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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기 삶는 냄새에도 눈물 흘렸던 시인…그가 궁금하다

중앙일보 2019.08.23 15:00

[더,오래] 전새벽의 시집읽기(41)

정선선 기찻길의 눈밭을 헤치고 달리는 기차. [중앙포토]

정선선 기찻길의 눈밭을 헤치고 달리는 기차. [중앙포토]


늦은 저녁 때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박용래, 「저녁눈」 전문
 
좋은 예술이란 '이 사람 누구야'라고 묻게 하는 것이다. 이 좋은 노래 만든 사람 누구야, 이렇게 멋진 소설 쓴 사람 누구야, 이 시를 세상에 남긴 사람 대체 누구야 하고 묻게 되는 것 말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신변잡기, 보통 세 가지 중 하나의 결론을 맺게 되는 것 같다. 알아보니 더 좋아지거나, 오히려 싫어지거나, 아니면 별로 인상 깊은 이야기가 없어 곧 그 사람을 잊게 되거나. 어쨌거나 나는 위의 시를 읽고 '박용래 이 사람 누구야'라고 며칠을 묻고 다녔으니, 와중에 고 이문구 소설가께서 쓰신 「박용래 약전」이 있다는 건 무척 감사한 일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내용을 보니 이런 일화가 적혀 있다.
 
박용래 시인(왼)과 이문구 작가(오). [중앙포토]

박용래 시인(왼)과 이문구 작가(오). [중앙포토]

 
이문구와 박용래, 두 작가가 아침에 만나 해장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돈도 있고 헤어지기도 섭섭해 그만 술자리가 저녁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헤어지는 길, 이 소설가가 박 시인을 오류동 자택까지 배웅했다.
 
그런데 조심히 가시라는 말에 박 시인은 대꾸가 없었다. 그러더니 여기까지 왔는데 이 동네 술 딱 한 잔만 하고 가라고 하더란다. 그냥 가면 "나 오늘도 울 거야"라면서. 이 소설가는 이런 일화들을 소개하며 박 시인을 '눈물의 시인'이라 명명한다.
 
그는 자주 울었다. 내가 울지 않던 그를 두 번밖에 못 보았을 정도로 그리 흔히 울었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조용한 것, 알뜰한 것, 인간의 손을 안 탄 것, 문명의 때가 아니 묻은 것, 임자가 없는 것,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저절로 묵은 것……. 그러기에 그는 한 떨기의 풀꽃, 한 그루의 다복솔, 고목의 까치둥지, 시래기 삶는 냄새, 오지 굴뚝의 청솔 타는 연기, 보리누름철의 밭종다리 울음, 삘기 배동 오르는 논두렁의 미루나무 호드기 소리, 뒷간 지붕 위의 호박 넝쿨, 심지어는 찔레 덤불에 낀 진딧물까지, 그는 누리의 온갖 생령(生靈)에서 천체의 흔적에 이르도록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었으며, 사랑스러운 것들을 만날 적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때가 없었다.
- 이문구, 「박용래 약전」 중
 
아침 해장술을 저녁까지 마시고도 한잔 더하자고 청하는 박용래는 남다르게 술을 가까이 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감히 만나본 적 없는 그를 헤아려보건대, 그는 울다 울다 눈물이 마르면 시를 써서 대신 울고, 말라버린 눈물을 술로 채우며 살았던 게 아닌가 싶다.
 
이 눈물 시인의 삶에는 아름다운 것과 슬픈 것이 어찌도 그리 많은가. 사람들은 그가 가진 정한(情恨)의 배경으로 시인이 일찍이 여읜 누이 '홍래'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어릴 적부터 유독 가까웠던 남매는 누이가 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나면서 안타까운 이별을 하게 된다. 남은 동생은 여러 편의 시를 통해 누이를 추억했다.
 
오동꽃 우러르면 함부로 노한 일 뉘우쳐진다.
잊었던 무덤 생각난다.
검정 치마, 흰 저고리, 옆 가르마, 젊어 죽은 홍래 누이 생각도 난다.
오동꽃 우러르면 담장에 떠는 아슴한 대낮,
발등에 지는 더디고 느린 원뢰.
-「담장」 전문
 
원뢰(遠雷)란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을 말한다. 천둥소리 들려오기 시작했으니 곧 비가 올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비가 오기도 전에 흠뻑 젖었다. 함부로 화를 냈던 기억들에 흠뻑 젖었다. 그 한이 죽은 누이에 대한 그리움과 한데 뒤엉켜 다섯 줄 짧은 시가 되었다. 와중에 '아슴한'이라는 시어가 눈에 띈다. 사전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은 이 표현에 대해서는 나호열 시인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모양이나 상태가 흐릿하여 보일 듯 말듯 잘 보이지 않거나 기억이 알 듯 말 듯 한 상태, 또는 어떤 정서가 확연히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가랑비에 살이 젖듯 살포름할 때 우리는 곧잘 '아슴하다'라고 표현하지만 정확하게 '아슴푸레하다'의 용법을 취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아슴하다'가 주는 느낌이 '아슴푸레하다'보다는 더 세밀하고 내밀한 정서를 포용하고 있음을 놓치고 싶지는 않다.      - 나호열 시인 블로그

 
박용래 시인의 시집「강아지풀」. [사진 민음사]

박용래 시인의 시집「강아지풀」. [사진 민음사]

 
박용래는 1925년 충남 논산의 강경면에서 태어나 1955년부터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했으나 30여년 간 단 3권의 시집밖에 출간하지 않았다. 시를 많이 짓지 않은 이유로는 술 마시느라 바빠서 그런 것 아니겠냐는 의심을 해보지 않을 수 없겠으나, 그의 시에 대한 세간의 평을 보면 그가 원체 말을 절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으로 보이기도 한다.
 
조창환은 그의 시의 미적 특성을 결정짓는 것이 '미묘한 여백과 여운의 처리'라고 했다. 또, 신경림은 그의 시 한 편을 두고 '종결어미를 일절 쓰지 않으면서 극도로 말을 아낀 대담한 생략으로 시골 장날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그려냈다'고 한 바 있다. 신 시인이 지목한 시는 '짓광목 차일/설핏한 햇살//사,오백평 추녀 끝 잇던/인내 장터의 바람'으로 시작하는 「차일」이라는 시다.
 
'이 사람 누구야'로 시작된 예술가의 발자취 훑기는 종종 별것 아닌 일화에서 결론을 맺기도 한다. 나의 박용래 훑기 또한 그렇다. 어느 날 박 시인이 이문구 소설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서울에 가는데 아침에 서울역에서 좀 보자는 것이었다. 나가보니 박 시인은 돈뭉치를 가슴에 꼭 안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딸의 대학 등록금인이란다. 큰돈을 가지고 돌아다니자니 영 불안해 대학까지 같이 좀 가자는 것이었다.
 
시골 사람이 큰돈을 들고 서울에 왔으니 불안할 법하다 싶지만, 박용래는 과거 조선은행(지금의 한국은행)에 근무했던 은행원이었다. 심지어 다량의 현금수송업무를 하기도 했던 그가 고작 대학등록금 가지고 쩔쩔매는 것이 우습지 않은가.
 
하지만 그 소심함이 그가 가진 섬세한 시 세계의 근간이 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돈 자랑이 하나의 문화처럼 되어버린 지금의 시대에는, 돈 무서운 줄 알았던 한 소심한 시인의 마음이 그립기도 한 법이라, ‘이 사람 누구야’로 시작한 나의 박용래 훑기는, ‘그를 좋아해도 되겠다’는 결론을 맺으며 끝이 난다는, 그러한 이야기다.
 
전새벽 회사원·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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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새벽 전새벽 작가 필진

[전새벽의 시집 읽기] 현역 때는 틈틈이 이런저런 책을 통해 필요한 정보들을 얻었다. 인터넷 사용법부터 블록체인에 이르기까지. 은퇴 후에는 조금 다르다. 비트코인과 인공지능보다는 내 마음을 채워줄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필요하다. 어쩌면 시 읽기가 그것을 도와줄지도 모른다. 중장년층에 필요할 만한, 혹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시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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