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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규제의 칼, 쓰지 않을수록 빛난다

중앙일보 2019.08.26 00:04 경제 4면 지면보기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속버스 회사가 도로공사와 통행요금 문제가 생기자 운행시간이 길어질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좁은 국도로 우회해 승객들을 날랐다. 과연 사람들은 이 버스를 이용할까? 모두가 버스회사의 어이 없는 결정을 비웃을 것이다.
 
지난주 판결 난 방송통신위원회와 페이스북간의 소송전 구조가 이와 비슷하다. 2017년 초, 페이스북이 국내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망의 접속경로를 바꾸자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들에 페이스북 이용에 어려움이 있다는 민원이 증가한 것이 원인이었다.
 
방통위는 페이스북을 통행료 적게 내려 일부러 느린 길로 사람들을 보낸 버스회사와 같다고 봤다. 우리 국민들에게 불편을 끼친 책임을 물어 과징금을 부과했다. 페이스북은 승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기업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결정하겠냐고 반발했다. 결국 행정소송으로 이어졌다.
 
방통위는 과징금 부과를 글로벌 콘텐츠 기업(CP)에 규제 집행력을 행사한 성과로 인식하고 있는 듯 보였다. 국내 CP와 글로벌 CP 간 역차별 해소의 단초로 삼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그런데 법원이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주었다.
 
방통위의 향후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이용자에 끼친 불편의 기준과 처벌의 근거 모두 미약했기 때문이다.  통신사업자간에 데이터를 주고 받는 값을 정부가 ‘얼마’하고 콕 찝어 정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이는 국내 CP와 글로벌 CP 모두에게 과도하게 작동하는 규제이다.
 
국내 기업과 글로벌 기업 간 역차별을 해소해달라는 취지는 글로벌 기업도 국내 기업과 똑같이 규제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 기업에 대해 규제 집행력을 담보할 수 없다면 국내 기업도 규제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역차별 이슈를 부각시켜 국내 기업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더 강한 규제를 발동하려고 한다.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 업체를 방송통신발전기금 부과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중으로 알려졌다. 네이버·카카오 같은 부가통신사업자에게 기금을 징수하는 법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돼 있다. 독점적 인허가와 한정된 주파수를 할당받은 방송·기간통신사업자에게 부과하는 부담금이다. 어떤 독점적 혜택도 받지 않은 부가통신사업자에게도 지우기에는 억지에 가깝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대한민국만의 규제는 글로벌 기업에게만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기업도 고사시킨다. 더군다나 4차 산업 중심의 기술 혁명을 모토로 출범한 정부가 아니었던가.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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