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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청와대의 권력 독주로 정치가 실종되고 있다

중앙일보 2019.08.26 00:12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여의도 정치가 실종됐다는 소리가 여·야 모두에서 들려온다. 야당은 청와대와 집권 여당이 야당을 국정 동반자로 보지 않는다는 불만을 털어놓는다. 반면 여당은 사사건건 국정 발목만 잡고 국회 등원을 거부한 채 장외 투쟁만 이어가는 야당 탓을 늘어놓는다. 서로에 대한 불만을 쌓다 보니 여·야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좀처럼 찾기 힘들고, 국회는 국민 눈에 개점휴업 상태인 것처럼 보이니 국회에 대한 신뢰는 더욱 떨어져만 간다.
 

과도한 청와대 개입과 권력 비대로
여·야 대화와 타협의 정치 힘들어

여의도 정치의 실종은 입법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삼권분립을 권력 운용 원리로 채택한 대통령제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제도적 장치가 헌법에 보장된 대의 권력 상호 간 권력분립과 견제의 원칙이다. 입법부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여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당은 청와대가 놓칠 수 있는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해 국정에 국민의 뜻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물론 한 정당에 뿌리를 둔 여당과 청와대가 서로 다른 의견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 선거와 별개의 독립적 선거를 통해 선출됐고, 권력 간 상호 견제의 목적에서 주권을 행정부와 나눠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회 내 여·야 간 소통이 정체되고 입법부를 통한 대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시민들이 대의 기관인 국회를 통하기보다 청와대 게시판에 직접 청원을 올리는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흉악 범죄자에 대한 강한 처벌 요구부터 야당 해산에 대한 청원까지 다양한 이슈들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다. 청와대 게시판이 활성화된 데에는 청와대가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능과 권력을 갖고 있다는 시민 인식이 깔려있다. 국회의원들마저 여의도 국회를 비워둔 채 장외 집회에 동참하고 야당 의원들은 걸핏하면 청와대 앞에서 시위한다. 국회 스스로 무능과 무력함을 자인하는 모양새로 보이며 결국 국회는 점차 정치과정에서 주변화된다.
 
청와대 중심으로 흐르는 한국 정치에 대해 국회나 다른 정부조직 탓을 하기도 어렵다. 청와대 스스로 과도하게 많은 업무를 직접 챙기려 하기 때문이다. 현재 청와대 조직은 과거 어느 정부보다 사이즈가 비대하며, 청와대 비서실 외에 각종 대통령 직속 위원회들이 행정부 조직과 별도로 각종 소관 업무와 개혁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얼마 전 감사원이 아닌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산업부·통일부·국방부·방송통신위원회 등 4개 부처 대변인실들을 대상으로 언론 오보 대응 실태를 조사 중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청와대 스스로 주요 사안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청와대 활동 반경이 확대될수록 내각은 움츠러들며 권한 위임이 약해지니 내각은 좀처럼 책임 있는 업무 자세를 보이려 하지 않는다.
 
대통령제는 대통령이 정치 과정의 핵심에 위치하는 권력 구조이다. 그런데 대통령제의 주된 성패 요인은 삼권분립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잘 지켜지느냐 여부에 있다. 또 행정부처에 대한 책임감 있는 권한 위임은 전문성 기반의 민주정부가 갖춰야 할 핵심 통치 덕목이다. 이런 이유로 헌법은 대통령이 내각을 통해 통치하고 국회는 정부를 견제하도록 했다. 이러한 제도적 기제를 통해 권력 집행의 ‘불편함’을 가미해 놓은 것은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통치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로 작용하게 된다. 항해자들을 유혹했던 사이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미리 돛대에 자신을 결박했던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 율리시스의 지혜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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