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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문재인 정부의 변곡점

중앙일보 2019.08.27 00:15 종합 34면 지면보기
권석천 논설위원

권석천 논설위원

지난주 금요일(23일) 오후 6시, 기자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 중앙광장에 있었다. 광장 뒤쪽에 학생들이 줄을 서서 학생증을 보여주고 손 피켓을 받아갔다. ‘우리는 무얼 믿고 젊음을 걸어야 합니까.’ 그들은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의 입학 의혹을 묻는 손 피켓을 들었다.
 

청년들의 분노 부른 조국 문제
‘문재인의 원칙’ 놓치게 된다면
성공한 정부라 말할 수 있을까

“개인에게 관심 없다. 진실에만 관심 있다.” 구호 하나하나 정치적 시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빛이 역력했다. “우리가 오늘 왜 모였는지 계속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자유 발언) 그날 집회를 지켜본 뒤 후문으로 나오다 대자보 한 구절과 마주쳤다.
 
‘정보와 권력이 있는 소수의 특권층만이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의혹은 해당 기회에 접근할 수 없는 우리에게 큰 좌절감을 안기고 있다.’(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
 
나는 청년들의 분노가 ‘가짜뉴스’나 ‘광기’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오보와 사생활 침해, 마녀사냥식 정치 공세는 분명히 존재한다. 조 후보자의 과거 발언들을 샅샅이 뒤져서 이 시점에 소환해 무기로 쓰는 것도 이젠 식상한 느낌이다.
 
하지만 분노의 핵심에 ‘불평등한 사다리’가 있음을 부정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의 마음을 허탈하게 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던 ‘그들만의 리그’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짐작은 했지만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세계다. “불법은 없다”는 조 후보자 딸 문제가 정유라 부정입학보다 더 깊은 좌절감을 주는 것은 공고해 보이는 시스템이 뒤에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책임을 조 후보자에게 물을 순 없다.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 기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한국 사회는 내 위에 있는 사람을 혐오하면서 내 밑에 있는 사람은 차별하는 피라미드가 돼 있다. 분노의 진폭이 커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그럼에도 조 후보자의 대응 자세를 지적할 수밖에 없다. 그는 딸이 어떻게 단국대 의대 인턴십에 참여했고, 병리학 논문 제1저자로 등재됐는지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지난 20일 청문회 준비단은 “일련의 인턴십 프로그램 참여 및 완성과정에 후보자나 후보자의 배우자가 관여한 바는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담당 교수의 말은 달랐다. 조 후보자 자신이 공직 후보자로서 명확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아이 문제에는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다”에 그칠 일이 아니다.
 
더 답답한 것은 존재 이유를 알기 힘든 집권여당이다. 비판과 지적을 “정권 흔들기”로 일축하는데 급급한 민주당의 모습은 그들이 시민들과 얼마나 괴리돼 있는지 말해줄 뿐이다. 청와대도 ‘청문회를 통한 의혹 해소’ 입장만 되풀이한다. 다들 “밀리면 끝”이란 도그마에 갇힌 분위기다. 그 사이 이번 사태는 일본 아베 정부에 대한 대응을 포함해 모든 사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어쩌면 이마저도 부차적인지 모른다. 근본적인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이다.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시민들과 동고동락하며 원칙만큼은 철저히 지킬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와 비교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통령 탄핵 이후의 정부인 만큼 더더욱 자신들에게 엄격할 것이란 기대였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변곡점에 서 있다. 지지율 따위의 변곡점이 아니다. 원칙의 변곡점이다. 원칙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좌절로, 냉소로, 환멸로 이어진다. 문재인 정부는 야당 공세와 언론 보도 너머에 있는 시민들을 바라봐야 한다. 조 후보자 차원을 넘어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이란 가치를 붙들고, 불평등 구조를 바로잡고 개혁을 날카롭게 벼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원칙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어떤 경우에도 ‘문재인의 원칙’ ‘조국의 원칙’을 놓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총선에서 민주당이 이기고, 정권 재창출을 하더라도 이번에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면 문재인 정부를 성공한 정부라고, 도저히 나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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