년 만에 뚝심의 완성
 
기록영화 ‘도쿄재판’의 장면들. [고단샤]

기록영화 ‘도쿄재판’의 장면들. [고단샤]

개인적으로는 쇼와 천황이 전쟁에 소극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전쟁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천황제를 유지하는 것이 점령, 통치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은 물론 당시 일본 국민들의 감정도 고려한 것이었겠지만, 정치적 판단으로 전쟁 책임을 제대로 추구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와버렸다는 사실이 결국 일본 사람들이 전쟁의 ‘가해’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된 배경인 것 같다.  
 
한편 이런 대작 영화가 전후 40년 가까이 지나서 탄생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 영화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국제평론가연맹상을 받기도 했다.
 
‘도쿄재판’을 만든 회사는 영화사가 아닌 출판사 고단샤(講談社)다. 출판사가 영화를 만드는 일은 흔치 않다. 처음에 1년 정도로 만들 수 있을 줄 알고 시작했다가 5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만큼 제작비도 원래 계획보다 훨씬 비싸졌다. 고단샤로서는 엄청나게 큰 부담이 되었지만 끝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각본과 감독 보좌를 맡은 오가사와라 기요시(小笠原清)는 “그만큼 출판사도 그 당시 일본 사람들도 ‘도쿄재판’이라는 것이 우리의 역사적 과제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1983년이라는 개봉 당시의 분위기는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이번에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탄생했다는 뉴스는 크게 보도됐다. 그래서 한국에 사는 나도 일부러 보러 간 것이다.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이 개봉한 첫날에 극장에 갔더니 그날은 상영 후 오가사와라 등 관계자의 토크도 있어서 만석이었다. 일본 전체로 보면 소수일 수도 있지만, 1983년에도 2019년에도 일본 전쟁 책임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일본 사람들도 꽤 있는 것이다. 한 관객은 “이 영화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오가사와라는 “아베 총리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은 모두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기본이다. 이 영화도 보지 않고 전쟁에 대해 뭐라 할 수 없다”고 답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이 영화로 속 시원하게 뭔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본이 가해국이었다는 사실과 마주칠 수밖에 없는 4시간37분이었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에 유학. 한국영화에 빠져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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