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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죽은 건축가를 위한 변론

중앙일보 2019.08.30 00:29 종합 31면 지면보기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히틀러의 건축가. 인류가 축적한 건축가 명단을 오명 순으로 배열하면 가장 앞자리를 다툴 이름. 알베르트 쉬페어. 나치 전당대회 스타디움을 설계했고 히틀러의 영광을 과시하는 제3제국의 수도 게르마니아의 계획자였다. 이전에 빵과 서커스의 제국이 있었다. 로마의 공화정이 제정으로 바뀌며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지게 되었다. 황제는 그런 시민들에게 때 맞춰 곡물·올리브기름·돼지고기를 안겨줬다. 시민들은 흡족히 먹고 공중목욕탕에서 오일마사지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시민들이 돼지가 아니기에 심심치 않을 대상과 도구도 필요했다.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극장·경기장들이 제국 곳곳에 건립되었다. 시민들은 과연 전차경주·검투사결투에 열광했다. 십자가에서 처형한 자가 부활했다고 믿는 신도들을 여기서 처형하기도 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건축가
고문의 동조자로 낙인 찍혀
단죄와 모독 사이의 경계엔
근거없는 상상과 의혹이

휘청거리는 역사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로마를 멸망시켰다는 오랑캐들이 로마를 자처했다. 심지어 처형당했던 신도들의 종교를 간판에 걸었다. 신성로마제국이었다.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니라고 볼테르가 조롱한 그 제국이다. 히틀러가 세 번째 로마를 내걸었다. 빵이 부족했기에 열광할 서커스가 더 중요했다. 쉬페어는 더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로마를 설계했다. 신전같은 건물로 총통을 신격화했다. 스타디움을 메운 건 지금 보면 광기지만 당시에는 열기였다.
 
역사가 증명하노니 건축은 권력자의 집권정당성 과시수단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빠지지 않는다. 과시가 더욱 절박했던 건 절치부심의 북쪽 경쟁자 때문이었다. 평양에 김일성광장·인민문화궁전이 건립되었다는 소식은 서울에 5·16광장·세종문화회관을 만들었다. 더 크고 화려하고 웅장하게 만들어라. 건축가는 도면을 그려라.
 
대통령 직선제와 서울올림픽 이후에야 과시의 경쟁이 종식되었다. 더 이상 북쪽은 남쪽의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았다. 우리의 경기장이 굳이 평양 5·1경기장보다 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도 벗어났다. 올림픽 주경기장의 건축가는 김수근이었다. 그는 올림픽 개막식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그런데 그의 사후 6개월에 대한민국을 바꾼 끔찍한 부고가 보도되었다. 권력이 고문으로 학생을 죽였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대한민국의 역사책은 학살과 고문의 흔적으로 여기저기가 얼룩져있다. 휘청거리는 역사의 가장 뜨거운 현장이 대한민국이다. 내란음모의 사형수가 결국 대통령에 선출된 국가다. 이후에야 정부는 학살과 고문을 사과했다. 남영동 대공분실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제 그 건물의 건축가가 광장에 세워졌다. 고문의 적극적인 동조자로 낙인 찍힌 채. 그가 또 김수근이다. 건축가에게 던지는 돌멩이는 이렇다. ‘여기서 고문이 자행되었다. 건축가는 효과적 고문을 위해 온갖 건축적 장치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고문의 적극적 동조자다.’
 
양지의 경쟁이 뜨겁고 절박해질수록 음지의 작업이 은밀하되 분주해진다. 은밀한 작업의 시설도 필요하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보안시설은 건축가에게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하고 도면을 요구한다. 그 건물에서 어떤 작업이 이루어지고 각 방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 설계한 이들에게 도면을 남겨주지도 않는다. 건물이 도면대로 시공되었는지 확인할 길도 없다. 건축가 작품 연보에도 못 넣는다.
 
고문이 대한민국 역사에서 합법이었던 적이 없다. 보안시설 설계의 경험이 조금만 있다면, 정부기관이 건축가에게 불법의 밀실을 요구하고 건축가가 적극 호응했다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 남영동 대공분실도 분명 도면을 놓고 시공하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건축가가 어두운 복도로 공포심 유발시키고 좁은 창문으로 탈출 막고 효과적 고문 도우려 욕조 설치했다는 건 상상이 그려낸 마귀의 형상이다.
 
김수근은 한국 건축계의 버팀목이고 문화계의 풍운아였다. 당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건축조형 감각의 소유자였다. 김수근이 없었으면 한국 현대건축의 유산목록은 훨씬 비루했을 것이다. 건축의 실천은 항상 자본을, 때로 권력을 필요로 한다. 건축가의 능력은 멋진 도면을 그리는 것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설계와 실행의 기회를 만들고 잡아야 한다. 김수근은 능력을 갖추고 기회를 잡은 걸출한 건축가였다. 권력 비호의 처세가였다고 그를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고문의 설계자였다는 비난은 죽은 건축가에 대한 모독이다.
 
‘너는 서울대생이다. 서울대는 빨갱이 집합소다. 그래서 너는 빨갱이가 틀림없다.’ ‘너는 건물을 설계했다. 그 건물에서 민주투사들을 고문했다. 따라서 너도 고문자다.’ 두 논법은 과연 얼마나 다른가. 신성로마제국은 마녀사냥터였다. 고문하여 자백 받고 광장에서 처형했다. 협조와 부역, 자선과 위선, 단죄와 보복 사이의 경계는 여전히 모호하다.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닌 대한민국을 지금 채우고 있는 매캐한 기운이 광기인지 열기인지 모를 일이다. 광장에 세운 건축가는 무슨 죄를 지은 걸까.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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