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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다가오는 절대고독, 난 그와 친해지려 한다

중앙일보 2019.08.24 08:00

[더,오래] 한순의 시골 반 도시 반(9)

꽃분홍색 화사함을 뽐내는 배롱나무. (사진은 전남 강진의 백련사 배롱나무) [중앙포토]

꽃분홍색 화사함을 뽐내는 배롱나무. (사진은 전남 강진의 백련사 배롱나무) [중앙포토]

 
꽃의 하안거 저기서 무엇인가 다가온다. 절정을 뽐내던 배롱나무 꽃잎이 살짝 그늘을 드리우며 주름 끝 수분을 안쪽으로 내리던 날. 꽃분홍색 배롱나무 그늘에 앉아 먼 곳에서 다가오는 무엇을 바라본다. 그곳에서 나는 발목까지 찰랑거리는 면 스커트에 푸른색 운동화 뒤축을 접어 신고 손에는 아이들 간식과 과일이 든 바구니를 들고 걸어오고 있다.
 
내소사 절 입구 다리에 걸터앉아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간식 바구니에서는 여름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사과 향이 올라오고, 짓궂은 두 녀석은 자라느라 고단한 얼굴에 허연 버짐을 얹고 산사 입구를 뛰어다닌다. 너무 평화로워 망막하기까지 했던 내소사 산사의 여름은 나무와 절과 하늘과 구름을 제외한 떠다니는 빈 곳이 보였다. 
 
그 여름날, 어느새 나이 먹은 나는 둥실 공간 위로 떠올라 그날의 젊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랄 것이고, 나는 나이를 먹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젊은 날의 한 시절, 오늘 이 순간을 떠올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오늘 이 느낌을 사진에 담아두고, 나이 든 어느 날, 이 사진을 다시 한번 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소사의 유래를 보러 간 것이 아니었다. 내소사의 향기와 빈 곳이 그리워 갔을 것이다. 어쩌면 망막함의 구체적 느낌이 더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삶은 망막함이다. 망막함을 빼놓고 어찌 삶을, 사람을 이야기하랴. 시어머님은 중풍으로 누워 계시고, 아이들은 자라고, 만들어야 하는 책의 분야는 역사에서 철학으로, 문학에서 실용으로 장르를 오가고 있었으니 재미있으면서도 망막한 그 시절이었다.
 
시골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이들과는 자연스레 떨어져 있게 되었다. [사진 pixabay]

시골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이들과는 자연스레 떨어져 있게 되었다. [사진 pixabay]

 
시골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이들과 나는 일주일에 며칠을 자연스레 떨어져 있게 되었다. 시골에 같이 사는 이웃이 아이들의 안부를 물으며 “엄마, 아버지가 독립했구먼요”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워킹맘으로 아이들에게 늘 모자란 엄마였으므로, 더 진한 애착으로 아이들에게 눈과 마음을 두고 있다. 두 아들의 고3 시절 야간자율 학습이 끝나기 전에 잠자리에 들어본 적이 없다. 사과 파이를 사다 놓고, 혹은 간단히 먹을 간식거리를 옆에 놓고 아이들의 발소리를 기다렸다.
 
그런 고3 시절이 지나고 대학을 가고, 군대를 다녀오고 아이들의 목은 굵어졌다. 아이들의 뒤통수에 대고 뭐라 뭐라 말해도 그 말은 내 가슴으로 돌아올 뿐, 아이들에게 전달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날, 문득 아이들이 너무 커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축하하고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불현듯 젊은 여름날 내소사의 풍경이 가슴 한쪽으로 떠오르며 어느 날 내가 이 한장의 사진을 꺼내볼 나이가 바로 지금이라 짐작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하고 진한 애착 덩어리들을 끌고 모든 인연에서 벗어난다는 산사를 찾았던 여름. 아마도 난 지금 언저리 어떤 시절을 예상하였나 보다. 
 
여름 한 시절 어느 시기를 정점으로 나뭇잎들의 밀도가 떨어지고, 꽃잎 끝의 수분이 줄어든다. 저녁 창의 바람이 서늘하게 팔뚝을 스치면 가슴이 철렁한다. 사물을 제외한 빈 곳의 노크이다. 자고이래 모든 애착에서 깨어나 깨달은 여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사람을 죽이는 전쟁터 총부리 앞에 꽃을 들고 나서 목숨을 걸고 다 같이 살아보겠다는 진한 애착, 아이를 출산한 엄마가 죽자 할머니의 가슴에서 젖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모진 여성의 본질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뭇 여성들이 그러하듯, 나도 엄마처럼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어려서 내가 바라본 엄마는 몸에 경련이 일어도 식구들을 위해 밥을 하고 오빠들 와이셔츠의 각을 세워 다렸다. 나는 엄마에게 반항이라도 하듯 아버지의 낡은 점퍼와 오빠들의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주말이면 산에 오르기도, 록 클라이밍을 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주말이면 산에 오르기도, 록 클라이밍을 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주말이면 산에 올랐고, 록 클라이밍(Rock climbing)도 마다치 않았다. 로프 없이 하는 족두리봉 클라이밍이 익숙해지자 점점 인수봉으로 눈이 갔다. 인수봉은 멤버와 로프 그리고 크라임 신발까지 갖추어져야 할 수 있는 전문가 코스이다. 
 
그런데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엄마의 눈이었다. 보이지 않는 엄마의 눈이 자꾸만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모든 장비가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상당한 위험이 내재한 곳이 인수봉 클라이밍 코스였다. 인수봉에 대한 사모는 깊어가고 마음속 엄마의 눈은 호소에 젖어 클라이밍을 말리고 있었다.
 
클라이밍 신발을 살까 말까 망설이며 추석날 저녁에 선배 언니와 북한산 자락에서 만났다. 집에서 싸 온 부침개를 먹으며 달빛에 반사되는 인수봉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제까지 내가 만났던 세계와는 다른 신비로운 세계가 다가왔다. 나는 클라이밍 신발을 사기로 결정했다. 푸른 달빛에 상앗빛 우뚝 솟은 인수봉은 마음속의 갈등을 무효화시키며 푸른 심연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이런 마음속의 갈등을 숨기고 등산을 가려 크렉터를 찾으니 신발이 간 곳이 없었다. 어머니는 외출했고 집에는 아무도 없어 나는 신발을 찾느라 집안 온 구석을 들쑤시며 다니기 시작했다. 화장실 저쪽 끝에 커다란 고무통이 뚜껑을 머리에 이고 고요히 앉아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무통 뚜껑을 열었다.
 
고무통 깊숙이 내 등산화가 얌전히 들어가 있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하며 등산화를 꺼내지 못했다. 어머니의 직감이 나의 클라이밍을 말리고 있었다. 나는 고무통 앞에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지기로 마음먹었다. 어머니는 내 마음의 갈등도 그리고 심연의 세계로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려는 나를 그대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무릎을 살짝 덮는 치마를 입기 시작했다. 너무 아프고 힘든 사랑을 하는 엄마에 대한 반항이 1차로 무너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유치원 선생님 자격증을 가지고도 아이들을 가르치려 현장에 가지 않았다. 아이들이 예쁘다기보다는 잘 돌보아야 할 대상이라는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세상에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 자식을 낳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결혼하고도 아이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가자 시할머니께서 "아기 안 낳을 거면 밥도 먹지 마라" 하시며 웃으셨다. 그제야 결혼과 아이가 이어지는 과정 중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를 낳으려면 내가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에 흑염소를 주문했고, 그것을 열심히 먹고 아이를 가져야겠다 생각했다. 
 
이렇게 미숙하게 시작해 엄마가 된 나는, 좌충우돌, 우왕좌왕의 연속이었다. 나는 내가 왜 뛰어다니는지도 모르고 뛰어다녔고, 현기증에 눈앞이 아득해져도 아이들 숙제와 영어를 붙들고 씨름했다. 오 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일찍이 어른들의 고생이 눈에 들어왔고, 약간의 허무와 살짝 낀 방랑기로 중무장하여 있었다. 
 
그런데 내 아이들 앞에서 허무와 방랑기는 여지없이 무너졌고, 우리 어머니 모습처럼 진한 애착과 아픈 사랑을 나름대로 행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사흘 떨어져 있는 시골 생활에서 처음으로 아이들과 나 사이를 바라보게 되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저 어린것들이 나를 부축하고 여기까지 왔구나”를 절절히 느끼는 시간이다. 저 어린것들이 나를 부축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나는 저 아이들에게 무겁게 기대지 말고 자유를 주고 싶다. 그래서 시골에서 사는 일로 연습에 들어가 아이들과 나 사이를 만들고 싶다. 
 
깨달음에 도달해 집착을 버리고 자유를 얻은 여성은 없었다. 여성은 깨달음에 도움을 주거나 세상을 구하는 자의 밑돌은 되었을지언정 깨달은 자가 되지는 못했다. 나도 엄마처럼 깨닫지 못할 것이다. 온몸의 직감으로 자식들의 보이지 않는 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저 사이로 무엇인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시골 3일 저 숲속 저 멀리서 다가오는 저것. 그것은 바로 ‘절대 고독’ 이다. 깨달아도, 깨닫지 못하여도 비껴갈 수 없는. 사랑해도 소용없고, 사랑하지 않아도 소용없는 절대자. 나는 아주 천천히 친해지려 한다. 가급적 아주 천천히 친해지거나 싸울 것이다. 저기 저 먼 곳에서 무엇이 다가오고 있다.
 
한순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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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 한순 시인,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필진

[한순의 인생후반 필독서] 노후에 들어선 사람은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는 게 필요하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예전에 밑줄 치며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어보는 것이다.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 인생 후반부에 제2의 사춘기를 겪게 될지 모른다. 흔들리는 대로 나를 맡겨보자. 또 퇴직하게 되면 만나는 사람의 범위가 좁아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외로움과 고독이 밀려온다. 이럴 때 책 읽기는 세상에 둘도 없는 절친이 돼 줄 수 있다. 출판사 대표가 인생 후반부의 필독서는 어떤 게 있고 책 읽기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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