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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남의 영화몽상] 조물주와 건축주, 그리고 이타미 준

중앙일보 2019.08.27 00:23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후남 문화에디터

이후남 문화에디터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경계인이다. 교포 2세로 일본에서 태어나 평생 한국 국적으로, ‘유동룡’이란 이름이 적힌 한국 여권을 쓰며 살았다. 쉽지 않은 삶이었으리란 짐작이 간다.  
 
‘이타미 준’은 성씨인 유(庾)가 일본에서 쓰지 않는 한자였기 때문에 스스로 만든 일종의 예명. 난생처음 한국 행 비행기를 탔던 공항 이름 ‘이타미’, 가까이 지낸 한국인 작곡가 길옥윤의 ‘윤’(潤·일본어 발음으로 준)에서 따왔단다. 한국에 대한 수구초심이 전해진다.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에 나오는 제주도 풍 박물관. [사진 영화사 진진]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에 나오는 제주도 풍 박물관. [사진 영화사 진진]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가 뭉클하게 느껴진 건 그래서만은 아니다. 그의 건축은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넘어선다. 2006년 제주도에 지은 수(水)·풍(風)·석(石) 박물관(미술관이라고도 한다)이 대표적이다. 박물관이란 이름과 달리 전시품은 딱히 안 보인다. 굳이 꼽으면 자연 그 자체랄까. 계절·날씨·시간을 달리하며 다큐가 거듭 담아낸 세 박물관의 내부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을 보고 듣고 느끼는 인간의 감각을 인공의 공간을 통해 극대화한 솜씨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건축가의 이 놀라운 발상이 실현된 배경에는 건축주와의 의기투합이 있었다. 2001년 제주도 포도호텔에 이어 세 박물관을 짓게 한 사람은 재일교포 기업가였다. 다큐에는 아파트나 가게 인테리어를 비롯해 일찍부터 이타미 준에게 일감을 맡겼던 또 다른 이들의 얘기도 나온다. 이를 듣고 있으면 건축은 그저 건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데 자연스레 생각이 미친다.
 
요즘 아이들이 흔히 꼽는 장래희망 중 하나가 ‘건물주’라는데, 나무랄 생각은 전혀 없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어른들도 할 수만 있다면 바라는 바 아닌가. 기왕이면 ‘건축주’의 꿈도 품어보길. 자연과 인공, 인간과 인간을 잇는 새로운 공간의 후원자가 될 수도 있다.
 
이후남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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