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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쓸모가 없다'는 고약한 상실감을 이기려면

중앙일보 2019.08.28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30) 

 
알 수 없는 또 다른 나의 미래가
나를 더욱 더 힘들게 하지만
니가 있다는 것이 나를 존재하게 해
니가 있어 나는 살 수 있는 거야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읊조리게 되는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다. 나는 니가 있다는 것, 니가 있어의 `니’가를 `나’로 개사해 읊조린다. 존재의 이유에서 `니’는 `나’이자 내 `존재감’으로 받아들이면서다. 왜 나이 들어가면서 그 수많은 노래 가운데 존재의 이유를 무의식적으로 부를까? 그건 과거보다 나 자신의 존재감이 점점 희박해질까 두려워서가 아닐까 한다.
 

많은 사람이 은퇴 이후 존재감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에서 오는 자괴감에 한탄을 한다. [사진 한익종]

 
실제로 은퇴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토로하는 내용이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한탄이다. 왕년엔 내가 어떠했는데, 예전에는 한 가닥했는데, 요즘 들어서는 와이프나 애들이 나를 우습게 여기는 것 같아, 갓끈 떨어지니 찾아오는 이들도 없어 외로워진다는 등 결국은 존재감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에서 오는 자괴감이다.
 
사람은 존재의 이유를 느낌으로써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존재의 이유를 `나’ 외적인 환경에 비추어 비교함으로써 갈등을 겪곤 한다.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인데 자꾸 과거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 자존감을 낮춘다. 그렇게 되면 소외감과 자괴감에 빠져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가장이 실직 후 몇 달 뒤 아내와 딸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 발생해 온 세상을 경악케 했다. 참혹한 살해 원인이 실직 후 가족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과 자신이 무기력하고 쓸모가 없어진 존재라는 상실감이 더해져 생긴 환청, 환시에 따른 일이라니 이 또한 자신의 존재감을 상실해서 생긴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상대는 전혀 그렇게 여기지 않는데 스스로 그렇게 여기는 사례, 대부분의 사람이 인생후반부에 겪어 가는 심리적인 현상이다.
 
최근에는 어떤 모텔종업원이 투숙객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겨 홧김에 투숙객을 살해한 사건도 발생했다. 상대편은 그 사람의 기준과 가치에 의해서 행한 언행인데 모텔종업원은 상대적으로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 자신을 무시했다고 여겨 저지른 어이없는 사건이다. 이 또한 자신의 자존감을 잃었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후반부 존재감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나는 제주에 내려와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있다. 환경보호와 봉사, 창작 활동을 아우르는 새 프로젝트다. 해양 쓰레기로 뒤덮인 바다를 보며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뛰어들어 환경정화도 하고 그를 통해 창작 활동도 하자. 그리고 이웃과 특히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환기하고, 환경을 보호를 취미이자 창작 활동으로 삼자는 취지다.
 
혹자는 나의 제주생활을 힐링을 위한 선택 혹은 취미생활이 아니냐고 묻는다. 맞기도 하지만 틀렸다. 내가 제주에서 새로운 봉사활동을 계획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아직도 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줌으로써 자칫 사그라질 수도 있는 내 자존감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하다.
 
자존감은 묘한 구석이 있어 저 홀로 깨닫기 힘든 영역이다. 있는 것 자체가 존재이고 이를 느끼는 것이 자존감인데, 이것은 자기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꼭 다른 대상과의 연계나 비교를 통해 나타난다. 내가 느끼는 것보다 작게 느끼거나 상대편으로부터 인정을 덜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열등감과 소외감,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먼저 필요케 하는 것이 바로 봉사다. 봉사를 통해 내가 쓸만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 [사진 한익종]

내가 먼저 필요케 하는 것이 바로 봉사다. 봉사를 통해 내가 쓸만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 [사진 한익종]

 
이런 고약한(?) 성질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상대편이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하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나이 들어가면서는 적극적인 공세가 필요하다. 내가 아직도 쓸만한 존재구나 하는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무엇일까? 남이 나를 필요로 하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필요케 하는 것이다. 이 방법이 바로 봉사다.
 
인생후반부, 알 수 없는 미래가 나를 힘들게 하지만 그를 극복할 방법은 있다. 이솝 우화 ‘개미와 베짱이’의 개미처럼 인생전반부를 열심히 일해 후반부를 살아갈 충분한 경제력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다. 돈만 갖고는 인생후반부를 행복하게 살 수 없다.
 
인간은 매슬로의 욕구 5단계처럼 생리적 욕구, 사회적 욕구 등을 충족한다 해도 자아실현의 욕구라는 욕심이 또 있게 마련이다. 모든 걸 다 갖춰도 최상위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곧 불행이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의 최상위 욕구인 자아실현의 욕구는 곧 자존감의 충족이다. 이는 비교 대상이 필요 없는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단계다. 그 만족은 내가 꽤 괜찮은 존재다,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이 많다는 생각을 갖는 데서 온다.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해 보자.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나를 찾는 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 점점 줄어든다. 사실이 그렇다. 이를 이겨내는 방법은 스스로 나를 필요로 하는 영역을 만들어 가는 것인데, 그게 곧 봉사다. 봉사하다 보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그 자존감은 내가 있다는 것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반드시 기억하라. 하나의 선은 다른 선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할 뿐 결코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앙리 마티스의 말이다. 패러디해 보자. “인간은 자신 혼자만 존재할 수 없다. 다른 이와의 공존을 통해서만이 존재할 수 있다.
 
한익종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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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종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필진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 봉사는 자기애의 발현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남에게 봉사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연대가 줄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봉사는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봉사다. “봉사하라, 봉사하라! 오래 가려면 함께 하자”고 외치는 필자의 봉사 경험을 통해 봉사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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