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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과학기술 인재 인큐베이터…이스라엘 청년은 '입대전쟁'

중앙일보 2019.08.28 05:00
이스라엘은 고교 졸업 직후 곧바로 군복무를 한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이다. [EPA=연합]

이스라엘은 고교 졸업 직후 곧바로 군복무를 한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이다. [EPA=연합]

군 복무와 학업은 물과 기름의 관계이어야만 할까. ‘군대 가서 ○년 썩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지도층 인사들도 스스럼없이 내뱉는 말이 돼버렸다. 이스라엘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사방이 중동 적국들로 둘러싸인 점에서, 핵 개발과 미사일 시험을 연일 해대는 북한을 옆에 두고 있는 우리와 안보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군 복무와 학업 또는 연구·개발(R&D)은 이스라엘 안에서 둘이면서 하나다.
 
이스라엘 남부 인구 20만 명의 사막도시 브엘셰바에서는 요즘 대규모 건설공사를 위한 타워크레인을 쉽게 볼 수 있다.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명문 벤구리온대학이 이스라엘 방위군(IDF)과 손잡고 국방 과학기술 캠퍼스를 새로 짓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방위군 산하 정보ㆍ컴퓨터부대 병력 수천 명이 군 복무와 동시에 학부ㆍ대학원 학위과정을 할 수 있게 된다. 지난달에는 벤구리온대학이 이스라엘 방위군은 물론, 미국 공군ㆍ해군 등과 손잡고 양자기술을 위한 합작 연구개발(R&D)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수도 예루살렘의 히브리대학에도 군 복무와 학위과정을 같이 할 수 있는 ‘과학부대’를 운영할 예정이다. ‘하바차롯’(Havatzalot)이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은 정보장교 양성을 위한 학부과정이다. 3년 복무 기간 동안 전투훈련뿐 아니라 군사정보ㆍ리더십 등을 중점적으로 배우며, 수학ㆍ경제학ㆍ철학ㆍ컴퓨터공학 중 하나를 선택해 복수전공을 할 수 있다.  
 
 이스라엘 국방부가 미국과 함께 개발한 최첨단 사드 시스템 애로우3. 명중률 99%에 달하는 이 요격수단은 위성공격무기로도 사용될 계획이다. 사진은 미국 알래스카에서 테스트 중인 애로우3 시스템. [AFP=연합]

이스라엘 국방부가 미국과 함께 개발한 최첨단 사드 시스템 애로우3. 명중률 99%에 달하는 이 요격수단은 위성공격무기로도 사용될 계획이다. 사진은 미국 알래스카에서 테스트 중인 애로우3 시스템. [AFP=연합]

국방·과학기술 두 마리 토끼 잡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국방력 강화와 과학기술 인력 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고 있다. 한국이 이공계 석ㆍ박사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병역 대체 복무인 전문연구요원제도의 대폭 감축을 둘러싸고 논쟁이 일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 모습이다.  
한국 국방부는 저출산으로 인간 병역자원 급감에 대응하기 위해 2500명 정원의 전문연구요원제를 비롯한 10만 명에 달하는 병역 대체복무제를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군에 갈 사람이 크게 줄고 있으니,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현역병으로 군 복무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스라엘에서는 좋은 군대에 가는 것이 곧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잡는 지름길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바로 진학하는 한국과 달리, 이스라엘은 남녀 가릴 것 없이 고등학교를 마치면 바로 군에 들어간다. 남자는 3년, 여자도 2년은 의무 복무해야 한다. 이후 대학 진학을 하거나 취직을 한다. 한국 고교생이 입시전쟁을 벌인다면, 이스라엘은 ‘입대전쟁’을 치른다.
 
이런 이스라엘 고교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부대는 '탈피오트'(Talpiot)다. 입대 정원이 50명에 불과해 고교 졸업 전 치열한 경쟁 뚫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과학영재들이 모이는 과학부대다. 탈피오트는 히브리어로 ‘견고한 성’ 또는 ‘높은 포탑’이란 뜻인 동시에 리더십을 상징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이스라엘 고교생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남녀 구분없이 군복무를 해야한다. 대학은 군 복무를 끝낸 뒤 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좋은 군부대에 입대하는 것이 좋은 대학에 가는 지름길이 된다. [EPA=연합]

이스라엘 고교생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남녀 구분없이 군복무를 해야한다. 대학은 군 복무를 끝낸 뒤 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좋은 군부대에 입대하는 것이 좋은 대학에 가는 지름길이 된다. [EPA=연합]

이스라엘 고교생의 꿈, 탈피오트·8200 

 
이들은 한국의 서울대쯤에 해당한다는 히브리대의 자연과학부에서 사관후보생 신분으로 3년간 학부 학위과정을 밟는다. 이후 정보부대 등 이스라엘 정예ㆍ핵심부대 곳곳에 배치돼 6년간 군 복무를 한다. 전투부대에 직접 투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신무기 개발이나 기술지원 등의 임무를 주로 한다. 여기에 하나 더. 장교 신분으로 히브리대나 와이즈만연구소 등에서 석ㆍ박사 과정을 밟을 수 있다.  
 
‘8200부대’란 곳도 있다. 탈피오트처럼 이스라엘의 상위권 고등학교 인재들이 지원하는 곳이지만, 컴퓨터 분야에 특화된 것이 차이점이다. 8200부대의 중요 역할 중 하나 암호해독과 정보수집이다. 적들이 보내는 유무선 신호를 가로채 군사정보를 뽑아낸다. 적국이나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예상해 이스라엘이 선제방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탈피오트 사관후보생들이 학업 프로그램을 마친 후 가기를 선호하는 부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에는 탈피오트ㆍ8200 외에도, 천재 자폐증 병사들이 위성사진 판독 등의 정보해독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9900부대, 사막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베두인들로 구성된 특수정찰부대 등이 적성에 맞고 우수한 고교 졸업생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스라엘 탈피오트의 비밀』(2016, 윤세문 외 역)을 감수한 윤종록(전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 가천대 석좌교수는 “탈피오트나 8200부대 출신은 이스라엘 기업들이 앞다퉈 모셔가려고 한다”며 “탈피오트 프로그램은 지난 30년 동안 700명가량의 졸업생을 배출했지만, 이들이 이스라엘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들의 창업자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대전 KAIST 캠퍼스에서 열린 제 4기 과학기술전문사관후보생 합격증서 수여식 직후 학생들이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난해 2월 대전 KAIST 캠퍼스에서 열린 제 4기 과학기술전문사관후보생 합격증서 수여식 직후 학생들이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탈피오트 장점 도입하기 시작한 한국 
 
한국도 최근 들어서 이스라엘처럼 국방의무와 과학기술 인력 양성 두 가지를 함께 추구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긴 하다. 2014년 도입된 과학기술전문사관제와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가 그것이다. 과학기술전문사관후보생은 우수한 과학인재가 군 기간 동안 경력 단절 없이 국방과학기술 분야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제도다. KAIST 등 과기특성화대학 재학생들이 주로 지원한다. 매년 20명 안팎의 후보생들은 소속 대학에서 2년 동안 일반전공ㆍ국방과학ㆍ창업에 대한 수업을 받고, 방학 중에는 국방과학기술 분야 종합 연구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현장실습을 받는다. 졸업 후에는 군사훈련을 거쳐 소위로 임관, ADD에서 3년간 첨단 무기개발에 참여한다.
 
2012년 시작한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는 정원이 30명으로, 대학 1년 때부터 4년간 사관후보생활을 한다. 제복도 없고 군사훈련도 받지 않지만, 학부 시절 내내 군사학ㆍ해킹기술ㆍ암호학ㆍ악성코드방어ㆍ사이버보안개론 등을 배우고 졸업과 함께 임관, ADD 등에서 근무한다. 최소 7년간 장교로 의무 복무해야 하며, 이 기간에 관련 석ㆍ박사 과정을 밟을 수 있다.
 
육군은 또 지난해 9월 군사과학기술병이란 제도도 만들었다. 처음엔 이미 군 복무 중인 현역 병사 중에서 과학기술 분야 석ㆍ박사급을 선발했지만, 올해부터는 모집단계에서부터 병무청을 통해 석ㆍ박사급 인재를 선발하고 있다. 지난 3월 첫 선발에는 21명이 뽑혔다. 이들은 한국판 랜드연구소(미국)를 표방하고 지난해 7월 발족한 육군 미래혁신연구센터를 비롯, 과학화전투훈련단ㆍ장병가치문화연구센터ㆍ핵/WMD 방호센터ㆍ드론봇부대 등에서 근무한다.  육군에 따르면 현재 육군 현역 병사 가운데 석ㆍ박사급 인재는 500여 명 수준이다. 이 중 다수가 야전에서 소총수 등으로 복무하고 있다. 대체복무제도인 석ㆍ박사급 전문연구요원에 선발되진 못한 채 군에 입대한 사람들이다.  
육군본부의 군사과학기술병 모집 공고

육군본부의 군사과학기술병 모집 공고

연구원 신분으로 활약하는 군사과학기술병 

 
군사과학기술병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육군미래혁신연구센터 이채화 기술융합실장(대령)은 “군사과학기술병들은 센터에서 ‘연구원’으로 불리며 논문검색·자료수집 등 간부와 동등한 수준의 연구활동 여건이 보장된다”며 “군 복무 기간에도 연구의 연속성을 이어감으로써 경력단절 우려를 해소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종록 가천대 교수는 “이스라엘의 국방 철학은 20대 초반의 젊은 두뇌를 자극해 상상을 혁신으로 만든다는 것에서 출발한다”며 “결과적으로 국방기술이 GDP에 7%나 기여하게 됨으로써 국방비를 비용이 아닌 투자로 격상시킨 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인구 800만에 불과한 이스라엘과 5000만 명이 넘는 한국의 군 복무는 똑같을 순 없지만, 국방력 강화와 과학기술 인력 양성, 창업 교육이 동시에 이뤄지는 이스라엘의 시스템을 연구하지 않으면, 전문연구요원 등 대체복무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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