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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 논설위원이 간다] “실 같은 탄소섬유 6가닥이면 소나타도 들어올려”

중앙일보 2019.08.30 00:06 종합 26면 지면보기

관심 쏠리는 탄소섬유 생산현장 가보니

효성첨단소재 전주공장에서 완성된 탄소섬유를 기계로 검사하고 있다. [사진 효성첨단소재]

효성첨단소재 전주공장에서 완성된 탄소섬유를 기계로 검사하고 있다. [사진 효성첨단소재]

겉보기엔 보통의 포장용 테이프처럼 보였다. 거무스름한 색의 납작한 테이프가 두루마리에 감겨 있는 모양이 꼭 그랬다. 하지만 포장용 노끈이 아니라 탄소섬유 126가닥을 모아 놓은 프리프레그라는 원자재였다. 테이프 끝을 잡아보니 부스러지듯 수많은 가닥으로 나뉘었다. 탄소섬유가 생각보다 별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박전진 공장장의 설명이 기자를 놀라게 했다. “이 섬유 6가닥이면 쏘나타급 중형차를 하늘로 번쩍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 탄소섬유 한 가닥은 머리카락과 겨눌 만큼 두께가 얇다. 그런 얇은 실 6가닥이면 눈에 보이지도 않을 텐데 차를 들어 올린다고? 어안이 벙벙한 기자에게 박 공장장은 “그래서 탄소섬유가 ‘미래 산업의 쌀’이라고 불린다”며 “탄소섬유 한 가닥은 사실 머리카락 7분의 1 굵기의 가는 실 12000가닥이 꼬여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철 무게의 4분의 1, 강도는10배
국내선 효성이 2011년 독자 개발
철의 10배인 가격이 대중화 걸림돌
생태계 만들 정부보조금 등 필요

탄소섬유라는 소재가 주목받고 있다. 강도가 높고 가벼운 미래 첨단소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벌어지는 일본과의 경제전쟁이 탄소섬유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있다. 우주항공과 미래 자동차 등 첨단산업에 주로 쓰이는 전략물자여서다. 그래서 일본이 추가 보복에 나설 경우 항상 탄소섬유가 그 대상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지난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북 전주에 있는 효성첨단소재 공장을 방문한 것도 바로 탄소섬유 때문이다.
 
건물 길이가 540m에 이르는 효성첨단소재 전주공장. [사진 효성첨단소재]

건물 길이가 540m에 이르는 효성첨단소재 전주공장. [사진 효성첨단소재]

효성첨단소재가 운영하는 전주공장은 국내기업 중 유일하게 탄소섬유를 생산하는 곳이다. 지난 2011년 미국·일본·독일에 이어 세계 4번째로 독자 생산 기술을 개발하고 2013년 공장을 지었다. ‘기술 독립’, ‘소재 독립’이라는 정부 방침에 딱 맞는 상징이다. 최근엔 공장 옆 동산동이 여의동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동산동이 일본 강점기 미쓰비시 창업자의 아버지 이름을 딴 동산농사주식회사라는 이름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시대적 조류가 이 공장과 함께 하는 셈이다.
 
탄소섬유는 탄소로 만든 실이다. 기존 실에서 다른 원소를 없애고 탄소만 남기면 6각형 결정체들이 서로 밀접히 연결된 탄소섬유가 나온다. 탄소 함량이 92% 이상으로, 얇게 썬 다이아몬드와 다름없는 성질을 지닌다. 철에 비해 무게는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강도는 10배, 탄성은 7배다. 내부식성과 전도성·내열성도 매우 높다. 가볍고 튼튼해서 친환경적이고 녹이 슬지 않아 사용 기간도 길다.  
 
탄소섬유의 원료인 화학섬유(왼쪽)과 그 생산품인 프리프레그(가운데) 및 탄소섬유판(오른쪽).

탄소섬유의 원료인 화학섬유(왼쪽)과 그 생산품인 프리프레그(가운데) 및 탄소섬유판(오른쪽).

탄소섬유의 원리는 일찌감치 알려졌다. 100여 년 전 토머스 에디슨이 백열전구에 들어가는 필라멘트를 만들기 위해 대나무의 섬유를 태워 만든 게 최초였다. 이후 1960년대 일본기업들이 아크릴(폴리아크릴니트릴, PAN) 섬유와 피치 섬유를 가공한 탄소섬유 대량 추출법을 개발해 시장을 독점해왔다. 현재는 일본과 미국·독일 등이 만들고 있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하지만 원리가 간단하다고 쉽게 만들어지진 않는다. 원료인 아크릴수지를 중합체로 만들어 가늘고 길게 뽑아서 가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머리카락 굵기 7분의 1에 불과한 원사를 뽑아내 탄화 및 항산화 처리를 하고 한 가닥의 실로 만드는 데 총 2㎞에 달하는 공정이 필요하다. 1000도가 넘는 고온에서 가열하면서도 끊이지 않고 뽑혀 나와야 한다. 효성첨단섬유 공장이 직선거리로 540m에 이를 만큼 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 공장장은 “탄소섬유 생산에는 섬유업체의 기술력과 생산 노하우는 물론 첨단업체의 고도의 기술력이 함께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섬유업체인 효성이 새로운 분야인 탄소섬유 개발에 뛰어들어 성공한 것에는 오랜 기술 경험이 크게 기여했다. 효성은 1990년대 세계 4번째로 스판덱스를 개발해 세계 1위 상품으로 키운 바 있다. 타이어 코드 등 다른 섬유 네 곳에서도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본인 스스로 공학을 전공한 조석래 명예회장의 경영철학도 기술이다. 그는 평소 “오직 기술로만 살아남을 수 있다. 기술을 앞세워 영업하라”고 강조하고 임원의 70%를 이공계 졸업자로 채울 만큼 기술 지향적이다. 박 공장장은 “이런 회사 분위기가 진취적이고 열정적으로 신기술 개발에 나서 4년 만에 끝내는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같은 사양의 섬유를 일본업체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며 “연 2000t의 생산량 90%를 외국에 수출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효성의 목표는 앞으로 1조원을 투자해 전주공장의 생산량을 2만4000t까지 끌어올려 세계 3위의 탄소섬유 회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서 아직 탄소섬유를 보긴 어렵다. 항공기 동체 등 군사용으로 많이 쓰이지만 일상용품에선 일부 골프채 등 고가제품에 들어갈 뿐이다. 가격이 철의 10배, 알루미늄의 4배에 달할 만큼 비싸서다. 탄소섬유 자체도 비싸지만 이를 가공하는 데엔 비용이 더 든다. 아직 탄소섬유만으로 물건을 만들 수 없고 철이나 수지 등 다른 재료에 섞어 써야 한다. 공장 관계자는 “탄소섬유 자체의 가격이 1이라면 중간품은 10, 최종 완성품은 100인 현실을 극복하는 게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탄소섬유는 특성상 가공비와 인건비가 탄소섬유 값의 몇배로 들 수밖에 없다. 탄소섬유가 항공 등 첨단산업에서 주로 쓰이는 이유도 비용을 감내할 수 있는 분야여서다. 국내 소요량이 월 300t 정도로 미미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탄소융합기술원 연구동에서 자동차용 탄소섬유 부품을 시험생산하고 있다. [사진 효성첨단소재]

한국탄소융합기술원 연구동에서 자동차용 탄소섬유 부품을 시험생산하고 있다. [사진 효성첨단소재]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효성첨단소재 옆에 있는 전군가도를 가로질렀다. 팔복동 공단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탄소융합기술원을 찾아갔다. 기술원은 효성과 탄소섬유를 공동개발한 전주시가 탄소산업 활성화를 위해 설립한 기관이다. 원장은 효성의 탄소산업 담당이자 첫 공장장을 지낸 방윤혁씨가 맡고 있다. 건물로 들어설 때 현관 옆에 있는 의자에 시선이 쏠렸다. 탄소섬유 의자라고 쓰여 있었다. 앉아보니 의자가 따뜻했다. 바로 옆에 있는 태양광발전기에서 나온 전류를 이용해 탄소섬유로 난방하는 의자였다. 탄소섬유가 얼마나 일상과 가까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기술원의 방근배 경영기획본부장은 “탄소섬유를 대량생산하면 얼마나 편리해질 수 있는지를 방문자들에게 눈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원이 운영하는 연구동을 찾았다. 탄소섬유 생산과 후가공에 필요한 여러 기계가 보였다. 탄소섬유로 만든 자동차 트렁크 도어와 엔진커버 등이 보였다. 자동차 회사와 손잡고 탄소섬유의 효율적 이용법을 연구하는 곳이다. 만들어진 부품들을 보니 탄소섬유의 활용법은 무궁무진했다. 전주시도 이 가능성에 주목해 효성첨단소재 공장 옆 20만평의 부지에 100여개의 탄소섬유 가공회사들을 입주시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방 본부장은 “사회에 잠재된 수요를 실제 생산과 연결하려면 친환경 보조금 등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며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정부 차원의 육성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나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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