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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曰] 미즈노 아니면 뭘 신지?

중앙선데이 2019.08.31 00:20 651호 30면 지면보기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 중앙콘텐트랩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 중앙콘텐트랩

한·일 경제전쟁의 불똥이 여기저기로 튀고 있다. 스포츠계도 예외는 아니다. 데상트·미즈노·아식스 등 한국에서 넓은 소비자층을 가진 일본 브랜드들의 매출 급락이 눈에 띈다.
 

일본제 대체할 스포츠 브랜드 있나
IT 기술 활용 등 차별화 제품 내놔야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가려던 프로농구·배구팀들도 잇따라 전지훈련 계획을 바꾸고 있다. 심지어 시즌 후 마무리훈련과 시즌을 앞둔 동계훈련은 으레 오키나와·가고시마로 가던 프로야구 구단들도 호주·대만 등으로 옮기려 하고 있다.
 
반면 일제를 압도할 만한 국산 브랜드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일본 제품 안 쓰기’는 국내 스포츠산업의 황량한 민낯을 드러내는 역설(逆說)로도 작동한다. 신발이 대표적인 경우다. 국내에는 수만 개의 야구 동호회가 있는데 야구화·글러브·배트 등을 국내 제품으로 쓰는 선수는 많지 않다. 야구용품 총판인 브리온스포츠 임우택 대표는 “국내 야구용품 시장은 미국(나이키·언더아머·윌슨 등)과 일본(미즈노·아식스 등)이 장악했다. 국산 야구화는 아예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제를 쓰지 말자고 하면 야구 시장은 미국 제품의 독무대가 될 수밖에 없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축구화는 나이키·아디다스 양대 산맥이 버티는 가운데, 의외로 미즈노의 선호도가 높다. 미즈노는 한국에서 특별한 마케팅을 하지 않았는데도 “제품이 좋다. 한국인의 족형(足形)에 맞는다”는 입소문을 타고 자리를 잡았다.
 
축구용품 총판인 싸카스포츠 오정석 대표는 “국내 축구화 시장은 3대 글로벌 브랜드(나이키·아디다스·푸마)가 75%, 미즈노가 15%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10%를 중소 브랜드들이 나눠 먹고 있다. 그 속에 국산 브랜드 키카도 있다”고 말했다. 1980∼90년대 국내 축구화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했던 키카의 침체가 뼈아프다.
 
1970∼80년대 축구 국가대표였던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신발은 과학”이라고 말했다. ‘프로스펙스’로 이름을 날리던 80년대 국제상사에서 마케팅 실무를 맡았던 신 교수는 “스포츠화는 대략 27단계 공정을 거치는데, 이 속에서 타제품과 차별화할 수 있는 기능이나 디자인으로 승부해야 한다. 나이키·아디다스·푸마 등은 ‘어떻게 하면 편하고 기능성 좋은 스포츠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속에 성장해 왔다. 국산 브랜드들은 이 고민이 치열하지 않았고, 정부의 지원도 미약한 가운데 글로벌 브랜드의 융단폭격에 맥없이 나가떨어졌다”고 진단했다.
 
국산 스포츠용품이 회생의 전기를 마련하려면 뭘 해야 할까. 아무리 정부에서 자금을 펑펑 지원한다 해도 기술개발을 하루아침에 이룰 수는 없다. 오히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기동성, 디자인 감각을 동원해 다품종 소량 생산, 소비자 맞춤형 제품을 개발해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오정석 싸카스포츠 대표는 “축구공 대량생산은 파키스탄을 따라갈 수 없다. 대신 축구공을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거나 K팝 공연의 기념품으로 활용하는 등의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스포츠데이터 분석업체 스포츠투아이의 김봉준 부사장도 “IT 기술을 활용한 경기 분석 시스템은 일본과 동등한 수준이거나 오히려 뛰어난 점도 있다. 국내 스타트업인 포디리플레이(4D리플레이)는 실리콘밸리에 진출해 360도 화면 리플레이 기술에서 최고 품질을 인정받았다”며 “온라인 콘텐트 서비스에서 세계 최고를 만들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과 육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일 경제전쟁은 스포츠 동호인에게 ‘미즈노·아식스 안 신으면 뭘 신지?’ 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 누군가 대답해야 한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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