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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조국의 강남 좌파, 싸가지 없는 진보로 추락하다

중앙일보 2019.08.23 00:14 종합 31면 지면보기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강남 좌파가 반쯤 죽었다. 조국 개인의  몰락은 끝이 아니다. 강남 좌파를 자처하며 조국이 내걸었던 진보의 운명은 사망 위기에 처했다.
 

말과 삶 다른 위선적 진보에 분노
선량한 강남 좌파까지 비난 받고
법무장관 출세 집착은 염치 없어
강남 좌파를 욕되게 하지 말아야

조국은 강남 좌파로 불리는 차별화된 진보의 아이콘이었다. 고학력·고소득 계층을 뜻하는 강남과 프롤레타리아적 의식을 가진 좌파의 이질적 결합은 대중을 흡인했다. 서울 강남에 살면서 서울대·버클리대 로스쿨 학벌, 서울대 교수, 공개된 재산만 56억원에 달하는 재력, 국가보안법 전과자라는 민주화 훈장까지 단 그의 완벽한 스펙은 강남 좌파의 전형이었다. 586 운동권 세대의 낡은 진보와 다른, 지적이고 세련된 진보에 세상은 때로 호응했다.
 
그가 쏟아낸 진보적 가치는 인상적이다. “정치에서는 진보, 생활에서는 보수라는 이중성”을 배격하고, “카스트 세습사회를 깨기 위한 공정 경쟁”이 필요하고, “정글의 법칙에 대한 자발적 굴종”을 경계하고, “먹고사니즘과 배금주의”를 탈피하자고 외쳤다. 그런 호소는 서민을 위하는 척하면서도 탈법을 일삼으며 부르주아적 삶을 즐긴다는 강남 좌파의 부정적 이미지를 바꿨다. 정글자본주의 폐해를 완화하고 약자의 아픔을 함께하는 리버럴 진보 집단을 형성하는 데도 일조했다.
 
조국의 진보 정치가 다르리란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1970~80년대의 ‘민주 대 반민주’ 프레임을 우려먹던 86세대 운동권의 퇴행적 진보와 차이가 없었다. 꼰대 진보는 권위주의 정권과 싸운 것 말고는 딱히 내세울 게 없다. 민주화 완장을 찬 그들은 산업화 세력에게 ‘수구 기득권’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시대착오적 권력 투쟁에만 매달린다는 비판을 조국도 안다.
 
그는 말했다. “민주 대 반민주 또는 민족 대 반민족이라는 낡은 구도를 버리지 못하고, 낡은 축음기로 흘러간 옛 노래 음반을 돌리는 진보는 수구·무능 좌파라는 욕을 들어 마땅하다”고 일갈했다. (조국 『성찰하는 진보』) 그런 그가 민주 대 반민주를 ‘애국 대 친일’ 구도로 바꾼 것을 빼고는 꼰대 진보와 똑같은 수법을 써먹었다 ‘죽창’을 시작으로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 ‘친일파 매국노’ 등 자극적 언어를 들먹이며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반대편을 공격했다. 자신은 애국적 민족주의적 진보 인사인 양 아우라를 조작했다.
 
그래도 도덕성만은 믿었다. 이 정권 실세 중에서 무수히 본 사이비 진보들처럼 위선적이지 않길 바랐다. 자신은 아파트 여러 채를 가졌으면서도 남들은 투기꾼으로 몰고, 강남 떠나라면서 자신은 눌러앉고, 평등 교육을 주장하면서 자식은 외고·특목고로 진학시키는 겉과 속이 다른 진보를 경멸한 게 그였다. “진보는 약자나 빈자의 편입니다. 계층 상승의 통로가 막힌 사회는 신분사회입니다. 어느 집안에서 태어났는가가 삶을 결정해버리는 사회, 끔찍하지 않습니까”(조국 『진보집권플랜』) 란 외침은 가슴 뛰게 했다. 모든 게 착각이었다.
 
오늘의 막장 부조리극은 그래서 더 역겹다. 70억원대 사모펀드와 부(富)의 대물림, 위장 이혼·소송, 수상한 부동산 거래, 구린내가 진동하는 딸의 특혜를 보면서 참을 수 없는 배신감이 밀려온다. “특권은 부정되고 인간은 존중받는 것이 민주주의의 요체가 아니던가.”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 한때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며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없다”고 부르짖던 인물의 이중성이 놀랍다.
 
이쯤 되면 악어의 눈물이라도 흘릴 줄 알았다. “가짜뉴스” “긍정적 사회 개혁에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엔 분노보다 슬픔이 치민다. 인사청문회 하루만 망신을 버티면 대통령이 임명할 게 뻔하고, 기어코 장관에 올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배짱이다. 혹시 이런 심정과 각오는 아닐까.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책 마무리에 그는 썼다. “영화배우 오드리 햅번은 재치 있게 말했다. 불가능한 것은 없다. 불가능(Impossible)이란 단어 자체가 나는 가능하다(I’m possible)라고 말한다”며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냐”라고 적었다. 그렇다면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표현을 빌려, 그게 파멸로 이끄는 치명적 자만(fatal conceit)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비련의 가족 드라마로 덧칠하려는 청와대와 집권세력의 눈물겨운 감싸기가 애처롭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진보 정권의 실체가 이런 거라면 진정 거부하련다.
 
세간에선 강남 좌파의 속살을 봤다며 혀를 찬다. 입만 산 겉멋 든 기회주의자가 됐고, 배부른 자가 배고픈 척한다는 비웃음을 산다. ‘강북 우파’가 있어야 하듯 강남 좌파가 함께 살아야 양쪽 날개로 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다. 그런 진보의 싹을 밟고, 이율배반적 삶을 살아온 가식적 진보주의자가 헌법을 수호하는 법무장관 출세에 집착하니 참으로 염치없다. “자기주장만 하는 강직성과 진보라는 우월성에 갇혀 대중성과 민심에 다가가지 못하는 진보”를 ‘싸가지 없는 진보’라고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말했다. 강남 좌파를 싸가지 없는 진보로 추락시킨 조국의 죄가 무겁다. 더는 강남 좌파를 욕되게 하지 말라.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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