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터키 산악지역의 '휘파람 언어'가 500년간 살아남은 이유는?

중앙일보 2019.08.24 06:00
터키 동북부 산간의 쿠스코이 마을에는 500여년 간 이어져 내려오는 독특한 휘파람이 있다. 주민들은 “사람 이름이나 숫자 등 거의 모든 말을 휘파람으로 묘사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 소리가 산새의 지저귐을 닮았다고 해서 현지인들은 ‘새 언어(쿠쉬딜리)’라고 부른다. 쿠스코이란 지명도 새 마을이란 뜻이다.  

 
터키 동북부 산간 쿠스코이 마을 아이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새 언어'로 불리는 휘파람을 불고 있다. [데일리사바 캡처]

터키 동북부 산간 쿠스코이 마을 아이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새 언어'로 불리는 휘파람을 불고 있다. [데일리사바 캡처]

‘휘파람 언어’의 기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쿠스코이 마을은 ‘흑해의 알프스’로 통하는 폰투스 산맥, 1000m가 넘는 준봉들 사이에 있다. 아사히신문은 터키 정부를 인용해 “민가가 산재해 있는 흑해 연안의 산악 지대 각지에서 휘파람이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된 것이 확인됐다”고 20일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나 에게해 섬 등지에도 비슷한 형태의 휘파람 언어가 남아있다.  
쿠스코이 마을 위치. [구글지도 캡처]

쿠스코이 마을 위치. [구글지도 캡처]

‘긴급보호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이처럼 오랜 전통을 지닌 휘파람 언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원거리 통신수단인 휴대전화 보급율이 올라가면서 주민들이 굳이 휘파람 언어를 배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 노인들이 손주들에게 재미 삼아 휘파람을 가르치는 수준이다. 휘파람 언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유네스코는 2017년 ‘긴급보호가 필요한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휘파람 언어를 등재했다. 
 
급기야 현지 대학이 휘파람 언어 살리기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현지 매체인 데일리 사바에 따르면 같은 기레순주(州)의 기레순 대학이 2021년부터 관광학부 선택과목으로 휘파람 언어 강의를 채택하기로 했다. 무사 젠쉬 관광학부장은 데일리 사바에 “휘파람 언어가 조만간 ‘전시 언어(show language)’로 전락하고 결국엔 사어(死語)가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며 “전통 보존과 후세대 계승을 위해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지인 수준의 전문가를 목표로 3년간 학습하는 종합과정 개설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수자들을 쿠스코이 마을에 투입해 ‘에코 관광’을 활성화시킨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1차대전 때 러시아 진격 피해        

쿠스코이의 휘파람 언어는 터키어를 근간으로 짧은 형태의 어휘를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혀끝을 역삼각형 모양으로 말아서 소리를 내는데, 더 멀리 울릴 수 있게 손가락을 입에 넣기도 한다. 휘파람 소리가 얼마나 멀리 전파되는지 학술적으로 규명되진 않았지만, 현지 매체들은 “휘파람의 데시벨이 높아서 수㎞ 떨어진 거리에서도 들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렇기에 전술적인 가치도 있다. 아사히신문은 현지 주민들의 전언을 토대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휘파람 언어의 활약상을 전했다. 오스만투르크 시절 러시아군이 흑해 지역으로 대거 진격해오자 “러시아 병사가 들어왔다”는 내용을 휘파람 언어로 빠르게 전파해 주민들을 전원 대피시켰다고 한다.   
 
세상은 ‘5G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일부 언어학자들은 여전히 휘파람 언어의 효용을 주장한다. 산세가 험한 지역에서 홍수나 산사태가 발생했을 때 긴급 조난 구호용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휴대전화 전파가 닿지 않는 험한 오지에서도 휘파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려퍼지기 때문이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