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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나이키와 아식스 그리고 프로스펙스

중앙일보 2019.08.26 00:18 종합 27면 지면보기
정제원 중앙일보플러스 스포츠본부장

정제원 중앙일보플러스 스포츠본부장

1980년대는 격동의 세월이었다. 군사정권에 맞서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이 절정을 이루던 시절이었다. 20대 초반 대학생의 혈기는 뜨거웠다. 그리고 새로운 물건에 대한 호기심도 왕성했다. 대학 초년병 시절, 기자는 나이키의 스우시(swoosh) 로고가 그렇게 멋지게 보일 수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스우시 로고가 빛나는 나이키 운동화를 손에 넣었을 때의 그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런데 그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갔다가 봉변을 당할 줄은 미처 몰랐다. 평소 친분이 있던 한 선배는 내가 신고 있던 나이키 신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미국 제국주의의 대표적 상품인 나이키를 신고 왔다”며 면박을 줬다.
 
강산이 세 번 변했다. 2019년, 미국의 나이키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로 성장했다. 승리의 여신 니케의 날개를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진 스우시 로고는 이제 스포츠의 대명사가 됐다. 전자·IT제품을 통틀어도 전세계적으로 가장 익숙한 로고가 바로 스우시다. 이 로고의 시장가치만 해도 260억 달러(약 32조원)를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나이키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아버지에게 빌린 50달러로 일본 운동화 오니쓰카 타이거의 수입상을 차렸던 미국의 필 나이트가 1971년 세운 회사가 바로 나이키다. 나이트가 2016년 발간한 자서전 『슈독(Shoe dog)』에 따르면 스우시 로고는 캐럴린 데이빗슨이란 무명의 여성화가가 2주 만에 급하게 만든 작품이다. 나이트는 처음엔 이 로고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데이빗슨에게 단돈 35달러짜리 수표를 끊어줬다고 한다.
 
나이키는 초창기만해도 일제 오니쓰카 운동화의 품질을 따라가지 못했다. 오니쓰카 타이거는 아식스의 전신이다. 1949년 일본 고베에서 시작한 오니쓰카는 미국의 수입상 나이트가 나이키라는 브랜드를 만들면서 라이벌 관계가 되자 1977년 회사명을 아식스로 바꿨다. 아식스가 주춤하는 사이 스우시 로고를 단 나이키는 전세계 시장으로 뻗어 나갔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나이키 신발을 신었다. 공격적인 스포츠 마케팅 전략을 앞세워 세계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가 됐다. 지난해 매출액이 364억 달러(약 44조원)를 넘는다.
 
미국에 나이키, 일본에 아식스가 있다면 독일엔 아디다스가 있다. 중국은 체조 스타의 이름을 딴 ‘리닝’이란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눈 씻고 찾아봐도 한국을 대표할만한 스포츠 브랜드는 없다. 1980년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국산 까발로나 페가수스 운동화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프로스펙스라는 브랜드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고속도로엔 오늘도 승용차가 넘쳐난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건 현대와 기아자동차다. 그 사이로 벤츠와 BMW, 아우디, 렉서스의 로고가 보인다. 그런데 스포츠용품 시장만큼은 유독 외국 브랜드 일색이다. 축구대표팀 선수들의 상의에는 나이키의 스우시 로고가 빛난다. 배구 국가대표 유니폼은 일본 아식스 제품이다. 그나마 이탈리아 브랜드를 인수·합병(M&A)한 휠라(FILA)가 국내외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게 위안거리다.
 
국가대표 유니폼은 반드시 국산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베가 밉다고 해서 일본 브랜드가 달린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지 말자는 이야기도 너무 감정적으로 들린다. 21세기엔 국수주의는 통하지 않는다. 브랜드 이미지와 품질로만 대결할 뿐이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아식스가 씽씽 달리고 있는 세계 스포츠용품 시장에도 이제 메이드 인 코리아 브랜드 하나쯤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는가.
 
정제원 중앙일보플러스 스포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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