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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문재인 정부의 정의가 슬프다

중앙일보 2019.08.26 00:09 종합 30면 지면보기
전영기 중앙일보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칼럼니스트

동양의 고전 『장자』는 현란한 말로 세상을 속이다 사라져간 궤변론자들을 비웃고 있다. ‘조국 사태’를 보면 “오늘 월나라로 떠났는데 어제 도착했다고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묘한 일을 우임금도 알 수 없다. 누가 이해하겠는가”(내편 제물론)라는 장자의 한탄이 생각난다. 기록에 따르면 조국씨의 딸은 고교 1년생이던 2007년 7월23일 단국대 의과학연구소에서 인턴을 시작했다. 그런데 의학 논문의 연구는 2007년 6월30일 종료됐다. 23일 전에 끝난 논문의 제1저자가 지금 활동을 시작한 조씨의 딸로 되어 있는 셈이니 오늘 떠나 어제 도착했다는 궤변이 떠오르는 것이다.
 

조국과 운명을 같이 하려다 보니
특권과 반칙을 현란한 말로 포장
의사·교수 사회 먹칠한 거짓 진보

귀신도 모를 괴상한 일의 발생에 관한 궁금증은 조국씨가 예를 들어 “딸아이가 다니던 학교의 학부형인 단국대 의대 교수를 아내와 함께, 또는 아내가 찾아가 모종의 부탁을 했다” 같은 식으로 설명한다면 해소될 수 있다. 물론 그럴 경우 반칙을 써서 자기 딸에게 동년배 학생들에 비해 훨씬 유리한 스펙을 만들어 주었다든지, 저명한 교수라는 특권적 지위를 사용해 한국 의학계의 연구윤리와 논문 질서를 어지럽힌 책임은 져야 할 것이다. 실정법 위반 혐의가 있으므로 검찰이 치고 들어가기 전에 먼저 수사를 자청하는 것도 책임지는 방법이다. 언감생심 법의 정의를 수호하고 공정한 법집행의 책무를 지닌 법무부 장관이 되겠다는 무모한 꿈과 위험한 시도는 포기하기를 권한다.
 
조국 문제는 반칙과 특권을 동원해 공정과 정의를 파괴한 어떤 한 사람을 장관 자리에 앉혀도 되겠는가 하는 국민적 의문에서 출발했다. 특정 야당이나 우파 언론의 악의적인 정치 공세 탓에 사안이 커졌다고 보는 건 단견이다. 그러기엔 당사자 문제들이 너무 크고 뿌리깊고 치명적이다. 더구나 입만 열면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약자를 지켜주는 정의와 공정의 화신처럼 자처하던 사람 아닌가. 그 위선과 이중성과 거짓 진보에 국민이 배신감을 느껴 치를 떠는 것이다. 배신감에 보수와 진보, 여와 야가 따로 있을 리 없다. 성향이나 노선의 문제가 아니라 지배적 기득권의 도덕성과 합법성에 관한 문제였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와 민주당의 지도부, 그리고 ‘이니, 네 마음대로 해’라고 소리치는 소위 문빠 집단 등은 부끄러움도 없이 조국의 운명을 집권층의 운명으로, 나아가 나라의 운명과 동일시하는 행태를 드러내고 있다. 망조라는 말 외에 딱히 다른 표현을 찾기 어렵다. 경기도 교육감 이재정은 페이스북에서 “조 후보의 따님의 경우 대학 교수의 지도 아래 현장실습을 한 것이고, 그 경험으로 ‘에쎄이’라는 보고서를 쓴 것이고, 당연히 제1저자다”“미국에서는 이런 보고서를 ‘에쎄이’라고 하는데 우리말이 적절한 말이 없어서 ‘논문’이라고 부른다”라며 조국을 옹호했다. 이 궤변은 장자의 “만물을 사랑하면 사물의 차별이 없어지고,천지도 하나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말장난이다”(잡편 천하)를 떠올리게 한다. 이재정은 조국 사랑이 넘쳐 그의 딸이 썼다는 실습 보고서(실제로 썼는지도 확인되지 않았지만)와 딸을 제1저자로 허위 기재해 미국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으로 등재시킨 ‘신생아 뇌병증’에 관한 고도로 전문적인 학술논문과의 차별을 없애 버렸다. 천지가 하나 되듯 교교 1학년생의 글과 한국의 전문의들이 고통스런 연구와 실험을 거듭해 겨우 올릴 수 있을까 말까한 SCI급 논문을 동일시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국민의 인식 수준을 개나 돼지로 여긴 것인가. 어디 이재정 뿐이랴. 청와대와 민주당 사람들은 법에도, 전례에도 없는 ‘국민 청문회’라는 이상한 물건을 만들어 조국을 기어이 법무부 장관에 앉히려는 모양이다. 이것이 2년 3개월된 문재인 정부의 정의이고 공정인가. 이는 커지는 메아리를 없앨 요량으로 소리를 더 크게 지르고 제 옆의 그림자를 떨칠 요량으로 더 빨리 달리는 일과 같으니 슬프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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