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네 입술에 뽀뽀" 남자친구에게 편지 쓴 쇼팽, 동성애자 였을까

중앙일보 2019.08.30 12:00

[더,오래]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39)

티투스 보이체호프스키. 폴란드의 정치운동가, 농업학자. 쇼팽의 어린 시절 친구로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에는 짙은 애정표현이 흔했다. 쇼팽이 파리에 정착한 후에는 만나지 못했다. 사진 복사본. 바르샤바 프레데릭 쇼팽 기념관 소장.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티투스 보이체호프스키. 폴란드의 정치운동가, 농업학자. 쇼팽의 어린 시절 친구로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에는 짙은 애정표현이 흔했다. 쇼팽이 파리에 정착한 후에는 만나지 못했다. 사진 복사본. 바르샤바 프레데릭 쇼팽 기념관 소장.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쇼팽과 상드 두 사람 모두 동성애자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쇼팽에 관한 한 그 주된 원인은 밖으로 드러나는 그의 모습에 있었다. 외모는 연약했고, 그의 곡은 대부분 여성적이다. 기질과 음악은 모두 섬세하고, 몽환적이었다. 요정의 목소리를 연상시키는 가벼운 건반 터치는 한없는 부드러움을 느끼게 했다. 이 모두 그에게서 여성적인 면모를 찾게 하였다.
 
그는 누나와 여동생 속에서 컸다. 딸이 많은 집안의 아들은 여성스러운 성향을 다소 가질 수밖에 없다. 파리에 와서도 그의 주 무대는 귀족들의 살롱이었다. 그곳에서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귀부인과 아가씨들이었고 그는 그 속에서 즐겁고 편안해 보였다. 이 또한 그에 대한 여성적인 이미지를 강화했다.
 
쇼팽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다수 남아있다. 그 편지에는 동성애를 연상시키는 표현들이 들어있다. 청년 시절부터 그에게는 티투스 보이체홉스키(Tytus Wociechowski, 1808~1879)가 가장 중요한 친구였다. 쇼팽은 티투스와 평생 편지를 주고받았다. 티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견되는 다음의 구절은 묘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너는 뽀뽀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받아 줘야겠어.’ (1828. 12. 27)
‘너를 꼭 껴안고, 네가 괜찮다면 네 입술에 뽀뽀한다.’ (1829. 9. 12)
‘난 씻어야겠어. 지금은 뽀뽀하지 마. 물론 향수를 발라도 너는 뽀뽀하지 않겠지만. 자석으로 끌어당긴다면 모를까?’ (1830. 9. 4.)
‘내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지 넌 모를 거야. 내가 그것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다시 한번 너를 꼭 껴안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줄 수 있어.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걸 알아. 그리고 네가 나를 점점 더 사랑해 주었으면 해.’ (1830. 5. 15)


쇼팽이 티투스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언제나 그와 떨어져 있을 때였다. 티투스는 그의 고향 포트루진(Potruzyn)에 있을 때 청년 쇼팽은 그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다. 그래서 편지에서 언급된 애정 깊은 행동은 편지 속에만 있었지 실제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아스톨프 퀴스틴 후작. 여행작가로 여행기 '1839년 러시아'가 유명하다. 파리 인근에 있는 그의 별장에 쇼팽은 자주 초대되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아스톨프 퀴스틴 후작. 여행작가로 여행기 '1839년 러시아'가 유명하다. 파리 인근에 있는 그의 별장에 쇼팽은 자주 초대되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파리에 온 쇼팽은 퀴스틴(Astolphe Custine, 1790~1857) 후작과 자주 어울렸다. 작가였던 그는 쇼팽의 천재적 음악성과 섬세한 면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그가, 쇼팽에게 친구 이상의 친밀한 감정을 가졌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는 열렬한 쇼팽 숭배자였다.
 
후작은 쇼팽이 상드에 빠져드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고 상드에게 질투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가 동성연애자였다는데 주목한다. 그는 편지에서 쇼팽을 “내가 아는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여”라고 불렀다.
 
그의 편지에는 연애편지로 해석될 수도 있는 점이 다수 있다. 그에 대한 쇼팽의 답신은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퀴스틴의 동성애적 표현 뒤에는 상호 교감을 바탕에 두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동성애자와 자주 어울리는 동성의 친구는 동성애자로 의심될 여지가 다분하다.
 
퀴스틴 후작은 쇼팽을 묘사하는데 천사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는데, 상드도 쇼팽과 막 연애에 빠졌을 때 그를 ‘천사’라고 불렀다. 당시 천사라는 말은 파리의 길거리 은어로 동성애자를 의미했다고 한다. 평민들과도 잘 어울렸던 상드는 천사라고 용어의 의미를 알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쇼팽을 그렇게 부르곤 했다는 데서, 사람들은 상드가 쇼팽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쇼팽은 정말 동성애자였을까? 그 시대의 남자는 마음속 감정을 여자보다는 남자와 더 쉽게 나누었다고 한다. 독일 북쪽 출신과 슬라브 민족은 특히 그랬다고 한다. 티투스와의 편지에 동성애를 연상시키는 표현은 그러한 배경에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또 천사라는 단어가 은어(隱語)로서 어떤 의미를 갖든 무슨 상관인가? 그저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좋은 의미의 말로 받아들여도 퀴스틴 후작의 경우나 상드의 경우의 문맥에 있어서 전혀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퀴스틴 후작의 일방적 애정에도 불구하고 쇼팽이 동성애에 빠졌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건강한 쇼팽은 상드와 정상적인 남녀 관계에 빠졌었다. 쇼팽이 동성애자였다는 설은 지나친 가정이요 억측이다.
 
상드가 동성애자라는 비난은 그녀가 마리 도르발(Marie Dorval, 1798~1849)과 친할 때 생겨났다. 상드는 도르발과 각별한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그녀는 당대의 유명한 배우였고 미모나 재능 또한 뛰어나 상드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상드는 그녀에게서 강한 예술적 감성을 느꼈다.
 
마리 도르발. 유명한 여배우로서 조르주 상드의 친구였다. 1831년 경. 폴 들라로쉬의 석판화.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마리 도르발. 유명한 여배우로서 조르주 상드의 친구였다. 1831년 경. 폴 들라로쉬의 석판화.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도르발의 공연을 본 상드가 열정적인 찬사의 편지를 그녀에게 보낸 후 둘은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이 너무나도 가까웠기 때문에 둘이 동성애적 관계에 빠졌다는 소문이 파리 장안에 퍼졌다.
 
연극 평론가 귀스타브 플랑쉬(Gustave Planche)는 도르발과의 위험한 관계를 피하라고 상드에게 경고했고, 도르발의 연인이었던 알프레드 드 비니는 ‘못된 레즈비언’ 상드를 멀리하라며 도르발을 말렸다.
 
아름답고 육감적이었지만 자유로운 말투와 행동으로 인해 마리 도르발에게는 좋지 않은 세간의 평이 있었다. 또한 상드의 작품에는 여성의 성적 욕구에 대한 짙은 묘사가 있었다. 당시에 발표된 산문, ‘이름 없는 천사에게’는 관능적인 인용들이 있었고 소설 렐리아는 여성의 성적 욕구 충족을 논하고 있었다. 둘의 관계를 쉽게 확대 재생산시킬 수 있는 배경이었다.
 
상드는 “그녀에게 있는 모든 것, 모성, 예술, 우정, 헌신, 분노, 종교적 열망이 모두 열정적이었다”라고 했다. 상드의 소설, ‘렐리아’에 등장하는 열정적이고 외향적인 인물 퓔케리는 마리 도르발이 그 모델이었다. 실제로 두 사람이 교환하였던 편지에는 동성애적인 애정이 담긴 표현이 있다.
 
‘오늘 그대를 보지 못하는군요. 그래서 별로 행복하지 않아요. 월요일에는 아침이든 저녁이든, 극장에서든 당신의 침대에서든, 당신에게 달려가 키스할 거예요.’ (1833. 3. 18. 상드가 마리 도르발에게)


‘당신은 나쁜 사람이에요. 내 방에서 밤새도록 당신과 함께 있는 행복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 어제 모임에서 저녁 내내 당신을 보았어요. 눈은 안 마주쳤지만, 당신을 보고 있었어요. 당신은 튕기는 여자처럼 보였어요. 내일 아침에는 내가 당신을 보러 갈 거예요. 오늘 밤에는 난 집에 없어요. 내가 얼마나 얘기를 나누고 싶은지! 우리가 붙어 다니면 안 되나요? (위의 편지에 대한 마리 도르발의 답장)


조르주 상드. 사진. 1845년경. 작가 미상.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조르주 상드. 사진. 1845년경. 작가 미상. [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많은 말이 떠돌았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소문에 자극을 받았는지, 유명 작가 테오필 고티에르(Théophile Gautier)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는 레즈비언을 소재로 하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동성애에 관한 파리 사람들의 관심을 부채질하였다.
 
당시 세간에는, 상드가 자신이 쓴 작품(소설 80여 편, 희곡 35편)의 수만큼이나 염문을 뿌렸지만, 누구에게도 육체적인 만족을 얻지 못했다는 말도 떠돌았다. 사람들의 말은 상드를 만족하게 한 사람은 오직 여성인 도르발뿐이었다고까지 나아갔다.
 
도르발과 상드가 주고받은 편지에 들어있는 친밀한 애정표현들은 상드가 다른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때문에 상드가 도르발을 특별한 친구를 대한 것은 맞는 듯하다. 하지만 당시 여성 사이에 – 적어도 낭만적 친구 관계에서 -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인정될만한 수준이었다.
 
둘은 아주 친밀해서 서로의 남성관계에 대해서도 터놓고 얘기했었다. 만약 동성애자였다면, 상대의 남자관계에 대해서 질투를 했을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상드에게는 화려한 남성편력이 있다. 그리고 ‘교태를 부리고 아양을 떠는 여자와 있는 것보다 남자를 대하는 것이 편했다’고 했다. (본 시리즈 25편 참조)
 
성공한 상드와 도르발은 유명인이었고 두 여인의 행동양식이나 삶의 모습은 당시의 도덕 규범을 넘나들었다. 그런 그들을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은 많았다. 두 사람 관계를 동성애적 관계로 몰아갔던 세간의 뒷말은, 그 못마땅함이 시기와 질투로 발전했던 결과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의 우정은 끝까지 좋은 모습을 유지했다. 도르발은 50세에 무일푼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사망 소식은 제일 먼저 상드에게 전해졌다. 살기 어려워진 도르발의 남겨진 후손을 상드가 보살펴 주었다.
 
다음 편은 쇼팽의 고향 친구로서 그에게 헌신했지만, 자신의 일생은 불행했던 폰타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송동섭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송동섭 송동섭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필진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 한국인이 좋아하는 고전 음악가 쇼팽. 피아노 선율에 도시적 우수를 세련된 모습으로 담아낸 쇼팽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일생의 연인 상드와 다른 여러 주변 인물에 관련된 일화를 통해 낭만파시대의 여러 단면을 소개한다.

광고 닫기

미세먼지 심한 날엔? 먼지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