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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비행기 타면 벌벌, 악수하면 찜찜···심하면 병입니다

중앙일보 2019.08.26 00:03 건강한 당신 4면 지면보기

현대인 괴롭히는 공포·강박

누구나 낯설거나 긴장된 자리에선 불안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불안해하거나 그 정도가 지나치면 불안 장애를 의심할 수 있다. 닥치지 않을 위험을 걱정하다가 강박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특정 대상을 두려워하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강박 장애와 공포증은 단순한 성향 문제로 치부하기엔 후유증이 크다. 다른 정신 질환이 동반되거나 증상이 악화할 수 있어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공포증은 다른 정신질환 동반
강박 장애는 정상 생활 걸림돌
약물·인지행동 치료 병행 최선

사업가 김모(51)씨는 유독 비행기를 잘 타지 못한다. 3년 전 비행기를 탔다가 심한 눈보라 속에서 어렵사리 착륙한 경험을 한 후부터다. 2년 전 용기 내 비행기를 탔지만 이착륙할 때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여 울음을 터뜨렸다.
 
1년 전 딸 결혼식 참석차 비행기를 타야 했을 땐 술의 힘까지 빌렸으나 겁에 질려 결국 탑승조차 하지 못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명우재 교수는 “비행기 탑승에 극심한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특정 공포증’ 사례”라고 했다.
 
 

대표적 불안 장애는 ‘특정 공포증’ 

공포증은 불안 장애의 하나다.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노출됐을 때 불안 반응이 유발되는 ‘특정 공포증’이 대표적이다. 공포를 느끼는 상황·대상에 따라 동물형(거미·벌레 등), 자연환경형(고소·폭풍·물 등), 상황형(비행기·엘리베이터 등), 혈액·주사·손상형 등 다양하다. 대인관계나 사회적인 상황·활동에 대해 지속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사회 공포증’도 있다. 발표하기나 사람들 앞에서 글씨 쓰기, 사람들과 대화·식사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회피한다.
 
‘광장 공포증’이 있으면 넓은 장소나 급히 빠져나갈 수 없는 장소, 도움을 받기 어려운 장소에 혼자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혼자 외출할 때 혹은 사람 많은 곳에 있을 때, 줄 설 때, 버스 탈 때, 영화관에 있을 때 불안함을 느끼는 식이다.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2016)에 따르면 특정 공포증 유병률(5.6%)이 불안 장애 가운데 가장 높았다. 사회 공포증 유병률은 1.6%, 광장 공포증은 0.7%다. 공포증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한다. 공포증 환자에게선 자율신경계 조절이 잘 안 되거나 세로토닌·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과 뇌 회로의 변화가 관찰되곤 한다. 
공포증
● 대화하기, 발표하기, 모임 참석을 심하게 꺼린다
● 얼굴 붉어짐, 목소리 떨림, 땀 흘림을 타인이 알아챌까 두렵다
● 특정한 생물·물체·상황·환경에 심한 공포를 느낀다
● 공포 대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란 생각만 해도 불안하다
● 버스·기차·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타지 못한다
● 혼자 외출하기, 줄 서기, 영화관 가기를 두려워한다
 
유전적·환경적인 요인도 영향을 준다. 특정 공포증의 발병 빈도는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의 세 배로 알려져 있다. 또 특정 상황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경우 발병하기 쉽다. 명 교수는 “사회 공포증의 경우 유전적인 요인은 약 30%”라며 “부모의 양육 방식이나 어린 시절 또래 집단 간의 경험이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했다.
 
문제는 공포증을 성향 문제로만 생각하기 쉽다는 점이다. 공포증을 단순히 예민하거나 소심한 성격 탓으로 간주해 버린다. 그러나 공포증 때문에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힘들고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라면 병으로 봐야 한다. 특히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다른 정신 질환을 동반할 가능성이 크다. 명 교수는 “사회 공포증의 약 38%는 기분 장애, 9%는 알코올 문제를 동반하고 특정 공포증 역시 범불안 장애나 우울 장애, 양극성 장애, 알코올 의존증 등이 생길 가능성이 큰 편”이라며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생각·행동 조절하는 뇌 회로 이상 

전모(21)씨는 6개월 전부터 지하철에서 사람들과 부딪히고 나면 ‘병균이 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걱정은 점점 심해졌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만지기만 해도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이로 인해 하루에 수십 번 손을 씻고 물건을 만질 땐 장갑을 낀다. 전씨는 손을 지나치게 많이 씻어 피부병까지 생겼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세주 교수는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생각·충동·이미지가 머릿속에 반복적으로 떠오르고 그 생각으로 인한 괴로움을 덜기 위해 특정한 행동을 반복·집착하는 현상인 강박 장애”라고 설명했다.
 
현대인 중에는 강박적인 성향을 가진 경우가 꽤 있다. 여행을 가서 집 가스 불을 잠그고 왔는지 마음을 놓지 못하는 주부, 시험 답안지를 잘못 쓰지 않았는지 계속 확인하는 학생, 파일을 제대로 첨부했는지 여러 번 확인한 뒤 상사에게 e메일을 전송하는 회사원, 책상 위 사무용품을 각 잡아 깔끔하게 정리하는 직장인이 그렇다. 이런 성향은 실수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강박 장애가 있는 사람은 강박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가정·학교·직장 생활을 하는 데 큰 지장을 받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들은 반복적으로 확인하느라 업무 속도가 느려지고 일정한 순서로 물건을 정리하려 노력하다가 시간을 허비한다.
강박 장애
● 악수할 때 ‘병균에 옮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 문·가스 불을 안 잠그고 나왔나 의심한다
● 물건이 어질러져 있는 것을 보면 견디기 힘들다
● 피부가 벗겨질 때까지 손을 씻는다
● 전등을 끄거나 수도를 잠갔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 셈, 정리 등 정렬하는 행동을 한다
 
강박 장애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생각과 행동을 조절하는 뇌 회로 기능에 이상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김 교수는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지속시키는 회로가 과활성화하면 한번 떠오른 생각이 멈춰지지 않고 의지와 관계없이 계속 떠오르게 된다”고 말했다. 뇌 속 특정 부위에 세로토닌이 저하된 것도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보통 청소년기나 초기 성인기에 증상이 시작된다.
 
강박 장애와 공포증은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최선이다. 다만 불안 장애 환자는 병원에 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김 교수는 “강박 장애의 경우 (치료를 시작하기까지) 7~8년이 걸린다는 보고가 있다”며 “치료는 빠를수록 효과적이기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의심 증상이 있으면 진료를 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운동과 규칙적인 생활은 질환 극복에 도움되는 습관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유산소·근력 운동과 함께 요가를 추천한다. 명 교수는 “불안·공포 같은 감정은 긴장성 두통이나 불면증으로 이어지기 쉽다”며 “이완 요법이나 복식 호흡을 꾸준히 연습하면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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