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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밀착해 춤추면 전기 오지 않나요? 묻는 사람들

중앙일보 2019.08.30 07:00

[더,오래] 강신영의 쉘 위 댄스(10)

유교 문화권에서는 남 앞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을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진 pxhere]

유교 문화권에서는 남 앞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을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진 pxhere]

 
경상도 출신인 지인에게 댄스를 권유했더니 빙긋이 웃으며 “열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어렵다” 또는 “마음이 여려서 못 한다”, “배울 열의가 없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댄스는 절대 어렵지 않으니 일단 배워보라는 둥 쓸데없는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알고 보니 “열없다”는 ‘겸연쩍고 쑥스럽다’는 뜻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여렵다”, “예렵다”는 “열없다”의 방언이다. “熱(열)이 없다”와는 전혀 관계없는 말인데 잘 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 문화권이라 남 앞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표정도 희로애락에 내색을 안 하는 것이 양반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잖지 못하게 몸을 움직여 춤을 춘다는 것은 거부감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춤을 추면 관심을 갖는다. 어디서나 가장 인기 있는 장기 자랑이 춤이다. TV 광고에서도 춤이 들어가면 가장 광고 효과가 높다고 한다. 걸그룹이 인기 있는 것은 노래 외에도 외모도 예쁘지만, 춤까지 잘 추기 때문이다.
 
이성과 춤을 춘다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배우다 보면 곧 익숙해진다. [사진 pexels]

이성과 춤을 춘다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배우다 보면 곧 익숙해진다. [사진 pexels]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과 붙잡고 춤을 춘다는 것은 물론 안 해본 사람은 용기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춤을 배우러 온 사람들은 다 같은 입장일 것이다. 내가 쑥스러우면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구나 혼자 추는 것도 아니고 커플이 되어 춤을 추자면 내가 틀리지 않아야 한다. 틀리면 민폐다. 틀리지 않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몸이 유연해서 적어도 흠은 잡히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을 배우든 처음에는 넘어야 할 난관이 있고 고비가 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같이 시작했다면 ‘도토리 키 재기’ 식으로 별 차이도 없다.
 
나중에 익숙하게 되면 “열없다”는 생각은 멀리 도망가고 없다. 커플댄스이므로 제대로 춤을 추려면 이성을 정석대로 붙잡아봐야 춤을 익힐 수 있다. 그쯤 되면 필요에 의해서라도 붙잡게 된다. 모던댄스에서는 회전 반경을 줄이고 동작을 매끈하게 하려면 둘이 몸을 어느 정도 밀착해야 한다.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출 때 상대를 ‘헬스 기구’라고 생각하고 춘다는 사람도 많다. 헬스장에 가서 내가 운동하는 데 필요한 운동 기구라는 것이다. 이성 파트너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댄스는 열없는 마음을 가지고 즐기는 것이 좋다, 그래야 긴장감도 생기고 춤 실력도 빨리 는다. 무미건조하게 ‘헬스 기구’로 보고 춤을 추는 사람은 운동 효과는 있겠지만 춤을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다. 노래방에 가도 남자끼리 가면 재미없지만 여자가 한 명이라도 끼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성에 대해 “열없는 마음”을 잃으면 사는 재미를 많이 잃은 사람이다.
 
“남사스럽다”라는 말은 가끔 들어봤다. ‘남에게서 조롱이나 비웃음을 받을 만한 데가 있다’는 뜻의 “남우세스럽다”가 표준어이다.
 
한때 인기를 끌던 KBS- TV '남자의 자격' 프로그램에 보면 이경규를 비롯하여 나이든 출연진들이 ‘소녀시대’ 콘서트에 가는 미션을 받았는데 같은 연예인이면서도 굉장히 쭈뼛거려 웃음을 자아냈다. 과연 나이 든 사람들이 인기 걸그룹 콘서트에 가는 일이 남우세스러운 일인지 생각해 봤다. 소위 ‘삼촌 부대’라고 나이든 팬클럽도 있기는 한데 이들도 역시 남들의 눈총도 있어서 쑥스러운 모양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을 너무 의식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내가 좋으면 아무리 걸그룹이라도 쑥스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손가락질하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 자기도 속으로는 걸그룹을 좋아하면서 실제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한다. 걸그룹과 같은 또래 사람들이 삼촌부대에게 손가락질하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가 지나치게 체면을 생각하기 때문에 이상해 보인다. “주책없다”라는 말도 체면을 손상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댄스스포츠의 세계에서는 이런 것들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심지어 소녀시대 또래를 파트너로 춤을 같이 춘다고 해서 남우세스럽다거나 쑥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댄스스포츠는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도 같이 파트너가 되어 출 수 있다. [사진 pxhere]

댄스스포츠는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도 같이 파트너가 되어 출 수 있다. [사진 pxhere]

 
낮 시간 댄스반에 가 보면 거의 주부들이 대부분이다. 가물에 콩 나듯 남성들이 있기는 하다. 대부분 은퇴하고 난 후의 지긋한 나이지만, 나이 때문에 쑥스러워할 일은 없다. 여자들이 다 쳐다보고 있는데 그 속에서 신경 쓰여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원래 댄스 자체가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므로 남이 보는 것을 꺼릴 필요는 없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댄스를 시작하면 내성적인 성격, 특히 이성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현상 등이 바로 고쳐진다고 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댄스스포츠를 공교육에 포함하자는 주장은 바로 이런 남우세스러운 문화를 바꾸는데 특별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댄스스포츠는 남녀가 우리처럼 유별하지 않은 서양의 문화가 알게 모르게 배어 있다. 댄스스포츠는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도 같이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출 수 있다.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고 오히려 보기에 좋다.
 
댄스스포츠에 처음 입문했을 때 아내와 같이 나갔기 때문에 다른 여자와 붙잡고 춤출 기회가 없었다. 몇 년 후 아내가 다른 운동을 하겠다며 그만두었을 때는 다른 여자와 붙잡고 춤을 추더라도 긴장감은 많이 퇴색해 있었다.
 
그러나 처음 배우는 여자들은 확실히 그랬다. 남녀가 붙잡을 때 전기가 온다는 사람도 있고 손을 바들바들 떠는 사람도 있었다. 모던댄스 홀드를 한다고 한 손은 맞잡고 한 손은 등 뒤로 손이 가면 소스라치듯 놀라는 여자도 있었다. 아예 등 뒤로는 손이 못 가게 하는 여자도 있다. 그러면 남자가 춤을 리드를 할 수 없다. 라틴댄스 할 때 아이 콘택트를 해야 한다며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 춤을 제대로 못 추고 눈길은 피하고 어깨를 움츠리는 여자도 있었다.
 
댄스스포츠는 커플댄스다. 남녀가 같이 추는 춤이다. 한 손만 서로 잡는 라틴댄스도 있고 왈츠처럼 시종일관 어느 정도 신체를 밀착해야 하는 춤도 있다. 춤 세계가 아닌 데서 처음 보는 여자에게 손을 잡거나 등 뒤로 손이 간다면 성추행에 해당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춤을 통해서라도 남녀 간에 그 정도의 스킨십은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그렇다고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강신영 댄스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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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영 강신영 댄스 칼럼니스트 필진

[강신영의 쉘 위 댄스] 댄스 동호인으로 시작해 30년간 댄스계에 몸담았다. 댄스에 대한 편견 때문에 외면하고 사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댄스스포츠 세계는 문화, 역사, 건강, 사교,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고 알수록 흥미롭다. 30년 댄스 인생에서 얻은 귀중한 지식과 경험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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