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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한땀 한땀…꽃보다 아름다운 전통자수 지킴이

중앙일보 2019.08.22 10:00

[더,오래]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17)

한 4년 전쯤 나는 우연히 81세로 세상을 떠난 중요무형문화재 한상수 장인의 마지막 작품을 본 적이 있다. 그 때의 생생한 감동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한국의 자수 색감이 이런 장인들 덕분에 아름답게 보존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장옥임 장인. [사진 이정은]

장옥임 장인. [사진 이정은]

 
장옥임 장인(73)은 35년간 인사동에 위치한 국제자수원에서 전통공예장식품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장인의 작업공간에는 전통자수기법으로 만든 오묘한 색상의 자수 제품들이 즐비했다. 그는 명주실로 한 땀 한 땀 정성껏 자수를 놓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동양자수는 천·실·문양·용구·기법·용도 등 모든 면에서 서양자수와 다르다. 천은 공단이나 명주 같은 비단이 주류고, 실은 견사로서 푼사·반푼사·꼰사·깔깔사·금은사 등을 사용한다.
 

가장 오래된 동양자수는 부여의 흰옷

문양은 동양화적인 사실 표현을 위주로 하되, 간단한 생활용품에 놓는 자수도 사용한다. 동양자수는 3㎝ 정도 길이의 가는 바늘을 쓴다. 동양자수로 가장 오래된 유품은 삼국시대 이전 부여의 흰옷이 아닌가 짐작된다. 역사책엔 ‘부여 사람들은 비단 자수를 놓은 옷, 여러 색실로 짠 금직 모직물 등을 입었다’고 기록돼 있다. 통일신라 시대에도 의복을 장식하는 장식자수가 성행했다고 한다. 병풍, 부채, 마차의 장식, 집안의 치장 등 실생활 전역에 자수가 활용됐다.
 
고려시대에는 귀족은 물론 일반백성의 복식에까지 지나치게 사치스런 장식자수가 사회풍조를 어지럽힌다며 이를 막는 국법이 제정될 정도다. 고려시대에 이미 자수가 널리 확산됐음을 『고려사』와 『고려도경』같은 기록에서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자수는 규방문화와 함께 여성 생활의 일부로 등장, 한국 전통자수의 꽃을 피웠다. 박물관에서 자수를 보면 조선시대 여인의 규방문화가 탄생한 배경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조선은 남존여비의 성리학 중심의 사회였다. 여성의 바깥 활동이 제한되면서 자수는 집안에서 소일할 수 있는 생활 문화로 자리잡았다.
 
송학 자수. [사진 이정은]

송학 자수. [사진 이정은]

 
조선시대의 자수를 용도별로 불교자수, 생활자수, 감상용 자수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불교자수의 내용은 수불, 불방석, 다라니주머니, 탁의 등 종류가 다양하다. 이 기법은 주로 자련 수법으로 작품 연대가 올라갈수록 가는 실을 썼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생활자수로는 신분과 권위를 나타내는 흉배 등이 있으며, 평복에도 수복과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문양의 수를 놓았다.대표적인 감상용 자수인 병풍은 바탕 그림에 따라 산수도, 화조도, 십장생도, 백수전도 등이 있다.
 
작가와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자수병풍으론 동아대학교에 소장된 신사임당의 초충도가 있다. 신사임당의 고향 강릉에는 동양자수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2011년 강릉시 오죽헌 예술 창작촌에서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조선 궁중 자수를 비롯한 한국 자수 260여 점, 중국·일본 등 동양자수 140여 점, 자수 관련 도구 100여 점 등 총 5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수병풍 등 조선시대 궁중 자수, 버선본집, 수저집, 수 보자기 등 생활용 자수와 회화용 액자수, 근현대 자수 등도 관람할 수 있다.
 
주로 조선시대 어좌의 뒷편에 나왔던 일월오봉도 자수의 일부. [사진 이정은]

주로 조선시대 어좌의 뒷편에 나왔던 일월오봉도 자수의 일부. [사진 이정은]

 
하지만 이처럼 흥하던 자수는 일본 강점기 재봉틀과 양장의 등장으로 점차 쇠퇴했기 시작했고, 한옥이 아파트에 밀려나면서 거의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장옥임 장인은 1960년대 고향 전남 나주에서 외숙모로부터 자수를 우연히 배우다가 이에 매료돼 더 큰 시장이 있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 당시 서울에선 동양자수는 시장이 아니라 조선호텔에서 주로 팔았어요. 그만큼 그 당시 고가품이었죠. 1970년대 아파트 문화가 들어서기 전만 해도 결혼하는 여성은 최소한 2개의 자수병풍을 장만했어요. 자수병풍은 돌잔치 할 때도 사용할 수 있어 실용적이었고, 결혼 예단으로 자수액자와 함께 많이 팔렸어요.”
 
십장생 병풍. [사진 이정은]

십장생 병풍. [사진 이정은]

 
장 장인은 1980년대 결혼한 후엔 학원을 차리고 본격적인 제자 양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자수를 배우려는 학생이 점차 줄어드는 바람에 학원 문을 닫았다. 그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직접 팔아야겠다 결심했다. 그렇게 1984년 30대 후반에 인사동에 가게를 열고 직접 자수 제작과 판매에 나서 35년을 버텨오고 있다.
 
“그 당시 인사동은 참 조용했어요. 우리 같은 전통공예품의 작품을 살만한 사람들만 모여들었죠. 나는 자수병풍 등 300여점으로 가게를 시작했습니다.”
 
2017년 9월 19일 1965년부터 50년 넘게 인사동을 지켜온 골동품 시계 전문점 ‘용정콜렉션’ 이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인사동에서 전통자수연구소를 운영하던 다른 장인들도 인사동을 떠나야만 했다. 21세기 들어와 해외에서 대량생산된 자수품이 물밀듯 들어오는 가운데 진품과 모조품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35년간 손수만 고집  

씨앗수를 놓고 있는 장옥임 장인. [사진 이정은]

씨앗수를 놓고 있는 장옥임 장인. [사진 이정은]

 
장 장인한테 아직도 손으로 자수를 제작하는 이유에 관해 물었다. “기계수가 현 시장엔 너무 많아요. 손수를 조금씩 하는 곳이 있지만 기계수가 대부분을 차지하죠. 하지만 전 손수만 고집해요. 누가 알아주든 않든 고가이긴 하지만 섬세한 아름다움이 있고 색상도 뚜렷하고 실크실의 느낌도 달라요. 처음엔 오방색만 쓰다가 염색 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채로운 제작이 가능하게 됐죠. 작품, 준작품을, 상품을  다 제작하고 있어요. 디자인 공정과정이나 재료 차이가 크죠. 상대적으로 저가인 준작품이나 상품, 그 역시도 정성이 많이 들어가지만….”
 
장 장인은 “수백 년을 살아온 수목도, 수천 년을 지켜온 우리 문화도 작은 뿌리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우수한 문화유산과 전통문화를 현 시대에 맞게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인사동은 지금 변화의 물결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작품이 저가의 관광상품과 힘겨운 경쟁을 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싸구려 관광 상품과 구별해 우리의 전통문화 제품을 알아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정은 채율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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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이정은 채율 대표 필진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 인간문화재 등 최고 기술의 장인이 만든 최고급 전통공예품을 제조하고 유통한다. 은퇴 후 전통공예를 전수할 문하생을 찾고 있다. 시간과 노력은 많이 들지만 은퇴 이후가 아니면 전통예술을 배울 기회는 흔치 않다. 지방 곳곳에 있는 인간문화재 등 장인을 소개하고, 은퇴 문하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 재취업으로 연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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