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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513.5조 '초수퍼 예산'…3년새 113조원 늘렸다

중앙일보 2019.08.29 09:00
내년도 정부 살림이 510조원이 넘는 ‘역대급’ 예산으로 편성된다. 이에 따라 내년 통합재정수지는 2015년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국세 수입이 10년 만에 감소하는 반면, 재정지출은 급격히 늘면서 내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0%에 육박하고, 2023년에는 46.4%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내수가 여전히 부진한 가운데, 미ㆍ중 무역전쟁과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확장 재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란 게 정부 설명이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연평균 10.4%에 달했던 세수 증가세가 내년에는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상황에서 ‘실탄’ 마련 및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가 예산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가 예산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정부는 29일 국무회의를 열고 총 513조5000억원 규모의 2020년 예산안을 확정했다. 이는 올해 본예산(469조6000억원)보다 43조9000억원(9.3%)이나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다. 9.7% 증액했던 올해에 이어 2년 연속 9%대의 ‘초수퍼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다. 정부 예산은 2011년(309조1000억원)에 300조원을 넘어선 뒤 2017년(400조5000억원)에 400조원을 돌파했다. 결국 현 정부 출범 이후 불과 3년 만에 예산이 113조원 늘면서 500조원대마저 돌파하는 셈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활력 회복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를 담아 감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확장적 기조로 편성했다”며 “일시적인 재정적자 확대를 감내하면서라도 궁극적으로‘적극재정→경제성장→세수증대’의 선순환 구조를 가져오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은 예년과 비교할 때 일본의 경제 보복, 미ㆍ중 무역분쟁 등 대외여건 악화에 따라 위축된 경기활력을 제고하는 데 좀 더 무게를 둔 게 특징이다.
 
창업을 촉진하고 혁신적인 유니콘기업을 키우기 위한 ‘제2 벤처 붐 확산’을 위해 지원 예산을 전년보다 50% 늘린 5조5000억원으로 책정했다. 기업들이 고위험 수출시장을 개척하고, 설비투자ㆍ경영안정 등에 필요한 자금을 제때 조달할 수 있도록 정책자금도 늘린다. 2022년까지 스마트공장 3만개 보급, 스마트 산단 10개소 조성 등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예산도 증액했다. 이처럼 민간부문의 활력을 높이기 위한 산업ㆍ중소기업ㆍ에너지 분야 예산은 12개 예산 분야 중 가장 많은 27.5%가 늘어난 23조9000억원이다.
2020 분야별 예산.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20 분야별 예산.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래 성장동력도 확충한다. 제조업 혁신을 이끌고 미래 먹거리가 될 사업을 키우기 위해 데이터ㆍ5G네트워크ㆍ인공지능ㆍ시스템반도체ㆍ바이오헬스ㆍ미래차 등 첨단 기술 분야에 4조7000억원을 편성했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으로는 최근 10년 래 가장 큰 폭인 17.3%를 증액해 24조1000억원을 책정했다. 특히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맞서 소재ㆍ부품ㆍ장비산업의 자립화에 2조1000억원을 투자한다. 올해의 2배 규모다.  
 

보건·복지·노동 예산 10년 새 27.7%→35.4%

하지만 가장 많이 신경을 쓴 곳은 여전히 ‘소득주도성장’과 관련된 분야다. 내년도 예산 가운데 보건·복지·노동 분야의 예산은 181조6000억원으로 올해(161조원)보다 20조원 이상 늘어난다. 전체 늘어나는 예산 증가분 가운데 절반(46.9%)가량이 보건·복지·노동를 아우르는 '광의의 복지'에 투입되는 셈이다. 이 가운데 일자리 예산은 올해 21조2000억원에서 내년 25조8000억원으로 4조5000억원 늘어난다. 사상 최대로, 2년 연속 20%대로 늘었다. 노인 일자리 등 재정지원 일자리 95만5000개를 만들고, 고용장려금과 창업지원, 직업훈련을 통해 기업 등에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나게 하는 게 목표다.
 
이에 따라 전체 예산에서 보건·복지·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27.7%에서 2019년 34.3%로 늘어난 데 이어 내년 35.4%로 처음으로 35%를 웃돌게 된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추가로 크게 늘어나는 복지 사업은 없지만, 기존 복지정책을 지속하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 예산이 든다”고 말했다.
 
당초 정부는 내년도 예산 규모를 올해 본예산(469조6000억원)에 비해 7.3% 늘어난 504조6000억원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기존 방침에 일본의 경제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소재ㆍ부품 경쟁력 강화 및 R&D 예산 등이 추가되면서 9조원을 더 늘린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런 확장 재정을 뒷받침해줄 재원이 관건이다. 세수 증가율은 최근 3년간 연평균 10.4% 증가하며 재정확대를 뒷받침했지만, 올해부터 적신호가 켜졌다. 본예산 기준으로 2010년 이후 계속 늘었던 국세수입은 올해 294조7919억원으로 0.42% 증가하는 데 그치고, 내년에는 292조391억원으로 0.9% 감소해 10년 만에 전년 대비 마이너스로 전환된다. 기업들이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전체 세수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법인세가 18.7%나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통합재정수지 5년 만에 적자, GDP 대비 부채비율 40% 육박

이에 내년 통합재정수지는 2015년(2000억 원 적자)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만든 ‘2018~2022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는 내년 5000억원 적자를 예상했지만, 이번 ‘2019~202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는 내년 31조5000억원 적자로 적자 규모가 크게 불었다. 통합재정수지는 이후 2021년 -41조3000억원, 2022년 -46조1000억원, 2023년 -49조6000억원 등 적자 규모는 계속 커진다. 통합재정수지는 일반회계ㆍ특별회계 및 기금을 모두 포괄하는 수치로, 중앙정부의 총수입과 총지출의 차이를 뜻한다.
자료: 기획재정부

자료: 기획재정부

이처럼 재정적자가 급격히 확대하면 국가 부채가 늘어나 재정건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 실제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올해 37.1%에서 내년 39.8%로 늘어나고 2023년까지 46.4%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세입 부족을 보전하기 위한 적자 국채 발행 규모도 올해 33조8000억원에서 내년 60조2000억원으로 갑절 가까이 늘어난다. 역대 최대 규모다. 상대적으로 넉넉한 나라 곳간은 무역수지 흑자와 더불어 우리나라가 외부 충격을 극복하는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앞으로 빠른 고령화에 따라 복지비용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점에서 불안감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확장 재정의 효과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전례 없이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고용지표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풀기 위해 지난 10년간 100조가 넘는 예산을 쏟아부었는데도 출산율은 사상 최저로 떨어진 것도 비슷하다. 정부·여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용 퍼주기 예산’을 짜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통계청장을 역임한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지난 2분기 GDP에서 민간의 성장기여도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는데, 이는 정부 재정지출의 성장 견인 효과가 기대만큼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며 "근본적인 경제정책 전환이 없다 보니, 민간부문 경제 활력이 둔화하면서 정부 재정 의존도만 높아지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정부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40%를 밑돌고 있어 재정건정성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 규제 등 악재가 겹친 상황에선 과감한 재정정책을 펼쳐 위기를 탈출하는 게 장기적으로 재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홍 부총리는 "내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인 39.8%는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결코 우려할 수준이 아니고 양호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내년에 정부의 확장 재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에는 수긍하면서도,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규모 증가 폭이 빠르게 늘어나는 등 재정건전성 악화에는 우려를 표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수가 주춤하는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을 고려 않고 이정도 속도의 확장 재정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미래세대 부담을 늘릴 수 있다”며 “선심성 재정 지출을 억제하고 민간의 활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제 정책을 전환하는 것이 병행돼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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