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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도와주는 의사, 이젠 우리도 필요하지 않을까

중앙일보 2019.08.30 09:00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41)

점차 근육이 마비되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글로리아 테일러는 자신이 선택한 시점에 생을 마감하기를 원했다. [사진 pxhere]

점차 근육이 마비되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글로리아 테일러는 자신이 선택한 시점에 생을 마감하기를 원했다. [사진 pxhere]

 
캐나다에 사는 글로리아 테일러는 루게릭병으로 알려진 근위축성 경화증 환자다. 이 질환에 걸리면 근육이 점차 약해지면서 걸을 수 없고 음식을 삼키고 말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마지막에는 호흡조차 힘들어지며 죽음을 맞게 된다. 테일러는 이런 과정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시점에 생을 마감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의사조력자살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총을 쏘는 것은 허용하면서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의사의 도움으로 약물을 투여받는 것은 왜 금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법에 호소하기로 했다. 법원에서 심리를 맡은 린 스미스 판사는 여러 가지 윤리적 문제를 검토했다. 캐나다뿐 아니고 이미 의사조력자살을 시행하고 있는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미국으로부터 온 전문가에게 다양한 의견을 구했다.
 

의사조력자살 허용한 캐나다

그는 적용 가능한 법률을 모두 검토하고 의사조력자살을 금지하는 형법조항은 장애인의 평등은 물론 삶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2012년 6월 환자의 삶이 윤리적 차원에서 자살을 허용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비참하고 환자 스스로 자살을 감행할 수 있는 경우 의사가 자살에 도움이 되는 도구를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015년 2월 캐나다 대법원은 만장일치의 판결로 의사조력자살의 금지는 캐나다의 권리헌장에 반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최종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2016년 캐나다 의회는 의사조력자살을 캐나다에서 합법화함으로써 재판부의 판단을 실행에 옮겼다. 이렇게 해서 캐나다는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나라가 되었다.
 
2015년 2월 캐나다 대법원이 의사조력자살의 금지는 캐나다의 권리헌장에 반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최종판결을 내리면서 캐나다는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나라가 됐다. [사진 pixabay]

2015년 2월 캐나다 대법원이 의사조력자살의 금지는 캐나다의 권리헌장에 반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최종판결을 내리면서 캐나다는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나라가 됐다. [사진 pixabay]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전례가 있다. 2008년 2월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김모 할머니가 조직검사 도중 과다출혈로 의식불명에 빠졌다. 이에 따라 병원은 연명의료를 시작했는데, 가족은 할머니의 의사에 반한다며 병원 측에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관련 법규가 없어 이를 거절했다. 결국 가족은 법에 호소하였다.
 
2009년 5월 대법원은 회복 불가능한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에 기초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를 허용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여 2016년 1월 국회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허용한 의사조력자살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다. 이에 관한 시민들의 의견은 어떠할까.
 
올해 2월 리서치 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을 조사했는데 80%가 안락사 허용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안락사를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중환자실에서 고통에 시달리며 쓸쓸히 죽음을 당하기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시기에 가족의 돌봄을 받으며 생을 마감하기를 원했다. 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사람의 생각은 어떨까.
 

말기 환자의 ‘좋은 죽음’이란

말기 환자들은 대부분 고통을 받으며 삶을 연장하기보다 주위에 폐를 끼치지 않고 가족의 곁에서 존엄하게 죽기를 원했다. [사진 pixabay]

말기 환자들은 대부분 고통을 받으며 삶을 연장하기보다 주위에 폐를 끼치지 않고 가족의 곁에서 존엄하게 죽기를 원했다. [사진 pixabay]

 
서울대 의대 윤영호 교수팀이 2016년 국내 말기 환자와 그 가족 등 4176명을 대상으로 ‘좋은 죽음’에 대해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다. 1위는 가족과 함께하며 맞는 죽음, 2위는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 3위는 주변 정리가 잘 마무리된 죽음이었다. 결국 고통을 받으며 삶을 연장하기보다 주위에 폐를 끼치지 않고 가족의 곁에서 존엄하게 죽기를 원했다. 어쩌면 의사조력자살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의사조력자살로 104세에 생을 마감한 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력을 포함해 내 모든 능력이 퇴화했습니다. 이제 집에 24시간 갇혀있거나 요양원에서 살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아요. 죽고 싶습니다. 슬프냐고요? 아뇨, 내가 슬픈 건, 죽어야 해서가 아니라 죽을 수 없어서입니다.”
 
죽는 순간의 마음가짐에 따라 그 사람의 내세가 결정된다는 설이 있다. 내세의 여부를 떠나 죽음의 순간은 당사자가 생을 통해 겪는 마지막 경험이자 신에게 귀의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이런 순간을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맞는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임종 시에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제는 우리도 의사조력자살을 검토할 때다.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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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기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필진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누구나 한번은 겪게 되는 죽음. 죽어가는 사람의 소원은 무엇일까. 의외로 돈 많이 벌거나 높은 지위 오르거나 하는 세속적인 것이 아니다. 생을 살며 ‘조금만 더’ 하며 미뤘던 작은 것을 이루는 것이라고. 은퇴 후 인생 2막에서 여가, 봉사 등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이 죽음도 편하다고 한다. 노후준비엔 죽음에 대비하는 과정도 포함해야 하는 이유다. 은퇴전문가가 죽음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방법과 알찬 은퇴 삶을 사는 노하우를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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