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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기자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기자 aseokim@joongang.co.kr

지난 6월 5일 전주 완산구 노송동에 있는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을 찾았다. 최근 규모가 줄어 17개 업소가 영업하고 있다. 밤이 되자 골목이 환해졌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6월 5일 전주 완산구 노송동에 있는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을 찾았다. 최근 규모가 줄어 17개 업소가 영업하고 있다. 밤이 되자 골목이 환해졌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옐로하우스 비가(悲歌·elegy)’에서 2회분에 걸쳐 대구 자갈마당 이야기를 다루는 동안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강제 폐쇄 아닌 점진적 변화 꾀해

‘전주는 시청 뒤에 있고 광주는 ‘양동시장이 유명하던데? ㅋ 거긴 아직 있다지?’(poaw****) 
‘원주역 집창촌은 안 없어지나요? 거기가 제일 심하지 않나요? 지금도 주인들은 큰소리 떵떵 치면서 장사하고 있는데.’(q266****) 
‘멍청하기 짝이 없다. 그냥 냅두지. 어차피 저런 곳에 성매매 여성들 전부 콜걸이나 다른 유사 성매매 업소로 다 빠지는데 저거 철거 비용은 국민 세금인데 세금 낭비다. 에혀. 차라리 잘 보존해서 이러한 역사도 있었다고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줘야지.’(godt****) 
 
자신이 사는 지역의 성매매 집결지 문제를 취재해달라는 이메일도 심심찮게 온다. 여성가족부의 ‘2016 성매매 실태조사’에 따르면 세종을 제외한 16개 광역시·도에 성매매 집결지 42곳, 1869개 업소가 있다. 자갈마당처럼 길게는 100년 이상, 대부분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킨 성매매 집결지와 주변 간 갈등, 개발 문제 등은 인천 옐로하우스만의 이슈가 아니다. 다른 지역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대구 자갈마당에 이어 전주의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을 찾았다. 
전주 선미촌을 위에서 바라본 전경. 왼쪽에 보이는 대로를 중심으로 골목마다 성매매 업소가 늘어서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주 선미촌을 위에서 바라본 전경. 왼쪽에 보이는 대로를 중심으로 골목마다 성매매 업소가 늘어서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선미촌은 전주 완산구 노송동 일대에 있다. 규모는 2만2760㎡(약 6890평)로 1950~60년대 현재 전주시청 자리인 전주역 주변에 사람이 모이면서 조성됐다. 선미촌에서 선미는 착하고(善), 아름답다(美)는 뜻이다. 원래 철도 둑 너머에 있다 해서 ‘뚝너머’라고 부르다 집결지 앞에 전주시청이 들어서면서 현재 이름으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시청이 바로 가까운 데다 지역 명문고가 불과 400m 거리에 있어 놀라웠다. 
 

성매수남 술 취해 길에 변 보기도 

 
20년 넘게 이곳에서 성매매 업소를 운영한 업주에 따르면 한 때 이곳 성매매 여성이 500명을 넘었다. 2004년 성매매 방지법 시행으로 잠시 규모가 줄었지만 이후 증가·감소를 반복하다 현재는 17개 업소, 25명 여성이 남았다. 2014년 전주시와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등이 집결지 환경을 바꾸는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하면서 많은 업소가 휴·폐업해서다. 시는 선미촌의 주요 거점 건물들을 매입해 여성 인권과 문화예술 공간으로 바꾸면서 집결지를 줄여나가는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개발 등으로 단시간에 집결지를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서서히 주변 환경을 바꿔 자연스럽게 폐쇄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옐로하우스·자갈마당 등과 다르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에 빨간 스프레이로 ‘철거’라고 써놓거나 매매 현수막을 걸어둔 업소들이 눈에 띄었다. 빨래 건조대에 하얀 수건들이 널려 있는 곳이 영업하는 집이라고 했다. 영업시간은 오후 8시부터 오전 5시 정도. 예전 사람이 붐빌 때는 오후 6시부터 오전 6시까지 불을 밝혔다. 업주는 현재도 비정기적으로 일하는 여성까지 더하면 100명 정도라고 했지만 전주시 측은 “그 정도로 많지 않다”고 일축했다. 이곳 업소는 대부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방’ 형태다. 여성들이 통굽 구두를 신고 다리가 긴 스탠드바 의자에 앉아 남성을 기다리는 구조다. 업주는 “개발이다 뭐다 한 뒤로 손님이 줄어 호객·주방 이모 다 내보내고 부인이 대신한다”고 말했다. 
시가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하면서 이곳을 찾는 남성이 줄자 문을 닫는 업소들이 생겼다. 프리랜서 장정필

시가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하면서 이곳을 찾는 남성이 줄자 문을 닫는 업소들이 생겼다. 프리랜서 장정필

이곳을 찾는 남성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입대를 앞둔 20대, 이혼·사별·별거 등으로 혼자 사는 남성, 결혼한 지 꽤 된 기혼 남성이다. 젊은 기혼자들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고 했다. 옐로하우스에서도 그랬듯 장애인이나 노인들도 가끔 모습을 보인다. 한 주민은 “남성들이 정말 많이 온다”며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오거나 옷을 잘 빼입은 사람들이 좋은 차를 몰고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이에 따르면 단골 가운데 초·중·고교 교사도 있다. 한 주민은 “술에 취해 골목에 변을 보고 간 사람도 있다”며 혀를 찼다. 
 

인권·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 시도 

 
이 지역은 낡은 주택가와 인접해 있다. 낮에는 주민 외에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곳을 지나게 된 사람들은 성매매 여성 또는 성 구매자로 오인당할까 봐 걸음을 재촉했다고 한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버려진 땅’이었다. 송경숙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장은 “주민들이 성매매 지역이라고 낙인찍힌 것에 대한 상처가 컸다”며 “시청 뒤에 산다고 얘기를 못하는 것부터 사돈을 집에 초청하지 못하거나 학생들은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등 고통이 있었다”고 말했다. 
 
2004년 성매매 방지법 시행 전에는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물리적 감금도 있었다고 한다. 고통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약에 의존하는 여성도 있었다. 송 센터장은 “몇 년 전 한 성매매 여성이 숨졌다. 약물 과다 복용이 원인이라고 알려졌는데 장례식도 제대로 못 치르고 떠났다”며 “여성들이 수면제와 다이어트 약을 상시 먹는데 몸매 관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약을 먹어야 몽롱한 환각 상태에서 밤새 시달리는 걸 버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주시는 과거 성매매 공간으로 쓰이던 곳을 없애지 않고 보존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주시는 과거 성매매 공간으로 쓰이던 곳을 없애지 않고 보존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주시는 갑자기 집결지를 폐쇄할 경우 주변의 불특정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가 발생할 수 있으며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시는 2014년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과거 성매매 업소로 이용하던 건물과 빈 건물 등 6채를 사들였다. 이 건물들을 기억의 공간, 문화센터, 업사이클센터, 예술가 책방, 전시관 등으로 바꾸는 작업 중이다. 임시 현장시청으로도 사용했다.
 
현장시청은 전주시가 현장에 설치하는 사무실로 현재는 50년 된 성매매 업소를 임대해 1층에 있던 방 4개를 허물고 책상을 들여놨다. 2층에는 성매매하던 방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시에 건물을 판 건물주들의 이력은 골프 강사, 군인 등으로 다양했다. 성매매 여성 출신의 건물주도 있었다. 한 건물주는 경기도 평택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홍등가를 찾는 새로운 손님들

 
선미촌의 변화를 처음 주도한 것은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였다. 2000년 여성 5명이 숨진 전북 군산시 윤락가 화재 사건이 계기였다. 2014년 여성센터를 중심으로 선미촌 정비를 위한 민관협의회가 발족됐고 당시 시장 후보였던 김승수 전주시장이 문제 해결 의지를 보였다. 김 시장은 당선 이후 경찰 등 유관기관의 협력을 끌어내 적극적으로 사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시는 도로 정비 등 기반시설 확충에도 나섰다. 
낮에는 업소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건조대에 하얀 수건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간밤에 영업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프리랜서 장정필

낮에는 업소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건조대에 하얀 수건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간밤에 영업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프리랜서 장정필

이후 많은 변화를 끌어냈다. 도로를 다니는 사람들이 늘었고 성매매 업소가 줄면서 자발적으로 다른 업종이 들어왔다. 지난해 7월 선미촌 골목 입구에 문을 연 예술촌 칡냉면이 대표적이다. 지난 3월에는 현장시청 건너편에 또 다른 음식점이 들어섰다. 성매매 업소를 그만두고 식당을 열겠다고 상담한 업주도 있다. 이런 변화상을 보기 위해 지난해 다른 지역 공무원, 여성인권 단체 회원 등 520명이 이곳을 찾았다. 이들이 선미촌의 새로운 손님이 된 셈이다. 
 
밤이 되자 선미촌은 본래의 색깔을 드러냈다. 업소들이 드문드문 불을 켜자 골목은 금세 환해졌다. 20㎝는 족히 넘을 듯한 통굽 샌들을 신은 여성들이 짧은 원피스를 입고 나와 유리방 의자에 앉았다. 창문을 까맣게 칠한 승용차들은 속도를 늦춘 채 집결지를 돌며 유리방을 주시했다. 인천 옐로하우스에서는 여전히 여성들과 조합 등이 대립하는 상황. 과연 전주시의 실험은 순조롭게 성공으로 마무리될지 궁금해졌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의 집창촌 속칭 ‘옐로하우스’. 1962년 생겨난 이곳에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으로 업소 철거가 진행되는 가운데 성매매 업소 여성 등 30여명은 갈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불상사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벼랑 끝에 선 여성들이 마음속 깊이 담아뒀던 그들만의 얘기를 꺼냈다. ‘옐로하우스 비가(悲歌·elegy)’에서 그 목소리를 들어보고 있다. 
 
전주=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27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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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하우스 비가’ 1~25회를 보시려면 아래 배너를 클릭해 주세요. 클릭이 안 될 시 https://news.joins.com/Issue/11161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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