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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봉사활동하다 작업치료사 꿈꿔…"흥미 잃었던 공부가 재밌어졌어요"

중앙일보 2019.08.26 11:00
여행을 좋아하는 이준수씨가 지난해 10월 후쿠오카 여행에서 찍은 사진. 그는 노인장애인복지 선진국인 일본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준수씨가 지난해 10월 후쿠오카 여행에서 찍은 사진. 그는 노인장애인복지 선진국인 일본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

작업치료사. 장애인이나 노인이 일상생활 또는 직업과 관련된 활동에 꼭 필요한 능력이 부족한 경우, 그들이 작업(occupation)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흔히 종합병원에서는 재활의학과 소속으로 일하며 뇌졸중·척수손상 등 중추신경계 환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역할을 하죠.이준수(40)씨는 서울 은평구에 있는 녹색병원에서 작업치료사로 일하며 14년째 병원 현장을 지켜왔는데요. 지난 7월부터는 서울특별시북부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로 자리를 옮겨 병원 밖 지역사회에서 돌봄과 치료를 함께 해나가는 '커뮤니티케어'를 꿈꾸고 있습니다.  
 
‘공부란 무엇인가’ 물었던 학창시절
“선생님 제가 왜 이런 공부를 해야 하나요?” 고교시절 사회 수업 시간, 준수씨는 용기를 내 질문했어요. 사회 선생님의 수업방식은 늘 똑같았죠. 범위를 정해주고 다음 수업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내용을 암기해 오라는 것이었어요. 수업에서 지목당한 준수씨는 암기를 하던 도중 막혀버렸어요. 하지만 그는 위축되지 않고 도발적으로 질문했죠. 평소 무조건적인 암기 위주 수업 방식에 거부감이 컸기 때문이에요. 도발의 대가는 가혹한 체벌로 돌아왔고 이후 준수씨는 공부에 흥미를 잃었어요.
 
하지만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찾아왔는데요. 고3 때 교회 친구들과 중증장애아동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됐을 때였죠. 다른 친구들은 한두 번 하고 그만뒀지만 준수씨는 3~4개월 동안 매주 그곳을 찾아갔어요. 그를 눈여겨보던 시설의 사회복지사·물리치료사 선생님들이 장애인을 치료하거나 돌보는 분야로 진로를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했어요. 그날 이후 공부를 해야 할 동기가 생겼죠.
 
시설의 선생님들은 작업치료학과라는 전공을 소개해 줬어요. 국내 도입된 지는 20년 정도 됐지만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했고 외국에서는 유망 직업으로 꼽힌다는 설명이었죠. 당시 작업치료학과가 있는 대학은 전국에 6~7곳뿐이었어요. 준수씨는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수도권 대학의 작업치료학과에 2000년 입학했습니다.
 
2017년 녹색병원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준수씨.

2017년 녹색병원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준수씨.

하지만 대학교 수업 역시 중고교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교과과정에 따라 책 내용을 암기하고 시험을 보는 일이 반복됐죠. 작업치료에 대한 꿈과 열망은 있었지만 배움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준수씨는 어느 순간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부를 시작했어요. 개별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던 책을 읽기 시작했고 자신의 생각을 온라인 카페에 올리면서 위안을 받았습니다. 
 
준수씨가 다녔던 작업치료학과는 3년제로, 2학년이 끝난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3개월 동안 반드시 실습수업을 거쳐야 했어요. 실습수업을 통해 또 한 번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 전에는 흥미를 못 느꼈던 수업이 실습을 나가면서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현장에서 환자들의 질환을 눈으로 본 후 집에 돌아와서는 그 질환에 대해 찾아보며 공부를 합니다. 다음 날 다시 현장에 가서 공부했던 내용을 적용해보는 방식으로 반복하다 보니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거예요. 역시나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가면서 배우는 것이 진정한 배움이라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했습니다.”
 
실습이 끝난 후 이론공부도 더 열심히 했고 그 결과 학점도 급상승했죠. 3학년 첫 시험에서 두드러지게 좋은 성적을 받았고 1년 내내 상위권을 유지했어요. 하지만 준수씨가 졸업하던 2005년 당시에는 원하는 대학병원 취업이 힘들어졌습니다. 그 사이 전국에 작업치료학과가 27곳이나 생기면서 졸업생 수가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이죠. 마침 보건복지부의 정책에 따라 요양병원 설립 붐이 일기 시작했고 많은 작업치료학과 졸업생들이 대학병원 대신 요양병원에 취업했어요. 준수씨도 한 요양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됐죠.
 
취업 후 준수씨는 또 한 번 좌절했어요. 자신이 공부하고 생각해왔던 작업치료와 실제 치료현장에 투입돼 병원 직원으로서의 행하는 작업치료가 달랐기 때문이에요.
 
장애공감연구회 '함께라온'은 월 1회 수다회를 연다. 지난 1월에는 LG 유플러스 광고모델 이원준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준수씨는 "척수장애인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장애공감연구회 '함께라온'은 월 1회 수다회를 연다. 지난 1월에는 LG 유플러스 광고모델 이원준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준수씨는 "척수장애인의 삶이 녹록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병원에 가보니 작업치료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작업치료의 범위는 매우 넓은 데 비해 할 수 있는 치료는 한정적이고 수가도 낮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더군요.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볼 수 있도록 하다 보니 작업치료사의 노동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치료의 질보다 수익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1년 후 종합병원인 녹색병원으로 이직해 13년간 재활의학과 소속 작업치료사로 일했죠. 병원 생활에 만족했지만 공부에 대한 열망은 늘 마음속에 있었어요. 작업치료사가 처한 여러 문제도 있지만 ★‘재활난민’이 될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늘 고민했죠.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고 졸업 후 10년 만인 2015년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의료행정 전공)에 입학했어요.
 
“병원을 옮겨서도 구조적인 문제는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제도적인 한계에 부딪히다 보면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게 한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재활의료 전달체계에 대해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고 이제 진짜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거죠.”
 
연구와 발표 위주였던 대학원 수업은 매우 만족스러웠어요. 자료를 찾아서 연구한 내용을 학생·교수 앞에서 발표하면서 내 주장을 펼치고 논문을 쓰는 방식의 공부는 준수씨에게는 매우 즐거운 일이었죠. 2년 반 동안 푹 빠져 공부했던 덕분에 수석졸업을 했어요. 준수씨는 대학원에 와서야 자기주도적인 공부 패턴이 자신과 잘 맞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인권의식 필수
이제 막 공부의 재미를 느낀 준수씨는 여전히 공부에 목말랐어요. 대학원 공부의 연장선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찾던 중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가 주관하는 프로그램 ‘장애인 건강’ 교육과정(8주)을 알게 됐죠. ‘장애인 건강’이라는 핵심 콘텐트를 갖고 간호사·의사·사회복지사와 장애인 당사자가 함께 공부하는 모임이었어요. 각자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직업인들과 토론하다 보니 평소 혼자 고민했던 부분들에 대한 답을 쉽게 찾는 경험도 하게 됐어요. 이것 역시 자신이 생각했던 공부의 한 방향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교육과정이 끝난 뒤에도 준수씨는 동료들을 설득해 공부모임을 계속 이어나갔어요. 8~9명으로 시작한 모임이 지금은 45명까지 늘었고, 장애공감연구회 ‘함께라온’이라는 이름도 생겼죠.
 
준수씨는 2017년 도쿄의 요요기병원에 견학을 갔다. 일본의 작업치료를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요요기병원 원장(왼쪽)과 함께 찍은 사진.

준수씨는 2017년 도쿄의 요요기병원에 견학을 갔다. 일본의 작업치료를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요요기병원 원장(왼쪽)과 함께 찍은 사진.

준수씨는 작업치료사로서 걸어온 과정이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던 과정과도 같다고 말했어요. 또 작업치료사는 장애인들에게 목적의식을 주는 일이라는 점에서 자기주도학습과 닮은 점이 많다고 말했죠. 그가 생각하는 교육(배움)은 무조건적인 주입 또는 암기가 아닌, 학생이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게끔 해야 하는 것입니다.
 
“흔히 공부라고 하면 시험이나 성적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 경험을 돌아봤을 때 진짜 공부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 하는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들도 아이에게 무턱대고 공부하라고 강요할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동기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학창시절에 이런저런 경험을 해보면서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을 수 있어야겠죠. 자신에게 맞는 분야를 찾게 되면 시키지 않아도 아이는 열과 성을 다해서 공부하게 될 겁니다.”
 
작업치료사가 갖춰야 할 역량으로 준수씨는 공감능력을 최우선으로 꼽았어요.
 
“작업치료사의 일은 환자의 증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원인을 찾고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환경을 개선하며 잔존하는 기능을 최대한 살려 일상에 복귀시키는 거예요. 그러려면 가장 필요한 역량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이라고 봅니다.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관심, 그리고 인권의식, 직업으로서의 소명의식 등이 필요해요.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사회에 전달하는 역할까지 작업치료사들이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준수씨는 최근 노인장애인복지의 선진국인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일본어 공부를 1년째 하고 있어요. 또 연구회 모임을 키워서 협동조합이나 협회 규모의 단체를 만들어보는 것도 꿈꾸죠. 최근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요양시설 등에서 작업치료사를 필요로 하고 채용을 늘리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젠 장애인 관련 단체나 협회들도 작업치료사들의 역량을 우호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작업치료사들이 처한 환경이 여전히 열악해 어려움이 많지만 몇 년만 지나면 더 이상 병원 취업에만 목을 매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열릴 것 같아요. 그때가 되면 작업치료사가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분야가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재활난민: 재활치료를 받던 환자들이 입원 후 2~3주만 되면 ‘병원에서 나가라’는 강요에 못 이겨 퇴원해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뇌졸중 같은 뇌손상이나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일단 치료(급성기)에 신경을 쓰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가정·사회로 복귀하게 돕는 재활치료다. 재활치료는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 꾸준히 받아야 하는데 일부 병원에서는 이들에 대한 장기치료를 기피하는 실정이다.
 
글=김은혜 꿈트리 에디터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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