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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다리 위 전화 다 받는다, 생명 살리는 베테랑들 한마디

중앙일보 2019.08.25 07:00
한강 교량 위 'SOS생명의 전화'는 2011년 7월 설치를 시작했다. 현재 19개 교량 위에 74개 전화기가 있다[중앙포토]

한강 교량 위 'SOS생명의 전화'는 2011년 7월 설치를 시작했다. 현재 19개 교량 위에 74개 전화기가 있다[중앙포토]

“힘들어서 (한강 다리에) 나왔어요?”
 

[착한뉴스]

지난 19일 오후 6시 서울 하월곡동 'SOS생명의전화' 상담실. 최장숙(73) 상담사가 자리에 앉자 전화벨이 바로 울린다. 최씨는 수화기를 들며 평온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최씨의 손은 메모장 위에서 분주했다. 한강다리에서 걸려온 전화다. 보통 두 번 울리기 전에 받는다. 통화를 시작한 지 몇 분이 지났을까. 상담을 마친 최씨가 안도한다. 다행히 누군가 호기심에 건 전화였다. 그럼에도 최씨는 통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했다.
 
지난 19일과 21일 이틀동안 생명의 전화 사무실에서 10년차 상담사 최씨와 3년차 손은주(57)씨를 만났다. 6층에 있는 2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책상에는 컴퓨터와 전화가 놓였는데 상담사가 들어서니 방이 꽉 찼다. 19개 한강다리 위 생명의 전화가 모두 이곳으로 걸려온다.    
 
최씨는 일주일에 2~3일 출근한다. 오전 10시~오후 3시 법무부 재소자 상담, 오후 6~9시에 생명 전화 상담을 한다. 주말·공휴일도 당번이면 나온다.
 
손씨도 일주일에 1~2일 출근한다. 저녁 6시에 출근해 밤을 새고 아침 9시에 퇴근한다. 밤을 새면서 ‘쪽잠을 자면 안되느냐’고 물으니 “긴장돼서 잠을 못 잔다”며 손사래를 친다. 이들은 월급이 없다. 무보수 자원봉사다. 최씨는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임한 뒤 ‘상담’을 제2의 목표로 삼았다. 수년간 상담공부를 한 뒤 ‘SOS 생명의전화’ 상담원이 됐다. 손씨는 청소년 상담사로 일할 때 극단적 선택을 경험한 친구를 본 뒤 자살예방교육에 나섰다.  
손은주(57) 상담사는 3년째 SOS생명의 전화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김태호 기자

손은주(57) 상담사는 3년째 SOS생명의 전화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김태호 기자

"학생, 젊은 직장인들의 전화 많아" 

‘SOS 생명의전화’는 주로 학생이나 젊은 직장인이 찾았다. 손씨는 “10~20대가 학업·취업·대인관계 문제로 전화가 온다”고 말한다. 통계도 그렇다. 2011년 생명의 전화가 설치된 후 지난해까지 위기 상담은 7221건이었다. 이 가운데 고등학생(17~19세)의 전화가 2017건이다. 20대(20~29세)는 2331건이다. 17~29세가 전체의 60%다. 남성이 여성보다 많았고 주로 저녁 시간에 전화가 많았다. 상담은 오래 걸린다. 짧게는 10~20분 걸리는데,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면 1시간도 훌쩍 넘기고 울면서 전화할 때도 많다. 상담사는 상담과정에서 극단적 선택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 구조대에 도움을 요청한다. 119, 경찰도 빠르게 돕는다. 노련한 판단이 필요하다.  
 
연령대·성별·이유가 다른데도 맞춤형 상담이 가능한 비결은 뭘까. 10년차 베테랑인 최씨는 “잘 듣고 공감해주는게 중요하다”며 “솔직하게 터놓고 대화하면서 그들을 이끌어줘야한다”고 말한다. 3년차인 손씨는 “전화를 받는 것보다 전화를 거는 게 더 힘들 수 있다”며 “다리위에서 4시간을 고민하고 전화를 건 사람도 있다”고 말한다. 손씨는 그들에게 “잘 버텨왔고, 혼자 고민말고 같이 이야기하자, 전화 잘했다”며 용기를 먼저 주는 편이라고 했다.      
최장숙(73)상담사가 SOS생명의 전화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김태호 기자

최장숙(73)상담사가 SOS생명의 전화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김태호 기자

"컴퓨터 로그인할 때 두려워" 

‘SOS생명의전화’ 상담을 오래한 상담사들은 업무가 익숙하고 편해졌을까. 손씨는 “출근해서 컴퓨터를 로그인 할 때마다 두렵고 떨린다”며 “어떤 날은 전화가 안오길 바라는데, 또 전화가 너무 안 오면 나쁜 일이 생길까 걱정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또 “내 말 한마디로 누군가 살면 그 사람과 가족, 주변 모두가 행복해지는 일”이라며 “누군가의 인생에 엄청난 순간을 마주한다는 생각을 갖고, 항상 새로운 각오로 출근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까. 손씨는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종교활동을 한다.가끔은 버스를 타고 시내를 한바퀴 돌며 머리를 비운다. 최씨는 지인들과 파크골프를 즐기고,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간다.  
 
2011년 7월 한강다리 위 'SOS생명의 전화'가 설치됐다. 현재는19개 교량 위에 74대가 마련됐다. 생명보험사회공단재단의 예산지원 등으로 운영된다. 약 50명의 상담사들이 365일 24시간 한강다리 위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다.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상담에 나선다는 최씨에게 언제까지 상담을 할건지 물었더니 “사람들이 내 상담을 받고 행복해지고 도움이 될 때까지 일하고 싶다”고 답한다. 손씨는 “팔 다리가 부러져도 목소리만 나오면 상담을 할 수 있다”며 “주변에서 하지 말라고 할 때까지 하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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