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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전기차 시대에 우마차 보호로는 혁신 경제 어림없다

중앙일보 2019.08.22 00:20 종합 29면 지면보기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기술 혁신 덕분에 시장에 새로운 서비스가 추가되고 소비자의 선택지는 넓어진다. 하지만 첨단기술 출현이 기존 산업 판도를 위협할 때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강력한 규제가 만들어지곤 한다. 역사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사례는 영국에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자동차 규제법인 ‘적기 조례(Red Flag Act)’일 것이다. 19세기 중반에 운송수단 분야를 놓고 기존의 마차와 신생 자동차 업자들 간에 경쟁이 치열했다. 결국 빅토리아 여왕의 지지를 받은 마차업자들이 승리했다. 붉은 깃발을 든 기수가 자동차 앞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게 만든 규제 때문인지 산업혁명의 발상지이자 자동차를 최초로 상용화한 영국은 정작 자동차 산업을 발달시키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시장진입 가로막는 규제 심각해
어정쩡한 절충이 아닌 혁신 절실

그런데 소가 끄는 우마차 사회에서 최첨단 전기차 차량 공유로 뛰어넘은 나라가 있는데, 바로 인도다. 인도의 공유 차량 서비스업체 올라(OLA)는 130만대를 운영한다. 우버·리프트에 이어 세계 3위다. 택시 운전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차량을 사지 못하는 사람들은 차량 공유업체에서 전기차를 빌려 택시 영업을 할 수 있다. 이는 인도 정부가 규제 개혁을 통해 택시 면허제를 등록제로 바꾸었기에 가능했다. 전기차 공유는 인도가 세계 최고가 될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다.
 
중국의 결제 시스템 혁명은 또 다른 놀라움을 준다. 과거 중국은 금융 인프라가 열악해 일반인의 신용 상태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신용카드 단계를 가볍게 건너뛰고 국민의 80%가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페이로 결제한다. 비금융기관이 지급 결제 업무를 하도록 중국 정부가 규제를 풀어 포용적 금융을 실현하는 데 앞장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시아 시가 총액 1, 2위를 다투는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위상은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한 결과일 것이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 경제체제에서 이들 국가가 보여준 변화의 공통점은 단계를 차례대로 밟는 ‘점진적 개선’ 대신 단계를 뛰어넘는 ‘와해적 혁신’에 있다. 이러한 현상이 주요 첨단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국가에 대한 평판도나 기존 경쟁력 서열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디지털 경제시대의 혁신을 주도하는 원격의료·핀테크·차량공유서비스 등의 분야에서 한국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첨단기술을 접목한 혁신적인 사업은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기존의 규제가 풀리지 않아 답답한 상태다. 다수의 글로벌 혁신 기업을 배출하고 있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도 새로운 시도를 일단 폭넓게 허용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규제한다. 이와 달리 한국은 새로운 시도는 우선 ‘원칙적 금지’라는 규제 체계에 묶여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규제 혁신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기존 사업자와 신규 사업자 간 이해 상충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 리더십 부재를 드러냈다.
 
새로운 기술의 출현으로 기존 사업자를 보호해주는 정책적 방안 마련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규제개혁은 별개의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상생에 무게중심을 두고 절충적 합의안 마련에 매달리는 한 혁신의 알맹이와 의욕이 동시에 사라질 것이다.
 
한국이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인 이동 통신 5G 시대를 열었다. 이제 초고속·초연결 네트워크 인프라를 채울 콘텐트와 서비스를 만들어낼 의욕적인 창업가들이 대거 등장해야 할 차례다. ‘한국 벤처의 대부’로 불렸던 고(故) 이민화 교수는 한국이 혁신의 원천은 갖고 있으나 규제의 벽에 가로막혀 4차 산업혁명 비즈니스를 꽃피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우리가 규제혁신형 국가로 거듭난다면 플랫폼을 막 떠나고 있는 디지털 경제 열차의 끝자락에라도 올라탈 수 있지 않을까.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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