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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21개월째 ‘지진 난민’ 208명…손놓은 정치

중앙일보 2019.08.27 00:04 종합 16면 지면보기
백경서 내셔널팀 기자

백경서 내셔널팀 기자

경북 포항 흥해읍에 사는 이모(43)씨는 1년 9개월째 ‘세 집 살림’을 하고 있다. 첫 번째 집은 이씨가 오랫동안 살던 흥해읍의 ‘한미장관맨션’이다. 이 집은 지진으로 일부 파손된 데다 물이 새 곰팡이가 많이 피어 사실상 옷가지 등을 보관하는 창고가 됐다. 두 번째 집은 이씨 아파트 바로 옆 동의 부모님 집. 역시 곰팡이가 폈지만 그나마 좀 나아 초등 5학년생, 2학년생 자녀가 잠을 잔다. 세번째 집은 이씨 부부가 잠자고 생활하는 흥해실내체육관의 한 평(3.3㎡)짜리 텐트다. 이씨는 자신을 “난민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26일 이씨의 하루는 텐트에서 자고 일어나 부모님 집에 들러 초등학교 5학년생, 2학년생 두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 시작됐다. 이후 원래 집에 가서 남편과 아이들 옷 등을 꺼내오고, 필요 없어진 물건을 다시 넣어놨다. 점심때는 흥해실내체육관에서 남편과 점심을 먹었다. 이씨는 “부모님 집도 상황이 심각하지만, 아이들이 텐트를 불편해해 그 집에서 재운다. 금이 가 있어 불안하다”고 했다.
 
지난 2017년 11월 15일 규모 5.4의 지진이 포항을 덮쳤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집계한 포항 지진의 피해액은 551억원에 이른다. 당시 2000여 명의 이재민이 대피소인 흥해실내체육관을 찾았다.
 
이씨네 가족도 지진 직후 흥해실내체육관에 왔다. 지진에 금간 보금자리를 고쳐 금방 돌아갈 거란 가족의 꿈은 아직도 실현되지 못했다. 이씨가 사는 한미장관맨션은 전파·반파·소파 중에서도 ‘고치면 거주가 가능’한 소파 판정을 받았다. 이 판정에 따라 포항시는 한미장관맨션에 가구당 수리지원금 100만원을 줬다.
 
현재 흥해실내체육관에 사는 이재민은 208명(92가구). 모두가 이씨와 비슷한 처지다. 이들은 “지진의 충격으로 92년도에 지어진 아파트 사방에 금이 가 있어 불안한 우리는 텐트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수리금으로 받은 100만원은 내부 수리에 쓰기에도 부족한 금액이란 게 이들의 주장이다.
 
주민들은 “정부가 추진한 지열발전으로 지진이 나고 이 때문에 집이 망가졌으니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주장한다. 지난 3월 정부는 “포항지진은 지열발전소로 인한 촉발지진”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정부에서는 전수 조사를 통해 전체 5만6515건의 피해에 대해 629억76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이런 조치 등을 통해 이재민 대부분이 흥해체육관을 떠났지만 이씨를 비롯한 200여명은 여전히 남아있다.
 
포항시에선 “정부 대책에 따라 시에서 지원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더 하려면 지진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말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지진 특별법이 제정되면 그에 따라 보상 등 향후 대책을 세울 계획이다. 하지만 특별법은 국회 본회의도 오르지 못했다. 특별법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특별위원회에서, 자유한국당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심의하자며 맞서고 있어서다. 양만재 포항지진연구단 부단장은 “특별법을 제정해야 기준이 마련되는데 공방만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9년 이탈리아 라퀼라에서 규모 6.3 지진이 발생해 308명이 사망한 뒤에도 이탈리아 정부가 무성의하고 늦은 조치를 취하자 학자들은 이를 ‘제2의 지진’이라 표현했다. “정부 때문에 집이 부서졌는데 왜 내가 텐트에서 살아야 하느냐”는 이재민의 외침을 이제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백경서 내셔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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