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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중독서 탈출 못해도 덜 해로운 방법 찾아 위해성 줄인다

중앙일보 2019.08.26 00:01 건강한 당신 7면 지면보기
 어떤 물질에 중독된 사람이 ‘좀 덜 해로운 방법을 택하겠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끊을 생각을 해야지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전문가들의 인식도 그랬다. 근절만이 답이었다. 하지만 흐름이 바뀌고 있다. 끊을 수 없다면 그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선진국들은 이런 시각을 보건 정책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바로 ‘건강위해감축(harm reduction)’의 개념이다. 
 

세계적 추세 ‘건강위해감축’

위해감축은 우리에게 낯선 단어다. 개념 역시 생소하다. 중독으로 인한 위해를 줄이는 것이 근절의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한국위해감축연구회 문옥륜 회장(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은 “위해감축은 개인이든 사회든 중독을 근절하지 못할 바에는 그로 인한 위해를 적절히 관리해 최소화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해감축의 개념이 대두하기 시작한 것은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다. 에이즈 치료제가 없던 상황에서 마약 등 중독성이 강한 물질로 인한 건강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에서 시작됐다. 마약은 주사기 재사용 등으로 인한 에이즈 감염의 주된 경로였고, 에이즈는 중독으로 인해 초래되는 극단적인 피해였다. 당시 각국의 보건당국은 마약을 뿌리 뽑기보다 주사기나 주삿바늘을 무료로 혹은 저렴하게 제공하는 방식을 택했다. 게다가 약물을 보다 위생적으로 투여할 수 있는 별도의 장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해당 국가는 실제로 약물중독으로 인한 개인·사회·경제적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1980년대 HIV 확산 때 개념 대두
 
건강위해감축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하나는 근절이 연착륙하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건강위해감축 노력이 결국 중독성을 떨어뜨리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문 회장은 “알코올중독 환자를 치료할 때도 처음엔 독한 술로 시작해 점차 도수를 내리는, 금단에 대한 탈감작 과정을 거친다”며 “건강위해감축은 절대로 근절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 아니라 어찌 보면 일상의 지혜”라고 강조했다.
 
또 하나는 위해를 줄이는 그 자체로서 갖는 의미다. 중독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데 근절만이 유일한 해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호주·캐나다 등 다양한 국가에선 헤로인 같은 불법 약물 대신 효과는 오래 지속하지만 활성화 정도가 약한 약물(메타돈 등)을 제공한다. 중독자의 생활을 안정화하기 위한 것이다. 또 세계보건기구(WHO)는 약물 과다 복용을 예방하거나 마약의 효과를 급격하게 되돌리는 약물인 ‘날록손’을 배포하는 프로그램을 권장한다. 이를 통해 약물 과다복용자의 호흡을 정상화할 수 있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본주의 단체에서는 근절만이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위해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개인·사회적, 나아가 경제적으로 이득이 있다고 보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한국 보건정책에 도입 필요성 제기
 
따라서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내 보건 정책에도 건강위해감축의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담배·알코올·도박·비만 등 적용할 만한 분야는 다양하다. 문 회장은 “중독은 문화적인 측면이 있는 만큼 근절이 쉽지 않기 때문에 건강위해감축 차원에서 점차 타파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우리나라도 건강위해감축 정책 도입을 고려할 시기”라고 말했다. 한편 오는 29일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는 18개국 100여 명의 공중보건·의학·과학·규제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해 전 세계 도입 현황과 방안을 논의하는 ‘제3회 아시아 위해감축포럼’이 열린다.
 

“과학적 근거 토대로  금연정책 전환 필요”

인터뷰 최재욱 고대 의대 교수 
 
건강위해감축 세계적 이슈는 최근 니코틴 중독에 쏠려 있다. 전자담배라는 대체재가 나오면서부터다. 이를 보건(금연) 정책에 반영한 나라도 있다. 국내에 도입할 만한 건강위해감축 정책으로도 꼽힌다. 의사이자 보건학자로서 담배 건강위해감축 정책을 연구한 최재욱 교수를 만났다.
 
 
 
담배 위해감축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전자담배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부터다. 영국에선 이미 담배 위해감축 정책에 활용하고 있다. 영국은 금연 정책으로 2000년대 초반 흡연율이 23%로 떨어진 후 변동이 없다. 기존 방식으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해 건강위해감축으로 눈을 돌렸다. 담배의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를 대폭 줄이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반발이 있었을 텐데.
 
“전자담배의 유해성이 일반담배보다 덜하다는 과학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보건당국도 인식을 바꿨다. 이에 대해 유보적이었던 미 식품의약국까지 지난 4월 30일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 물질이 일반담배보다 85~95% 줄었다고 발표했다. 건강상 편익을 인정한 거다.”
 
 
정책 활용을 역설하는 이유는.
“직업윤리다. 전문가로서 위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끊지 못하는 사람에게 권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과학적 근거를 정확히 알리는 게 필요하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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