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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진대제 前 삼성전자 사장이 말하는 삼성의 리스크과 기회

중앙일보 2019.08.28 16:18
아마존·알리바바처럼 소프트웨어 기반 플랫폼 사업 어려워
웬만한 대책 다 있어… 가만두면 삼성전자는 알아서 잘할 것

커버 스토리 - 단독 인터뷰
“덩치가 크다 보니 변화에 둔감할 수도”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세상은 바뀌는데 삼성은 적응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세상은 바뀌는데 삼성은 적응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1994년 11월 충남 아산의 도고 파라다이스 호텔. 전략회의를 주재하게 될 진대제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장(전무)은 간부들에게 뜬금없는 숙제를 냈다.
 
“이번 전략회의는 보통 때와 달리 위기 시나리오를 설정해서 밤새도록 토론하는 형식으로 하겠소. 모두 삼성 반도체가 망하는 위기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전략회의 전에 가져오시오.” 잘 나가는 삼성 반도체가 망하는 시나리오라니, 전략기획 부서 간부 5명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며칠 뒤 진 부장은 ‘삼성 반도체가 망하는 두 가지 시나리오’라는 주제로 전략회의를 열었다. 첫째, 미국의 반도체 강자인 인텔이 메모리 사업에 뛰어든다. 둘째, 일본이 한국 견제를 위해 반도체 장비의 한국 수출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_[열정을 경영하라](진대제, 2006) 본문 중 인용 월간중앙이 25년 전 ‘삼성 반도체가 망하는 시나리오’를 주제로 회의를 주재했던 진대제(67) 전 삼성전자 사장(현 투자 회사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회장)을 만났다. 진 회장은 8월 13일 서울 양재동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사옥 5층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1등 기업’ 삼성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했다.
 
진 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를 거쳐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1호 국비 유학생’이다. 이후 미국 휴렛팩커드, IBM 연구원을 거쳐 1985년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겼다.
 
20년 가까이 삼성전자에서 일하며 디지털미디어 총괄사장에까지 올랐던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2006년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했다. 당시 삼성전자에서 70억원가량의 스톡옵션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를 포기하고 입각(入閣)했다.
 
 

한·일 관계, 미래 보고 풀어 나가야

평택 반도체 공장과 인접한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15라인의 내부 전경. / 사진: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과 인접한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 15라인의 내부 전경. / 사진:삼성전자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한국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일본의 이 같은 조치의 배경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크게 봐서 두 가지 측면이 있겠죠. 첫째, 한·일 관계의 과거사, 즉 1965년 한·일 협정 당시 위안부나 강제징용에 관한 보상이 끝난 거냐, 끝나지 않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국가적 차원의 보상은 끝났는데 개인적 피해에 대한 보상은 덜 된 것 아니냐는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둘째, 한국이 잘나가니까 일본의 견제심리가 작용한 것 아니냐, 다시 말해 한국 경제의 급소를 누르는 것이란 해석도 있을 겁니다.
 
한국 경제를 견제해 보자는 차원에서 지금의 액션이 나왔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큰 틀에서 외교 관계, 그리고 그동안 북핵 문제와 관련된 거라든가 또는 한·일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 경제적 문제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일본이 경제 전쟁을 하자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가적 차원에서 선린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식민지 지배 이후로 보면 한·일 양국의 관계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공산주의에 맞서 싸워야 하는 가까운 나라죠. 기술적으로 일본의 도움을 받아서 지금의 한국이 있다는 말도 맞는 얘기입니다. 일본은 때로는 경쟁과 협력, 문화적 교류가 있었던 좋은 이웃입니다. 물론 불행한 과거로 인해 소원(疏遠)했을 때도 있었지만, 미래를 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게 맞습니다.”
 
일본 경제산업성(省)은 7월 4일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트, 불화수소)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셋 중 어떤 게 우리 반도체 산업에 가장 큰 충격파를 미칠까요?
 
“충격이 크다는 건 우리가 쉽게 대체할 수 없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대체해도 큰 위험이 없다면 문제가 안 되겠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포토 레지스트가 가장 타격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포토 레지스트는 빛이 닿는 부분과 닿지 않는 부분을 구분해 주는 감광(感光) 물질로 20여 년 전부터 국산화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다만 반도체 기술이 현재 10나노 이하의 초미세 공정으로 빠르게 발전한 데 반해 국산 포토레지스트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어요. 현재 아주 짧은 파장의 빛으로 감광하는 분야에서는 국산화된 게 전무합니다(2017년 기준 국내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18.2%, 소재 국산화율은 50.3%).”
 
그렇다면 나머지 둘은 대체가 가능하단 겁니까?
 
“반도체 웨이퍼(실리콘 기판)에서 이물질을 제거하는 데 쓰이는 불화수소나 (스마트폰 등의) 화면을 보호하는 필름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조금 질이 떨어지는 걸 쓰더라도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도체 회로를 인쇄할 때 쓰는 감광액인) 포토 레지스트는 없으면 안 되죠. 포토 레지스트는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그 노하우가 대단한 겁니다. 그런데 포토 레지스트는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대체가 안 됩니다. 더구나 장기 보관도 안 돼서 (삼성전자도) 석 달 치 정도의 재고만 확보하고 있을 겁니다. 그만큼 급하니까 이재용 부회장이 일본으로 달려간 것이겠죠. 사실 기업 입장에서야 자사의 생산품을 비싸게 팔면 좋은 일인데 왜 팔지 않으려 하겠습니까?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큰 고객인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달려오기까지 했는데 말이에요. 이 제품을 생산하는 일본 기업(JSR)은 정부에 팔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을 테고, 그래서 일본 정부가 수출을 허가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이) 팔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팔되 절차를 까다롭게 하겠다는 거죠.”
 
[산케이신문]은 8월 7일 ‘한국으로부터 수출 규제는 없다’는 제목으로 수출 규제 품목 중 하나인 포토 레지스트 1건에 대한 계약 수출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수출 허가를 받은 업체가 어디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삼성전자에 수출하는 포토 레지스트가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일본의 추가 보복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일 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는다면, 일본에 진짜 전쟁을 치러야 할 만큼의 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러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뺐다는 게 수출 절차를 까다롭게 하겠다는 거지 팔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정부도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등 반격에 나섰습니다.
 
“상징적인 조치겠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우리가 손실을 입히긴 어렵지 않을까요? 또 정치적 의미에서는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기업적 측면에서 보면 굳이 그런 각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에 있을지 모를) 금융위기 같은 걸 생각하더라도 일본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한국은 지정학적 문제 속에서 국가적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컨트리 리스크라고 하는데 이게 주가에도 반영됩니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의 국내 주가는 주당 4만여원쯤 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5만~6만원쯤 합니다. 왜 차이가 날까요? 한국의 위험요소가 주가에도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컨트리 리스크 같은 문제에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 겁니다.”
 
 

지배구조 안정돼야 자유로운 경영 가능

8월 2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딜라이트 홍보관에서 관람객들이 반도체 관련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8월 2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딜라이트 홍보관에서 관람객들이 반도체 관련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8월 12일 일본을 한국의 화이트리스트에 해당하는 전략물자 수출입 고시상 ‘가’지역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에 대한 ‘상응조치’가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상 무역분야에서 일본의 조치에 대한 맞대응으로 풀이된다.
 
우리는 일본의 경제 보복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까요?
 
“정치권 얘기가 다 맞습니다.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R&D(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우리 나름대로 부품·소재 조달하고…. 그런데 열심히 해도 잘 안 되는 것도 꽤 많습니다. 안 되는 것은 국제관계를 원만하게 풀어 나감으로써 해결해야 합니다. 특정 제품을 우리가 모두 개발하자고 할 게 아니라 상대 국가가 우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소재나 장비를 만들어서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거나 다른 나라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건 조용히 하면 될 일입니다.
 
중국은 반도체 물량의 70~80%를 한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PC나 휴대폰의 60~70%를 만드는 나라인데도 그렇습니다. 중국은 미국 의존에서 탈피하기 위해 3대 정책까지 세워 야심 차게 추진했습니다. 첫째, 통신장비 분야에서 미국 의존도를 낮추고자 화웨이를 만들었어요. 또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도 안간힘을 썼어요. 그래서 중국이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해방됐나요? 아직도 안 되고 있어요. 저 거대한 중국도 안 되잖아요? 우리가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모두 없앤다고요? 현실적으로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미·중 무역전쟁 그리고 한·일 경제전쟁 소용돌이 속에서 삼성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삼성전자 CEO 출신으로서 삼성전자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이 시점에서 삼성은 뭘 고민할까요? 삼성이 일본 내 한 회사에서만 포토 레지스트를 구입할까요? 만일 그 회사에 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죠? 삼성은 멀티 소스(Multi Source)를 확보합니다. 그 부품이나 소재가 일본에만 있다 하더라도 일본 내에서 복수의 회사를 확보하려고 노력한다는 겁니다. 그게 안 되면 반드시 필요한 회사를 아예 사 버리거나, 한국에 들어와서 생산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면 왜 포토레지스트는 그렇게 안 했을까요? 연간 (수입량이) 1000억원어치 정도밖에 안 되고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공급이 원활했으니까요.
 
 

오너 부재 시 큰 결정 어려워져

2004년 9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오른쪽), 노성대 방송위원장과 함께 입체영상 시스템을 체험하고 있다.

2004년 9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오른쪽), 노성대 방송위원장과 함께 입체영상 시스템을 체험하고 있다.

삼성전자(수원) 근처에서는 웬만한 장비나 재료가 다 생산됩니다. 삼성전자는 1년 매출이 240조원쯤 되는 회사입니다. 그중 해외 매출 비중이 86% 정도이고요. 그러니 삼성전자가 요청하면 (외국 기업들도) 다 (삼성전자) 옆으로 와서 부품을 생산하는 거죠. 만일 한국으로 들어오는 게 여의치 않다면 합자회사를 설립해서 국내 투자를 하게 합니다. 이처럼 온갖 대책이 있어요. 가만두면 삼성전자는 알아서 잘할 겁니다. 다만 가슴 아픈 점은 지배구조가 도전을 받는다는 거죠. 지배구조가 안정돼야 자유로운 경영을 할 수 있습니다.”
 
오너 부재 시 기업은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됩니까?
 
“사실 전문 경영인은 길게 보고 결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어요. 1993~1994년쯤이었는데 삼성이 TI(텍사스인스트루먼트)라는 기업과의 특허 소송에서 패하는 바람에 10년간 1조원의 특허료를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했는데 돌아오는 답이 ‘TI 그거 얼마면 살 수 있나’였습니다. 관점과 생각이 다른 겁니다. 전문 경영인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하죠. 제가 삼성전자 대표이사이던 2002년의 일입니다. 수원에 사무실을 짓기로 했는데 처음에는 규모를 9층이나 10층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큰마음 먹고 25층짜리를 짓기로 하고 이건희 회장에게 조감도를 보여 드렸습니다.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이 회장이 수원 삼성 블루윙스 축구장을 가리키시며 ‘저기에 두 개를 짓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25층짜리 두 개 규모의 R&D 센터를 짓게 된 것입니다. 물론 오너라고 해서 혼자서 전횡한다면 부작용이 있겠지만, 이처럼 장점도 큽니다. 의사 결정 능력이나 자금조달 능력의 차원이 달라요.”
 
일본이 노린 급소 중 하나가 삼성전자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아닐 겁니다. 아니, 노린다고 노려집니까? 사실 삼성전자와 경쟁할 만한 일본 기업이 별로 없어요. 삼성전자 하나만 해도 일본에서 가장 큰 회사 몇 개 합친 것만 한데 노린다고 노려지겠습니까? 과도한 해석입니다.”
 
일부 외신은 “한국산 반도체가 장착된 중국산 스마트폰에 미국의 추가 관세가 부과되면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보기도 하는데요.
 
“중국 기업에서 삼성 반도체를 사 가지 못하니까 삼성이 손해 볼 거라는 얘기인데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요? 만일 중국 기업인 샤오미나 화웨이가 미국으로 스마트폰을 수출하지 못한다면 어느 회사 제품이 많이 팔릴까요? 삼성 아닐까요? 중국에 팔아야 할 반도체는 삼성 스마트폰에 넣으면 되겠죠. 중국 제품이 덜 팔리면 삼성전자가 반사이익을 누리게 될 겁니다.”
 
 

늘 긴장하고 수시 점검하는 게 기업문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진대제 삼성전자 사장이 2001년 10월 1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디지털 홈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한 뒤 악수하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진대제 삼성전자 사장이 2001년 10월 1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디지털 홈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한 뒤 악수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중 무역분쟁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삼성전자가 미·중 무역전쟁의 십자 포화 속에서 길을 헤쳐 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삼성전자가 생산·소비 부문에서 이미 시장 다변화 대응에 나섰기에 큰 리스크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산 반도체가 장착된 중국 스마트폰에 추가 관세가 부과될 경우 한국 기업들의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2분기 연속 6조원대(6조2000억원, 6조6000억원)에 그쳤습니다. 또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3조4000억원)은 2016년 3분기 이후 최저입니다.
 
“분기당 15조원, 16조원은 사실 과도한 이익입니다. 그런 이익을 계속 낼 수 있도록 경쟁사들이 가만있지 않아요. 반도체 같은 것도 너무 많은 이익을 내면 중국에서 악착같이 덤벼들려 합니다. 적정한 이익이라는 게 중요합니다. 삼성전자처럼 거대한 회사의 이익률이 10%가 넘는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일본 기업 중에는 매출은 100조원인데 영업이익은 적자인 경우도 있어요.
 
PER(주가수익비율, Price earning ratio)이 얼마인가를 따져 볼 필요도 있어요. 국내에서는 주가가 영업이익의 10~15배면 우량 기업인 데 반해 미국 애플 같은 기업의 경우는 20~30배쯤 됩니다. 애플이 삼성보다 작은 기업인데도 PER은 훨씬 더 큰 거죠. 이 차이 역시 컨트리 리스크가 원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위기라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도 얼마 전 계열사 사장단과의 자리에서 “10년 뒤를 장담 못한다”고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세상은 바뀌는데 삼성은 적응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유는 역설적으로 너무 잘하기 때문이죠.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그룹이라는 총체적인 틀 안에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삼성전자를 삼성그룹에서 떼낼 수 있을까요? 삼성전자가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회사는 못 돼는 이유입니다. 요즘에 생산은 유통 중심으로 갑니다. 아마존이나 알리바바가 다 그래요.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플랫폼 사업을 합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휴대폰·가전제품 같은 제조업 형태로 구성돼 있습니다. 여기에다 어떻게 유통을 붙일 수 있을까요? 앞으로 전기자동차·드론·로봇 같은 쪽으로 사업 방향이 변해 갈 텐데 삼성전자는 워낙 덩치가 크니까 옮겨가기가 쉽지 않을 수 있어요. 다시 말해 너무 크다 보니 세상의 변화를 못 쫓아갈 수도 있습니다. 변화에 둔감할 수 있다는 말이죠.”
 
이재용 부회장은 얼마 전 사장단 회의에서 “긴장하되 두려워 말고 위기를 극복하자”고 당부했습니다.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일까요?
 
“(삼성에 있을 때) 맨날 들었던 말이에요(웃음). 삼성의 기업문화는 이병철 회장 때부터 늘 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수시로 전화하고 수시로 점검했습니다. 이건희 회장도 마찬가지였고요. 이건희 회장은 어마어마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늘 사장들을 긴장시켰습니다. 불시에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라고 묻곤 했습니다. 때로는 선문답 같은 질문도 있었어요. 한번은 사장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이 ‘도쿄 시내에 까마귀는 몇 마리나 되지?’라고 물었어요. 이병철 회장은 에버랜드에서 ‘돼지 한 마리 원가는 얼마야?’라고 물은 적이 있고요. 이건희 회장은 회장에 취임하던 1987년부터 디자인을 강조했습니다. ‘앞으로는 가전제품이든 아파트든 디자인의 시대가 온다’면서 디자인에 신경을 썼습니다. 이 회장은 1988년 초에 연봉 100만 달러짜리 이탈리아 디자이너를 데려오라고도 하셨죠. 시간이 지나고 보니 디자인이 그만큼 중요하더라고요. 오늘날 삼성 휴대폰 디자인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겁니다.”
 
 

정부·고객과의 관계도 모두 ‘현장’

일각에서는 삼성이 공격 경영과 현장 경영을 통해 위기를 정면돌파해 나갈 것으로 전망합니다.
 
“손실에는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손실, 함으로써 생기는 손실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삼성에서는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손실, 즉 기회손실을 더 나쁘게 생각합니다. 해서 생기는 손실은 배우는 거라도 있잖아요? 그래서 인수합병(M&A)도, 투자도, 스카우트도 공격적으로 합니다. 인텔 같은 세계 일류 회사도 스탠퍼드대에 가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 공격적인 사람을 선호합니다. 또 1년에 5% 정도 공격적(적극적) 성향이 부족한 사람을 내보냅니다. 미국 회사들은 대체로 그렇습니다. 삼성도 마찬가지예요. 적극성을 중시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다 삼성 계열사 사장이 됩니다. 현장 경영이라는 건 실무를 잘 알아야 가능합니다. 단순히 공장에 가는 게 현장이 아니고 정부나 관계 고객과의 관계도 다 현장입니다.”
 
삼성이 외치는 초격차·초일류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까요?
 
“선택이 아닌 의무죠. 지속해야만 합니다. 반도체 분야에만 박사가 1000명, 삼성전자 전체로 보면 3000명 있습니다. 제 생각엔 기술적인 측면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삼성의 기술력·경영능력·사업분야 등은 불확실성이 크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이나 유통이 제조업을 장악하는 전 세계적 흐름이나 시대적 변화에 둔감하게 대응할 가능성, 다시 말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할 가능성은 경계해야 합니다.”
 
삼성전자와 한국 경제에 대한 조언이 있으시다면.
 
“삼성전자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그런데 한국 경제는 정말 걱정입니다. 앞으로 10년 뒤에 뭘 먹고살 건가요? 10년 뒤에 먹고살 게 걱정입니다. 앞으로 국내에 완성품을 만드는 회사가 얼마나 될까요? 이미 휴대폰이나 TV는 아니잖아요. 국내에서는 자동차 완성품도 앞으로 없어질 겁니다. 사실 일본도 비슷해요.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생산하지 않잖아요? 대신 일본은 20년간 절치부심하며 포토 레지스트 같은 부품이나 소재 개발에 전력투구했습니다. 장인정신·독점욕을 발휘하는 분야가 부품이나 소재이니 일본과는 잘 맞죠. 일본은 그런 거라도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해요. 정부가 고민해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플랫폼 산업으로 틀이 바뀌면 맥을 못 출 수도 있어요.
 
제조업이 유통업에 종속되면 우리는 뭘 해야 할까요? 의료·관광 플랫폼을 구축하고 휴대폰이나 자동차의 핵심 부품 사업을 강화해야겠죠. 우리나라의 로봇 사용 비율이 이미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하잖아요? 앞으로는 기계적이고 조립적인 일보다 디자인이나 기획을 잘하는 사람들이 각광받게 될 겁니다.”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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